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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한 손가락으로는 돌을 줍지 못한다

대구사진비엔날레 ‘파트릭 윌록·플로리안 드 라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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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7호 천수림(사진비평)⁄ 2023.10.04 15:30:05

9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대구사진비엔날레 '다시, 사진으로! 사진의 영원한 힘' 주제전 현장.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

아프리카 속담에 ‘한 손가락으로는 돌을 줍지 못한다(One Finger Cannot Pick a Stone)’는 말이 있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이 말은 사진작가들을 행동하도록 촉구한다. 사진 매체는 단지 빛의 기록일 뿐인데, 어떻게 개인의 마음을 넘어 사회적 움직임을 촉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콩고민주공화국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파트릭 윌록과 주로 여성의 지위와 불평등을 다룬 플로리안 드 라쎄는 ‘사진의 힘’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이다. 두 작가의 작품은 9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대구사진비엔날레 ‘다시, 사진으로! 사진의 영원한 힘’ 주제전에서 만날 수 있다.

파트릭 윌록, ‘비코로에서 보콘다로 가는 길’

파트릭 윌록, '매력적인 물 비코로에서 보콘다 가는 길 시리즈(Patrick Willocq, Fetching Water The Road from Bikoro to Bokonda series)'.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5x100cm. 2012.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

파트릭 윌록은 콩코민주공화국 서부 지방에 있는 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비코로에서 보콘다로 가는 길(2012)’ 연작을 진행했다. 집 마당에서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당당히 서 있는 남성을 찍은 ‘팔짱을 낀 남자들’, 플라스틱 양동이와 보관통, 세숫대야를 죽 늘어놓은 ‘메이드 인 차이나’, 아이를 업고 물동이를 인 여인들과 할머니 그리고 젊은 여인들의 초상을 담은 ‘매력적인 물’, 절구통 등 농기구가 놓인 마당 풍경을 담은 ‘메이드 인 콩고’는 기존의 상투적인 인류학적 사진의 코드를 뒤집었다.

이 사진 작업은 남녀 가사 분담, 교육, 전통, 세계화(메이드 인 콩고, 메이드 인 차이나) 등의 주제를 연극 무대처럼 다루고 있다. 윌록은 사진 속 마을 주민들에게 배우로서 ‘인간과 숲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역할, 숲의 혜택을 누리지만 마을 주민들의 일상으로 인해 망가지는 숲, 그리고 여전히 굳건히 지켜지는 듯하지만 서구화된 물품으로 인해 사라지는 전통’에 관한 아프리카 표상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 프로젝트로 윌록은 프랑스 개발청에서 수여하는 프릭스(Prix) AFD를 수상했다. 윌록은 “에콰테르 지방의 바트와 피그미족과 반투족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증언”이라고 설명했다.

서부지역은 동부 콩고와는 달리 서방의 미디어에 의해 ‘혼란스러운’ 지역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윌록은 마을 주민들과 사진 작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커뮤니티 기반 공정무역 투어’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성을 추구하면서도 사회 문제나 개발 요구를 반영하는 ‘숲속 극장’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파트릭 윌록, '메이드 인 콩고 1 비코로에서 보콘다로 가는 길 시리즈(Patrick Willocq, Made in Congo 1 The Road from Bikoro to Bokonda series)'.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5x100cm. 2012.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

작가는 연극적 장치를 통해 피사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론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협업을 통해 인간 대 인간으로 알아가는 점은 우리에게 감동을 안긴다. 작가는 ‘비코로에서 보콘다로 가는 길’ 연작 외에도 지역사회 기반의 공정무역 투어와 협력하는 등 지역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직면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아름다움, 소박함, 존엄성에 항상 감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윌록은 이외에도 탄자니아, 레바논, 프랑스에서 이민자들과 함께 문화적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왈레족의 노래(Songs of the Walés)’다. ‘왈레족의 노래’는 콩고의 왈레족 여인들이 첫아이를 출산한 후 산후조리를 하면서 만든 노래들을 사진에 담은 것이다.

1969년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윌록은 콩고에서 성장한 후 아시아에서 세일즈 경력을 쌓았다. 이후 2009년 27년 만에 어린시절을 보냈던 콩고로 돌아와 정착했다. 그에게 사진은 협업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그는 보통 3개월 정도 준비한 후 촬영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가 만든 미장센은 연극, 설치, 음악, 회화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작업으로 완성된다.

플로리안 드 라쎄, ‘얼마나 운반할 수 있나요?’

