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구⁄ 2024.12.09 16:48:46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선주 씨는 올해 70줄에 접어들었다. 육체 나이는 그럴지언정 나름 ‘스마트 시니어’라고 자부한다. 평소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터라 디지털 환경이 낯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자신을 ‘욜드(YOLD·Young Old·65~75세)족’이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그런 김 씨도 간혹 당황할 때가 있다. 외식업 매장의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마음과 손이 바빠진다. 뒷사람의 시선도 따갑다. 때로 친절한 뒷자리 손님 덕분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때도 있지만, 대개는 키오스크 옆으로 비켜서며 ‘억지 양보’하는 경우가 더 많다.
“키오스크가 외식업 브랜드마다 조금씩 달라요. 주문 방식이 어떤 곳은 간편한데 또 어느 곳은 절차가 길어요. 간단히 단품 하나 먹겠다는데 뭐가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죄짓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은 아주 오래가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미 올해 기준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략 우리나라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를 넘겼다는 얘기다.
통신, 각종 서류 발급, 음식 주문, 은행 계좌 관리 등 모든 일상이 디지털화하면서 노인들의 디지털 역량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에 시니어 세대의 디지털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아카데미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각 기업에서도 관심 가지고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해 11월 출범한 ‘삼성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가 1주년을 맞았다.
이 아카데미에는 주관사인 에스원을 비롯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일기획, 호텔신라, 삼성웰스토리,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글로벌리서치 등 삼성 관계사 9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의 활용법을 가르쳐 생활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건 물론 새로운 일자리까지 찾도록 도와준다.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익히는 걸 넘어 디지털 시대·환경 속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경제적 자립까지 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 어떻게 만들었나
삼성 임직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에스원 등 삼성 9개 관계사는 재작년 각 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해 900건 넘는 결과물을 얻었다. 이 중 임직원 투표를 거쳐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가 새로운 CSR 사업으로 최종 선정됐고, 작년 11월 출범했다.
에스원은 올해 3월부터 65세 이상 취약계층 300명을 대상으로 생활 맞춤형 교육을 진행했다. 이와 더불어 지역 노인기관 소속 생활지원사 150명을 디지털 교육 전문강사(디지털 튜터)로 양성했다. 디지털 튜터는 노인 가구를 직접 방문해 스마트폰 사용법, 모바일 쇼핑·금융거래 같은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사용법부터 보이스피싱·스미싱 등 디지털 범죄 피해 예방법에 이르기까지 일대일로 상세히 알려준다.
특히, 앞서 소개한 김선주 씨도 키오스크를 잘 다루도록 지난 4월부터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체험센터를 개소했다. 에스원은 지금까지 시니어 3400여 명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알려줬다. 여기선 병원이나 외식 매장의 키오스크 사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예약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직접 경험하도록 지원해, 시니어들이 ‘디지털 공포’를 극복하고 삶의 편리한 도구로 활용하도록 돕는다.
교육 수료생 김광자(82) 씨는 “아파트관리비 납부는 물론 송금 등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고 있다”며 “이렇게 간편한 줄 몰랐다. 더 빨리 배우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홍성자(76) 씨 역시 “쇼핑 앱을 통해 생수를 직접 주문하면서 디지털 소비의 편리함을 실감했다”고 했다.
시니어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에 도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인 14.2%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직을 원하는 고령층 역시 증가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79세의 69.4%가 계속 일하기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새 0.9%p(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에스원은 시니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연계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이 프로그램에는 모두 145명이 참여했다. 교육생 중 절반 가까운 49.7%는 실제 취업에 성공했고, 이 중 58명은 디지털 역량을 갖춰야 하는 IT 물류매니저로 채용됐다.
서울교통공사 T-플랫폼 물류매니저로 근무 중인 김성미(67) 씨는 “디지털 교육 덕분에 물류매니저로 일하며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시니어가 이 아카데미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에스원 관계자는 “시니어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일상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취업 기회까지 제공하도록 더 많이 노력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 정부 부처나 NGO(한국노인인력개발원 등)와 협력해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 운영위원인 최재성 연세대학교 교수는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가 노인들의 디지털 교육제도를 강화하는 주춧돌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에스원은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를 통해 노인 세대의 디지털 격차 해소와 사회 참여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