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2호 옥송이⁄ 2021.01.22 16:05:46
‘가즈아’ 광풍을 일으켰던 블록체인이 돌아왔다. 그것도 강력하게. 반짝 유행처럼 지나간 2017년 때와는 다르다. 이번엔 정부까지 나섰다.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개발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오는 3월에는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법률) 시행까지 앞두고 있다. 시중은행도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2편은 디지털자산 수탁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B국민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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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전자화된 돈
암호화폐, CBDC, 페이스북의 디엠, 비자(VISA)의 USDC 등. 이름도 용어도 다양하다. 다만, 이들은 ‘디지털 화폐’에서 교집합 된다.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는 금전적 가치를 전자 형태로 저장해 거래하는 통화를 뜻한다. 실물 화폐인 현금이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암호화폐, CBDC 등은 모두 디지털 화폐의 하위개념이다. 그러나 특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암호화폐.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는 화폐라는 의미로,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킨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산하기 때문에 강력한 탈중앙화 속성을 가지며, 거래의 보안과 가치저장 측면에서 뛰어나다. 그러나 가격 변동성이 매우 커 기존 화폐를 대체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한 것이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암호화폐의 개발 취지인 개방화·탈중앙화에서 벗어나 기존 통화체제와 타협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극심한 가격 변동성을 개선해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했다. 페이스북의 디엠 등이 해당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정부 중앙은행에서 발급하는 것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다. 이처럼 디지털 화폐가 다양해지는 까닭은 금융 당국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 3월 특금법 시행
가상 화폐를 ‘불법 투기’로 인식했던 과거와 달리, 하나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에 편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은행 규제 당국인 통화감독청(OCC)은 지난해 7월 가상 화폐 수탁서비스를 허용했다.
한국도 제도적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 오는 3월 25일 시행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특금법의 핵심은 음지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디지털 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과거 암호화폐는 탈중앙화 속성을 활용해 불법 자금세탁의 창구로 악용되거나, 투기 수단이 된 바 있다.
이번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수탁업체, 지갑업체 등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한다. 탈세, 범죄자금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대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실명 입출금 계정 발급 부분이다. 특금법에 따르면 AML을 잘 구축한 거래소만이 실명 입출금 계정을 받아 영업할 수 있는데, 금융위원회는 기존 금융회사들이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행위의 위험성 식별·분석·평가하도록 했다. 현재 입출금 계정이 있는 곳은 빗썸(NH농협), 업비트(케이뱅크),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 4곳뿐이다. 은행들이 추가로 열어주지 않는다면 소형거래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셈이다.
KB, 디지털자산 관리기업 KODA 설립
실명 입출금 계정 발급 권한이 있는 만큼, 특금법 이후 은행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이에 은행들의 디지털 화폐 관련 대응도 주목받고 있는데, 그중 KB국민은행은 디지털 자산에 집중하면서 ‘은행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한국디지털에셋(KODA·Korea Digital Asset. 이하 KODA)을 통해 디지털 자산 시장에 진출했다. KODA는 블록체인 기술기업 해치랩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와 공동으로 설립한 기업이다.
KODA의 주요 분야는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로, 일명 수탁(受託) 서비스다. 은행이 늘 해오던 자산 보관 업무를 디지털 자산 분야로 옮겨온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전통적인 금융자산(채권, 정기예금, 수익증권 등)의 권리나 소유권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유동화한 자산을 뜻한다.
국민은행은 가상자산과 게임 아이템, 디지털 운동화, 예술작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등 디지털자산의 범위가 확대되고 서비스들이 가시화되면서 관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유무형의 자산들이 디지털화되면 이들 자산의 안전한 보관, 거래 및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금융 니즈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실험을 통해 KODA를 디지털자산 시장의 은행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은행은 특허청에 디지털자산 관련 상표를 출원하기도 했다. ‘KBDAC’는 국민은행의 KB와 디지털 커스터디(Digital Asset Custody)의 앞글자 DAC를 합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상표를 출원하며 암호화폐 및 디지털 자산과 연관된 20여 개의 업종을 함께 등록했다.
“디파이(탈중앙화) 활성화돼도 은행 역할은 있어”
국민은행은 기존 화폐가 디지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고민과 역할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디스트리트와 블록크래프터스가 공동주최한 ‘더컨퍼런스 2020(THE CONFERENCE 2020)’에서 조진석 KB국민은행 IT기술혁신센터장은 “앞으로 모든 자산은 디지털 자산화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디파이(탈중앙화) 등의 이슈가 있겠지만, 전통금융회사인 은행은 탈중앙화 속에서도 신뢰를 줄 수 있는 기관으로써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은행이 생각하는 디지털 화폐 관련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현재 KB의 경우 커스터디에 치중하고 있다. 그동안 은행은 고도의 신용이나 투명성을 바탕으로 자산을 보관해 왔기에 잘 하는 분야”라며 “향후에는 자산을 보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용할 수 있는 ‘투자플랫폼’ 검토 등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