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2.12.29 16:44:51
1983년 11월 개관 이후 지난 40년간 남산 자락에서 명맥을 이어온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2022년 12월 31일 운영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지난 30여 년 간 힐튼 호텔의 시그니처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힐튼 열차'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22년 10월 14일 마지막 운행을 시작했다.
호텔의 장고한 역사가 담긴 '힐튼 히스토리 뮤지엄' 팝업 갤러리와 힐튼 열차 전시 공간에는 이 곳에서의 추억을 되새기고 역사의 마지막 자취를 간직하려는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힐튼호텔은 국내 호텔 역사에서 한국 건축가가 지은 국내 1호 호텔이라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장소다. 29일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남산을 병풍처럼 감싸는 모양으로 살짝 꺾어진 이 호텔은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종성씨의 작품이다. 당시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로 재직하던 김씨는 김우중 대우실업 사장의 요청을 받고 귀국해 본 호텔을 설계했다.
1977년 당시 대우그룹은 미국의 힐튼 인터내셔널과 호텔매니지먼트계약을 체결해 힐튼의 진보적 최신호텔경영기법을 한국에 도입하고자 했다. 당시 계약에는 호텔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커트 스트랜드 사장이 참여했고, 합작 법인 체제로 김종성 교수의 설계 기획과 힐튼 인터내셔널의 기술진의 기술 협력, 국내 기업들의 시공에 의해 탄생했다.
지난 달 KBS와 인터뷰를 가진 김종성 교수에 따르면 힐튼 호텔 이전까지 시중에 지어진 호텔들은 일본 호텔 회사에서 설계부터 운영까지 일본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당시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건축학을 수학해 온 김종성 교수는 70년대 말에 국제적인 건축의 담론에 부합되는 '첨단을 걷는 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목표를 담아 힐튼 호텔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로비 중정에는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 '베르데 아첼리오'라는 최고급 대리석과 미국 켄터키 참나무로 만들어진 베니어 합판 등의 부자재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높이 18m에 자연광이 쏟아지는 천장을 갖춘 압도적인 개방감을 자랑하는 독특한 구조의 중앙홀 아트리움을 완성했다.
김 교수는 이 공간이 '우리 시민들을 위한 공공 공간'에 역점을 두어 탄생된 공간이라 말했다. 실제로 이 공간은 여름엔 분수 5m 직경 분수에서 2.5m 직경 분수 넷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조형물의 아름다움으로, 겨울엔 1995년부터 힐튼호텔의 상징이 된 연말 자선기차가 달리는 공간 등으로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힐튼 서울 만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다.
건축학계는 한국 건축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힐튼호텔을 평가한다. 더불어 ‘아첼리오’ 천연대리석은 이탈리안 알프스에서 운반해와 사용된 자재로 지금은 다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자재다.
대우그룹이 운영하던 힐튼 서울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싱가포르 기업인 훙릉의 자회사 CDL에 매각됐다. 이후 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으며 수익성 악화로 1조원 넘는 자금으로 이지스자산운용에 매각됐다. 지난 5월 이지스자산운용은 힐튼호텔을 철거하고 2027년까지 오피스와 판매시설 등을 새로 건립하는 방안을 담은 인허가 시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힐튼 호텔이 부지에 350%로 건축되었으나, 현행법상 용적률 완화규정을 적용 받으면 부지의 800%의 시설물을 지을 수 있다. 때문에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수익확보를 위해 본 대안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튼 호텔의 역사적 가치 등을 이유로 호텔의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종성 건축가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부분을 보존하며 리모델링하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내부 아트리움을 살리면서 리모델링을 적용해 용적률 800%를 활용하는 방식 등이다. 실제로 힐튼 호텔 하방의 정원 면적이 건물 부지로 활용될 수 있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경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랜드마크 건축물로 지정해 이를 보존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뉴욕시의 시그램 빌딩은 1989년 랜드마크 건물로 지정돼 60년째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의 보존을 위해 시 차원의 정책 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1일을 끝으로 본 건축물의 역사와 가치가 명맥을 이어갈지,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