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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롯데뮤지엄, 카즈미 아리카와의 컬렉션을 국내에 소환하다

‘디 아트 오브 주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전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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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24.12.10 14:50:23

롯데뮤지엄 '디 아트 오브 주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전 일부. 사진=김금영 기자

칠흑같이 어두운 전시장. 그 어둠을 밝히고 있는 존재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로 더욱 존재감을 발한다. 롯데뮤지엄 ‘디 아트 오브 주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전 현장 풍경이다.

세계적 컬렉터 카즈미 아리카와의 대규모 컬렉션 전시

세계적 보석 컬렉터 카즈미 아리카와가 컬렉션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보석’이라 하면 대부분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아름다움’, ‘고혹적’ 등의 이미지가 있지만 ‘사치’, ‘허영’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롯데뮤지엄이 마련한 이번 전시는 사치품으로서의 보석이 아닌, 유구한 역사와 귀중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으로서 보석을 바라보고 접근한다.

전시되는 보석들은 컬렉터 카즈미 아리카와의 컬렉션이다. 알비온 아트의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보석 컬렉터인 아리카와는 지난 40여 년 동안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석 500여 점을 수집해 왔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보석 소매업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보석을 접한 그는 30대 초반부터 본격 보석 수집에 나섰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40년 전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에서 보석을 예술 작품으로 처음 보고 마음을 흔드는 순간을 겪은 뒤 이런 보물을 수집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두운 분위기 콘셉트로 꾸려진 전시장엔 빛나는 보석들이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12월 5일 롯데뮤지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날 또한 “현 시대에선 보석이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보석의 진정한 본질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까지 아우른다”며 “과거 보석은 착용자를 청렴하게 해주는 의미로 쓰였다. 인류보다 긴 생명을 이어온 만큼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움을 지닌 귀중한 보물로, 지구상에 있는 것 중 무엇보다 영원성을 지녔다. 보석을 접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깨달았다”고 연신 강조했다.

보석이 이어준 인연에 대해서도 밝혔다. 스스로를 불교 신자라고 한 그는 “6세기 약 1500년 전 역사를 보면 백제 성왕, 일본에선 성스럽고 밝다는 의미의 성명왕(聖明王)이라고 표현하는데 불상과 경전을 일본에 소개해 줬다”며 “긴 역사 속 일본은 한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고 한국와 일본의 인연을 강조하며 “한국으로부터 받은 1억분의 1의 은혜라도 제가 이번 전시를 통해 갚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아리카와 컬렉션 208점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아리카와 컬렉션 208점을 세계 최초로 현대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아리카와 컬렉션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라이빗 보석 컬렉션이자, 가장 중요한 역사 보석 컬렉션’이라 평했고, 포브스는 ‘당신은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가장 귀중한 보석 컬렉션’이라 평했다. 그만큼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으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번에 롯데뮤지엄이 대규모로 자리를 마련한 것.

아리카와는 “그간 약 70회 정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 등의 전시를 기획, 지원해온 바 있는데, 총력을 기울여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총 208점의 전시품을 통해 보석의 역사를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는 이번 롯데뮤지엄이 전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며 “상상 이상의 전시를 기획해준 롯데뮤지엄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 착용했던 '앙굴렘 공작 부인의 팔찌'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롯데뮤지엄 전시기획팀 이민지 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리카와 측과 1년 넘게 긴밀하게 소통했다”며 “다크 앰비언스(어두운 분위기) 콘셉트로 꾸려진 전시장 안에서 더 반짝반짝 빛나는 진귀한 보석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이번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전시 각 섹션마다 패브릭을 다양하게 배치해 독특한 배경을 만들었고, 은은한 조명으로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을 따라가도록 하면서도 시선은 보석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더불어 롯데뮤지엄과의 협업을 기념해 쿠마 켄고는 보석의 결정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프레임과 반사를 활용한 두 점의 작품을 각각 전시장 입구 로비와 내부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 설치했다.

