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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반대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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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5호 이동근⁄ 2020.10.06 09:23:4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대화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재계에서 국회가 추진 중인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여·야가 함께 추진 중이어서 더욱 걱정이 큰 모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6개 단체는 지난달 공동 성명을 통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세웠고,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도 여야 지도부를 찾아 의견을 전달했다.

언론이나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측은 대주주들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며, 회사를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으로 보고 있고, 반대 측은 기업의 경영권이 위태로워 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개정안 내용이 무엇이길래 이처럼 재계에서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있을까.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에 대해 찬성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감사위원 분리선임 ▲3% 의결권 제한규정 개편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 ▲전속고발권 폐지 ▲과징금 상한 상향 등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제도란 자회사의 이사 등 임원이 그 임무를 게을리 해 자회사가 손해를 입었음에도 자회사의 대표이사나 모회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나서서 소를 제기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감사만 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주주들이 자회사에 대한 소송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감사위원의 선임 및 해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며, 3% 의결권 제한규정 개편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밖에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장회사는 20%에서 30%로, 비상장회사는 3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는 거래조건, 거래방식, 거래내용 등이 부당한 경우에 가해지는 규제를 총수일가 20% 이상 지분 보유 회사의 자회사도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고발을 공정위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9월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입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실 대략적인 내용만 보면 나쁜 뜻은 없어 보인다. 대부분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지배권을 강화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기업의 운영을 더욱 투명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면 우리 사회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특히 주식회사의 원래 의미가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점에서 보면 이번 개편은 앞으로 회사들의 운영 패러다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특히 감사제도에 대한 개편을 보면 그동안 감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감사란 원칙적으로 회사 편을 들면 안되고, 회사가 잘 운영되는지 주주들 편에서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감사제도는 회사에서 편리한 인력을 고용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같은 감사 중 일부를 회사 편이 아닌 주주편으로 돌리는 것이 이번 개정안이다.

이같은 개정안에 재계가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가 그만큼 허술한 틀 위에서 운영됐고, 회사 오너들에게 회사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이유로 많은 권리를 줘 왔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물론 법적으로 헛점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전속고발권 폐지의 경우 전문성이 있는 공정위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의 평가가 이뤄진다고 하면 시장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도 사실상 대주주를 무력화 한다는 주장도 있으며, 지분율 규제 강화는 자금이 없는 회사들의 자회사를 사실상 죽이는 결과가 될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제도 개편도 주식회사를 외부인이 와서 흔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내 기업들의 발전 방향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기업들은 오너의 적극적인 의지가 회사의 발전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는 이같은 운영이 곤란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는 이들은 회사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업사에 보면 오너들의 ‘대승적 결단’으로 인해 회사가 성장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삼성과 같은 회사는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대한 적극적인 R&D(연구개발)가 오늘날의 성장을 일궈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투자 결정 당시를 돌아보면 삼성의 투자는 모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모험을 통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위와 같이 법안이 바뀌면 이같은 모험적 투자는 불가능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면 사실 이 같은 개혁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제는 한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시대는 끝나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개인의 독단적 결정으로 인해 잘나가던 회사들이 무너지는 사례가 없지 않았던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이 이번 개정안의 통과를 단순히 지켜보고 방어하기 보다는 스스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국가가 발전하면서 기업투명성을 강화하는 등의 개혁은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고, 어차피 바꿀 것이라면 기업에 득이 되는 방향이 어디일지 의논해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개혁을 너무 한 순간에 하려 하는 것은 자칫 득보다 실이 많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정부의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이미 운영방침이 굳어진 국내 기업들이 한순간에 체질을 바꾸다 보면 분명 부작용이 나올 것이고, 피해기업, 피해자들이 쏟아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역사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주도자 중 하나인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그가 주장한 방향은 옳았다 하더라도 과격한 공포정치는 결국 많은 반감을 샀고, 그 스스로를 단두대로 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도한 급진은 또 다른 독재일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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