플로리안 드 라쎄, '아루, 에티오피아 얼마나 들 수 있습니까_시리즈(Floriane de Lassee, Aru, Ethiopia How Much You Can Carry_Series)'. 아카이블 피그먼트 프린트, 125x83.8cm. 2012.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

플로리안 드 라쎄는 아프리카 도로를 따라 부피만큼이나 다양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의 행렬에 매료돼 ‘얼마나 운반할 수 있나요?(How Much Can You Carry?’(2012~2013) 연작을 진행했다. 이 시리즈는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목격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대부분 여행객들이나 운전자들은 에티오피아의 도로에서 히말라야 산맥 고갯길까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남성, 여성, 어린이를 보지만 무심코 지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2012년 작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개인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운반할 수 있나요?’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이 시리즈는 동아프리카 캬라티족 외에 르완다, 에티오피아, 네팔, 일본, 인도네시아, 볼리비아, 브라질 등으로 확장됐다.

“인생을 통째로 머리에 이고 가는 듯한 행인들을 보았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나무나 물통, 음식이나 수확한 작물까지 머리 위에 산더미처럼 올려놓고 흡사 개미들처럼 완벽하게 균형을 잡으며 걷고 있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각자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무대에 서자고 제안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시골 스튜디오라고 할 법한 무대를 설치했다.

플로리안 드 라쎄, '앙가, 인도네시아 얼마나 들 수 있습니까_시리즈(Floriane de Lassee, Anga, Indonesia How Much You Can Carry_ Series)'.  아카이블 피그먼트 프린트, 125x83.8cm. 2013.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

에디오피아 아루에서는 어린 소녀의 머리 위에 나무토막, 그 위에 어린 양이 올라가 있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외에도 여행 캐리어를 켜켜이 쌓아 올린 뒤 머리 위에 올린 익살스러운 청년, 자신의 몸의 몇 배나 많은 짚단을 인 여인, 플라스틱 바구니를 인 어린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 기꺼이 모델이 돼준 마을 사람들은 곡물자루, 시장에서 냄비 등 생필품으로 교환하기 위해 마련한 짚단, 재활용할 빈 병 등 일상용품이나 소비재 등의 오브제가 많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짐을 이고 있다. 이 짐은 각자 노력하며 일구는 삶의 태도와 내면의 짐들을 비유하기도 한다. 모델들은 비참한 표정보다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때로는 즐겁고 익살스럽게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작가는 전통의 무게, 사회적 무게, 가족의 무게와 같이 덜 분명한 다른 무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볼리비아 등 햇볕이 내리쬐는 도로에서 만나는 그들은 모든 삶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보행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 여자 모두 산이나 들,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외에도 현대적인 물품도 포함된다. 무게 때문에 등이 구부러져 있지만 표정은 달랐던 그들 덕분에 이 유쾌한 시리즈를 작업할 수 있었다.

반면 높은 곳에 위치한 발코니에서 익명의 거대 도시(라스베가스, 상하이, 도쿄, 이스탄불)를 다룬 ‘인사이드 뷰(Inside Views)’와 외부 야경만으로 구성된 ‘아웃사이드 뷰(Outside view)’에서는 상반된 감정을 목격할 수 있다. 거대하고 화려한 파사드를 자랑하는 도시 속의 인간은 고요하고, 고독하며, 공허하다. 21세기 거대도시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견디고 있을까?

분명히 ‘얼마나 운반할 수 있나요?’ 연작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다른 삶의 조건에 놓인 사람들의 팽팽한 긴장감은 숨길 수가 없다. 작가의 신중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향해 관람자인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운반할 수 있나요?” 작가는 정교한 무대 연출을 통해 도시화 속에서 강요되는 비인간화 돼가는 현상과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소개>

파트릭 윌록(Patrick Willocq, 1969년 출생)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예술가이자 비주얼 스토리텔러이다. 그는 휴머니스트이자 '문화 간 선구자'로 불린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성장했고 이후 성인이 돼 다시 콩고로 돌아왔다. 사진 프로젝트를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을 여행하던 중 적도의 외딴 열대우림에 살고 있는 에콘다족의 문화를 우연히 발견한 후 ‘왈레스’라고 불리는 원주민 어머니들에 관한 고대 권한 부여 의식에 관해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진행했다. 그 후 영화 감독 플로랑 드 라 툴라예와 함께 왈레족과의 작업을 기록한 52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왈레족의 노래’를 공동 제작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5텔레비전 채널에서 방송됐다.

플로리안 드 라쎄(Floriane de Lassée, 1977년 출생)는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시각 예술가로,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2004년 ICP(뉴욕)를 졸업하고 ESAG/페닝겐 그래픽 아트 스쿨을 졸업했다. ‘ 인사이드 뷰’ 시리즈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파리, 브뤼셀, 베이징, 모스크바, 미국 시카고에서 여러 차례 전시됐다. 여성의 지위와 불평등을 주로 다뤄 왔다. 가족과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에 대한 작품인 ‘하녀 젤파’를 비롯해, 높은 곳에 위치한 발코니에서 익명의 거대 도시(라스베가스, 상하이, 도쿄, 이스탄불)를 다룬 ‘인사이드 뷰’(2004~2011)와 외부 야경만으로 구성된 ‘아웃사이드 뷰’를 발간했다.

 

글: 천수림(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대구사진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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