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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미래차 ①] 1995 vs 2020 … 삼성의 자동차 사업, 무엇이 다른가?

故 이건희 회장이 25년 전 예견한 미래 왔다 … 완성차 아닌 전장·반도체·배터리에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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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90호 윤지원⁄ 2020.12.23 09:39:37

애플이 자율주행차 생산을 선언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미래차 관련 사업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친환경 전기자동차, 토탈 모빌리티를 포함하는 미래 차는 전자산업의 주무대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산업의 주역으로서, 그리고 반도체의 절대 강자로서 삼성전자가 미래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그 미래를 전망한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7 5월 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을 방문해 시험차량을 시승해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 업체 인터브랜드가 지난 10월 발표한 전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5대 기업이다. ‘글로벌 100대 브랜드’(100 Best Global Brands)라는 이 브랜드 가치 평가 조사에서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인 미화 약 623억 달러(한화 약 71조 원)로 평가받으며 한국 기업 중 처음으로 이 리스트 5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9위를 기록하며 이 리스트에서 처음 톱10에 진입했다. 2017년에는 6위까지 뛰어올랐다. 인터브랜드가 이 평가를 처음 시작한 2000년에는 52억 달러로 평가받으며 43위에 이름이 올랐다. 즉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20년 만에 12배 증가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년 전인 2000년에도 글로벌 50위 이내의 유명 브랜드였다. 삼성전자는 그해 이미 연간 매출 30조 원이 넘고 영업이익도 무려 7조 7천억 원 이상인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고, 휴대전화 브랜드 ‘애니콜’은 뛰어난 휴대성에 각종 멀티미디어 기능을 추가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그해 삼성그룹은 거대 계열사 하나를 씁쓸하게 처분해야 했다. 바로 삼성자동차를 르노에 넘기고 관련 사업을 청산한 것. 심지어 삼성자동차의 엔딩은 1995년에 출범한 후 불과 5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기아자동차 인수 무산과 IMF 외환위기 등의 대형 악재가 주요 원인이었다.
 

삼성자동차 출범을 예고하던 TV광고. (사진 = 유튜브 캡처)


부침 심했던 25년 전 삼성자동차 출범

삼성그룹은 얼마 전 타계한 고(故) 이건희 회장 취임 직후부터 자동차 사업을 준비했고, 1995년 3월 삼성자동차를 출범시켰다.

이 회장은 해외에서도 유명한 자동차 마니아였다. 2015년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이 회장 개인 소유의 자동차는 120대가 넘었고, 대부분이 슈퍼카, 럭셔리카였다. 페라리와 포르쉐는 그의 애장품 리스트에서 수십 번 발견되는 브랜드였다. 그는 1년에 국내에서 2~3대 팔릴까 말까 하는 포르쉐 918 스파이더를 두 대나 가지고 있었고, 평범한 사람은 평생 실물을 못 볼 수도 있는 26억 원대 가격의 부가티 베이론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이 회장은 단지 좋은 차를 수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즐겼다. 그는 직접 서킷 주행을 즐긴 스피드 마니아였고, 스스로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자동차에 관해 잘 알았으며, 그만큼 자동차 사업에 대한 애착과 열망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것을 두고 단지 이 회장의 취미와 개인적 관심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7년간 그룹을 경영하면서 매출 40배, 시가총액 300배 이상 성장시킬 정도의 냉철한 수완가가 그렇게 큰 사업을 단지 개인 취향 때문에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 회장은 1997년 펴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이런 비난에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그는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라고 적었다.
 

SM525 출시 TV광고. (사진 = 유튜브 캡처)


자동차는 ’미래 먹거리‘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삼성그룹이 하지 않던 자동차 사업을 이 회장은 왜 시작했던 것일까?

당시 삼성그룹의 완성차 사업은 재계 최대 라이벌인 현대그룹을 넘어서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동차는 육지 생활에선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인 데다가 제품 단가가 매우 높아 완성차 사업은 매출 규모가 막대하고, 전·후방 산업과의 연관 효과가 커서 다양한 사업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또 자동차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의 성격이 강하므로, 자동차 사업을 하는 기업은 정부의 규제나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또 이 회장이 1995년 삼성자동차 출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이유에는 그룹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전망이 더해진다. 이 회장은 “자동차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삼성이 먹고 살 사업이라는 판단이었다”라며 “앞으로 5~6년 동안 10조 원을 자동차에 투자해도 이익은 거의 안 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10조 원을 기부한다는 자세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삼성자동차의 출범과 승용차 사업은 시작 전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 쌍용차 등이 자동차 제조업을 하고 있는데, 삼성이 더해지면 시설 투자가 중복되고 공급이 과잉되어 시장 및 산업 발전에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닛산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첫 승용차 모델을 내놓되, 부품 국산화를 80% 이상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여 1995년 정부 승인을 받아냈다.

