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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사로잡는 쏟아질 듯한 거대 해골 100개…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전을 보는 시선

국립현대미술관 14m 층고를 활용한 특별한 ‘매스’... ’마스크Ⅱ’, ‘치킨/맨’, ‘나뭇가지를 든 여인’, ‘침대에서’ 등 인체 조각으로만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해 온 론 뮤익의 작품 10점... 제대로 살펴볼 소중한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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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4.11 17:22:32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현대 조각의 세계적 거장 《론 뮤익》 전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C,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과 공동주최하는 전시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b.1958)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30여 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며 놀라움을 선보여 온 작가 론 뮤익의 시기별 주요 작품을 총망라하여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현대 조각의 흐름과 변화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다. 그의 창작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작품 10점과 함께 스튜디오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필름 두 편 등 총 24점을 소개한다.

론 뮤익 사진 © 고티에 드블롱드.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해 온 론 뮤익은 조각 매체의 재료, 기법, 표현 방식 등 다양한 방면에서 조각 장르의 확장을 끌어내며, 현대 조각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 왔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론 뮤익의 조각적 테크닉과 표현력은 그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 취약함, 불안감 같은 내면의 감정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낸다.

기자간담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극도로 생생한 표현력이 뛰어난 그의 조각은 테크닉과 스케일의 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표현력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 ‘매스’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만의 건축적 특성을 살려 14미터 높이의 전시관에 설치·전시되었습니다. 굉장히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가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기회가 되길 기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홍이지 학예연구사, 키아라 아그라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찰리 클라크(론 뮤익 스튜디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키아라 아그라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와 찰리 클라크 론 뮤익 스튜디오 매니저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먼저 작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론 뮤익(1958년생, 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은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분야에서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는 1996년, 작가 폴라 레고(Paula Rego)의 의뢰로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1년 후 <죽은 아버지>(1996–97)가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전시에서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1년에는 <소년>(1999)이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다. 뮤익의 개인전은 북미, 유럽, 남미, 동아시아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을 순회하며 소개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캐나다 국립미술관(오타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멜버른), 테이트(영국), 휴스턴 미술관(미국),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등 다수의 공·사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론 뮤익’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 6전시실에서 선보인다. 5전시실에서는 1998년 첫 소개된 <유령>(1998/2014)과 그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젊은 연인>(2013)을 비롯하여, 실제 크기의 약 4배 되는 작가의 자화상 <마스크 II>(2002), 암탉과 중년의 남성이 마주하여 팽팽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치킨 / 맨>(2019), 침대에 누운 거대한 인물로 가로 6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 <침대에서>(2005) 등을 선보인다.

전시장은 출품작 한 작품 한 작품씩 관람객들로 하여금 몰입을 끌어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매스>(2016-2017)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오늘날 전쟁, 전염병, 기후 위기, 자연재해 등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 잡은 위치의 역사적인 의미와 미술관의 건축적 특징을 고려하여 특별한 설치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새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6전시실에서는 그동안 잘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창작 과정과 예술가로서의 삶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Gautier Deblonde)의 작업실 사진 연작, 그리고 다큐멘터리 두 편을 선보인다. 고티에 드블롱드는 론 뮤익의 오랜 협업자이자 관찰자이다.

마스크 II, 2002, 혼합 재료, 77 × 118 × 85 cm. 개인 소장.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시작인 5전시실 초입, 그의 대표작이자 자화상 <마스크 Ⅱ>를 만날 수 있다. 앞면을 보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숨이 나올 것만 같은 정교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뒤를 보면 얇은 재질로 만든 가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텅 빈 머리 안쪽은 정면에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꼈던 실체를 의심하게 만들며 이것이 단순히 껍데기라는 사실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 재료, 170 × 183 × 120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어 만나는 <나뭇가지를 든 여인>은 실제 사람 크기보다 아주 작게 만들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 여인은 나체로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데, 실제보다 오히려 꿈의 영역에 더 가까운 성격을 나타내며,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비유적인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침대에서, 2005, 혼합 재료, 162 × 650 × 395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나뭇가지를 든 여인>이 실제보다 작은 모습이었다면, <침대에서>는 6미터가 넘는 길이의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 여인은 굉장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엄청난 크기 때문에 마치 초현실주의적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워 있지만 잠을 자려고 하는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지, 잠에서 막 깨어난 건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작품의 스케일은 론 뮤익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가 작품을 실제보다 작게 혹은 크게 묘사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 자신이 처해있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큐레이터는 설명한다. 관객이 실제와 작품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관객이 실제가 아닌 다른 상상과 감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다.