 

보석은 사치품? 진정한 아름다움 지닌 예술품으로 바라보다

철제를 사용한 장식품도 눈길을 끈다. 사진=김금영 기자

본격 전시의 장을 여는 아리카와 컬렉션은 크게 9개 섹션으로 나뉘어 서양 보석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따라가는 형태로 구성됐다. ▲고대, 중세, 르네상스 ▲예카테리나 2세와 17~18세기 유럽의 보석 ▲19세기 나폴레옹과 빅토리아 시대의 보석 ▲아르누보 ▲벨 에포크 ▲아르데코 ▲반지 ▲티아라 ▲십자가로 수겅돼 기원전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시대별 보석 20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민지 팀장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 다양한 문화사조 및 사상이 유럽의 긴 역사에 걸쳐 태동돼 발전해온 것처럼 유럽의 보석에도 그 안에 다채로운 시대정신과 미학, 당시의 정치와 사상이 반영됐다”며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단순한 장신구의 역할을 넘어 미적감각이 응축된 예술이자 사회장을 담아낸 가치 있는 역사적 산물로서 존재한다. 9개의 전시실을 통해 보석의 자취를 따라가다보면 각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가 교차하는 시대상과 다채로운 예술의 화풍을 읽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사치품이 아닌 예술품으로서의 보석에 접근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대표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시그닛 반지’엔 프리드리히 3세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 반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소유자의 신분을 나타내고 공식 문서에 도장을 찍는 실용적인 도구로 사용됐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초상화 음각이 새겨진 펜던트’도 주요 작품 중 하나다. 고귀한 월계관을 쓰고 진주 목걸이를 한 옆모습에서 여황제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이 새져진 에메랄드 펜던트다.

롯데뮤지엄 '디 아트 오브 주얼리(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전 일부. 사진=김금영 기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 착용했던 ‘앙굴렘 공작 부인의 팔찌’도 전시된다. 핑크색 루비와 다이아몬드가 정교하게 세팅된 화려한 팔찌로, 이 팔찌와 거의 똑같은 한 쌍의 팔찌인 공식 왕실 보석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당시 왕실 보석은 개인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였기 때문에 공작 부인은 자신의 돈으로 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팔찌를 따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지란돌 귀걸이’도 눈길을 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이 대관식 때 착용했던 귀걸이로, 지란돌은 여러 가지 촛대가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말한다.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영국의 패션을 주도했는데, 부유한 영국 사람들은 여왕이 착용한 부석은 무조건 따라 샀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이를수록 화려함이 돋보이는 보석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김금영 기자

아리카와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파뤼르’와 ‘그리스도와 전도사의 십자가, 유물함’을 꼽았다. 전시 현장을 함께 둘러본 롯데문화재단 김형태 대표는 “일본에 건너가 아리카와의 컬렉션을 보는데 특히 보석 세트는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에 감탄이 나왔다. 전시에서도 이를 많이 보여주자고 이야기를 나눴었다”고 말했다.

이를 대표하듯 전시의 하이라이트로도 꼽히는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파뤼르는 티아라,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팔찌로 구성된 왕실의 화려한 보석 세트다. 열을 가하지 않아도 천연 분홍빛을 내는 보석인 핑크 토파즈가 100개가 넘게 사용됐다. 티아라엔 핑크 토파즈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아칸서스잎 무늬가 화려하게 묘사됐고, 목걸이는 8개의 타원형 핑크 토파즈를 다이아몬드로 연결했으며 아래로는 물방울 모양의 핑크 토파즈가 늘어져 있다. 이 펜던트는 탈부착이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세비녜’라 불린 브로치는 네모난 핑크 토파즈를 꽃잎이 감싼 형태로, 아래엔 다이아몬드 장식이 달렸다.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파뤼르'가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스도와 전도사의 십자가, 유물함’은 정교한 세공 기술로 ‘보석 조각의 라파엘로’라 불린 발레리오 벨리가 만든 작품으로, 전 세계에 단 3개만 남아 있다. 십자가 가운데엔 예수의 모습이 표현됐고,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을 가진 ‘INRI’라는 글자가 새겨졌으며, 고통 받고 있는 예수의 머리 뒤로 거룩한 빛이 비치고 있다.

이 십자가가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받침대에 있다. 1762년 파리의 뛰어난 금세공인 피에르 제르맹이 은으로 만들고 금으로 도금한 받침대로, 1833년 프랑스 귀족 가문 몽모랑시-라발이 이 받침대에 십자가를 올려놓았다. 받침대 가운데 있는 투명한 창 안엔 예수가 짊어지고 못 박힌 십자가의 작은 조각 2개가 보관돼 있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스도와 전도사의 십자가, 유물함'. 사진=이종현, Courtesy of LOTTE Museum of Art, Seoul

아리카와는 “보석이 지닌 본질적, 정신적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 또한 청렴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은 지구가 전하는 선물의 결정체이며, 인간 소망의 정수”라며 “오늘날 인류를 비롯해 전 세계의 생물이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이번 전시가 지구가 선사한 궁극의 아름다움인 보석이 자아내는 감동을 통해 지구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전시가 후대의 아름다움과 지혜까지 내다보는 기회가 된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롯데뮤지엄에서 내년 3월 16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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