그리하여 출범하게 된 삼성자동차는 55만 평에 달하는 부산 신호공단 부지에 생산 시설을 짓고, 2002년까지 4조 원 이상을 투자해 연산 50만 대를 달성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그런데 악재가 이어졌다, 부산 공장 건설에 예상을 넘어서는 많은 돈이 투입됐다. 신호공단 부지가 갯벌을 메워 만든 땅이어서 지반이 너무 약했고, 자동차 공장처럼 중장비가 가득한 생산 시설이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故 이건희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사상누각‘ 막으려다 5년 만에 법정관리

무른 지반을 억지로라도 다지기 위해선 긴 쇠 말뚝(파일)을 촘촘하게 박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1만 7000개의 파일을 박아가며 생산 시설을 완성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만 5조 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출범 초기 시설 투자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해마다 1조 원씩 투입된 것은 너무 과했다. 여기에 갑작스런 외환위기까지 닥치며 겨우 3년 만에 4조 원의 부채가 쌓이는 신세가 됐다.

한편으로는 1993년부터 추진하던 기아자동차 인수가 무산되며 추가 타격을 입었다. 기아차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었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지분 구조가 깔끔한 편이었기에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려는 삼성 입장에선 매력적인 인수합병 대상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삼성그룹의 기아차 인수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기아그룹 부도로 1998년 본격적으로 진행된 인수 경쟁에서는 현대차, 대우차, 포드까지 4개 회사가 3차 입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현대차에게 석패하고 말았다.

삼성자동차는 1998년부터 부채 문제가 심각했고, 삼성그룹은 대우그룹과 빅딜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대우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삼성이 대우전자를 인수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따르고자 한 것.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던 대우그룹의 숨겨진 부실 문제가 터지면서 결렬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1999년 6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부채 상환 후 르노에 매각되는 수순을 거쳐야 했다.
 

삼성SDI가 2014년에 포드와 공동으로 개발해 내놓은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사진 = 삼성SDI)


미래차 미리 내다본 '3천억' 투자

이처럼 1995년의 삼성자동차는 분명히 실패했다. 하지만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상용차와 승용차를 제조하는 완성차 사업은 청산했지만, 그 전부터 전장 사업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의 에세이에는 자동차 산업에 관한 또 다른 견해가 적혀있다. 그는 “오늘날 자동차는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중략)...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는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전망했다.

당시에도 삼성그룹의 가장 큰 강점은 삼성전자와 반도체에 있었고,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를 찾아 확보하는 민첩함이 뛰어났다. 이 회장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장차 삼성전자가 활약할 수 있는 분야의 비중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사진 = 삼성전자)


그리고 25년이 지난 현재의 자동차 산업을 보면 당시 그의 눈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100년 넘는 전통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당장 몇 년 후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장담하지 못해 ICT(정보통신) 기술 기업 등 다른 산업 분야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는 현실이다.

또, 전통적인 자동차 부품과는 상관조차 없던 애플, 엔비디아, 구글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미래 자율주행차나 커넥티드카 등의 분야를 선도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던 이 회장은 당장 삼성자동차의 성패가 불확실한 와중에도 미래 자동차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부채가 수조 원으로 늘어나고 있던 시절에도 삼성SDI에 30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 연구를 가속화 했다.

삼성SDI는 1994년부터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배터리 연구에 돌입했는데, 이러한 과감한 투자를 기반으로 2000년에 이미 전기차용 배터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삼성SDI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톱5에 드는 핵심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지난 CES2020에 전시된 삼성전자 하만의 디지털 콕핏. (사진 = 삼성전자)


삼성의 미래차 사업에 완성차는 없다

2020년 말 현재 삼성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외에도 차량용 전장 사업, 차량용 반도체 등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완성차를 다시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수시로 제기되지만, 삼성은 그때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그만큼 미래 먹거리로서의 자동차 산업의 성격이 25년 전과는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무려 80억 달러(약 9조 3000억 원)에 인수한 하만은 인수 이후 해마다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하만의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00%나 증가한 3200억 원이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 3분기에는 인수 이후 분기 최대인 1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또, 2018년에는 차량용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오토‘를 출시하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도 진출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모바일 AP 엑시노스로 이 부문 세계 1위인 퀄컴의 스냅드래곤과 기술적 우열을 치열하게 다퉈왔기에, 비교적 후발 주자로 나선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다음 편부터는 2020년대 삼성의 자동차 관련 사업 현황과 전망을 분야별로 자세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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