치킨_맨, 2019, 혼합 재료, 86 × 140 × 80 cm.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치킨/맨>은 가구 배치부터 남성의 신체와 자세, 집중된 시선, 그리고 닭의 경계하는 눈빛과 자세까지, 모든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공간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동등한 대결을 앞에 두고 관객은 작품의 두 주인공 중 한쪽의 관점, 혹은 심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유령, 1998_2004, 혼합 재료, 202 × 65 × 99 cm. 야게오 재단 컬렉션.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유령>은 무언인가 숨기거나, 회피하고 싶어 하는 소녀의 시선에 눈이 간다. 소녀의 신체적 특징은 그녀가 실존하는 특정 인물일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사춘기 소녀가 변화하는 몸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과 수줍음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이 감정은 유독 확대된 인물 크기를 통해 더욱 강조되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그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젊은 연인, 2013, 혼합재료, 89×43×23cm, 야게오 재단 컬렉션.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역시 10대 청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젊은 연인>은 실제보다 작은 모습이다. 앞에서 보면 작은 목소리로 서로 속삭이고 있는듯한 어린 커플이 다정해 보이지만, 남자가 등 뒤로 여자의 팔을 잡고 있는 접촉 방식은 미묘하고 모호한 감정을 암시한다.

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재료, 113×46×30m,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쇼핑하는 여인>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온 ‘어머니와 아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일 수 있다. 여성은 커다란 외투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있다. 두 손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있어 지친 표정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아기의 작은 손가락은 간절하게 엄마의 가슴 위에 얹혀 있고, 아기는 엄마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듯 올려다본다. 여성은 생각에 잠겨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관객은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공감할 수 있다.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5전시실 끝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기다리던 <매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장을 향해 난 창문까지 높이 쌓은 거대한 해골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작품의 영감은 작가가 지하 묘지 카타콤에서 본 무너져 내린 인간의 뼈들로부터 나왔다. 관람객을 죽은 자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도 있고,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연상할 수도 있다. <매스>는 론 뮤익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관객을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리려는 작가의 열망을 보여준다.

배에 탄 남자, 2002, 혼합 재료, 159 × 138 × 429 cm. 개인 소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매스>의 감동을 가슴에 담고 6전시실로 이동하면, <보트를 탄 남자>와 <어두운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보트를 탄 남자의 시선은 무엇인가를 보고 있지만 결코 눈이 마주쳐지지 않는다. 남자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미술 평론가 저스틴 패턴은 이 남자에 대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내면의 세계로 물러서거나 떠내려가는 듯하다”라고 표현했다. 이 작품은 존 뮤익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어두운 장소, 2018, 혼합 재료, 140 × 90 × 75 cm. ZAMU.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마지막으로 <어두운 장소>는 완벽하게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마스크 얼굴의 형상을 보여주는데, 가까이 다가가 세부를 살피기보다는 감정적 표현에 집중하게 된다.

6전시실에서는 론 뮤익의 창작과정과 내면을 담은 고티에 드블롱드의 작업실 연작과 다큐멘터리가 전시되어 있다. 거는 25년간 영상과 사진으로 론 뮤익의 스튜디오와 작업 과정을 기록했다 다큐멘터리 중 <스틸라이프:작업하는 론 뮤익>은 좁은 스튜디오에서 거대한 조각들이 형태를 갖추고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작 과정을 기록한 <치킨/맨>은 놀랍도록 정밀한 세부 표현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치킨_맨,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9 - 2025, HD 영화, 13분. ⓒ 고티에 드블롱드.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스틸 라이프_작업하는 론 뮤익,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3, HD 영화, 48분. ⓒ 고티에 드블롱드.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의 작품은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외형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하며 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 간의 과정으로 완성되는데 이는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시대 저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관객을 성찰의 자리로 이끌며,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실재하고 있다는 감각과 그 의미를 깨닫게 한다.

론 뮤익 작품을 감상한 후 관람객 스스로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예술적 성찰에 이르도록 돕는 다양한 연계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전시를 관람하고 작가의 작품세계와 연결되는 키워드들로 진행하는 워크숍, 디지털 콘텐츠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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