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3층짜리 집을 또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그때는 이 집에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번엔 ‘취향가옥 2: Art in Life, Life in Art 2’다. 전시의 연속성을 뜻한다.
디뮤지엄은 ‘더 짙어진 취향, 더 다양해진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굳이 시즌 1과 비교하자면, 이번엔 대림문화재단의 소장품과 컬렉터들의 컬렉션으로 공간을 가득 메웠다.
물방울과 한지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찍은 점 하나
첫 번째로 방문한 2층은 ‘스플릿(split) 하우스’다. 오래된 걸작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거실 한쪽 벽에 아주 커다란 그림 액자 하나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김창열 작가의 대표작 ‘물방울’(1979)이다. 금세라도 액자 밖으로 물방울들이 또르르 떨어질 듯하다.
김창열은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 생활이 어려웠던 김창열은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나중에라도 물감이 잘 떨어지게끔 물을 뿌려놓았다. 캔버스 위에 내치듯 크고 작게 뿌렸던 물방울이 어느 날, 마치 한 점의 그림처럼 보였다. 시간이 멈춘 듯도 했다. 그때부터 김창열은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칠거칠한 표면 위에 영롱한 물방울들을 섬세한 터치로 그렸는데, 이 극명한 질감의 대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철학적이고 명상적으로 바뀌어 갔다. 거실 맞은편 다이닝룸에선 환갑 이후에 그렸던 ‘회기’(1996)라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시선을 짧은 거리의 복도로 옮겼다. 긴 세로 길이의 한지(188×66㎝)에 탑(塔) 그림만 덩그러니 놓였다. 이정진 작가의 작품 ‘파고다’(1998)다. 분명 탑 그림은 맞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위아래 모습이 같다. 물에 반사된 모습 같기도 하다. 주변에 나무나 풀도 없이 오로지 탑만 담았다.
디뮤지엄 남휘 에듀케이터는 이를 두고 “탑이 그 주변의 어떤 역사적 관계나 시공간에서 해방돼, 시간을 초월한 듯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탑이 공중에 뜬 듯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작품은 전통 한지 위에 사진을 인화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인화할 때 사용하는 감광제(感光劑)를 붓으로 도포(塗布)하고, 탑을 뺀 나머지 부분은 모두 특수 처리했다. 그러니 탑 형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만 고스란히 남는다. 이정진은 한지를 얇고 연약한 종이가 아니라 무척 강한 재료로 생각했다.
권영우는 해방 후 1세대 작가다. 수묵(水墨) 화풍이 지배했던 195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다.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흔히 사용하는 먹·붓·한지 중에서 오로지 한지만 작업 재료로 사용했다.
그는 한지를 얇게 겹치거나, 도구를 이용해 뚫거나 찢는 방식으로 한지의 재료적 특성과 질감을 최대한 극대화한다. 작품 ‘무제(검정)’(1993)’에서도 잘 드러난다. 넓은 판자 위에 물감을 고르게 펴 바르고, 그 위에 얇은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물감은 서양의 불투명 수채화 재료인 과슈(gouache)와 동양의 먹을 섞어 만들었다. 물기와 함께 확산하는 특징의 먹과 서서히 자리 잡으면서 굳어가는 과슈가 만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른다. 그 과정에서 종이가 겹쳐지고 긁히고 찍힌 흔적들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권영우는 캔버스 위에 무엇을 그릴지 고민한 게 아니라, 종이를 다루는 이 행위 자체를 작품화한 작가였다.
그 자리에서 옆으로 눈을 옮기니 도자기 접시에 그려진 얼굴 하나가 퉁명스레 쳐다본다. 대충 그림만 봐도 작가가 누군지 알겠다. 파블로 피카소의 장식용 접시 작품 ‘정사각형 속 얼굴’(1956)이다. 그는 말년에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면서 도자기나 판화 작품도 만들었다. 이 접시는 100개만 제작했는데, 그중 한 점이 디뮤지엄 소장품이다.
거실에서 나오니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이우환 작가의 ‘조응’(1993)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작품을 두고 흔히 말한다. “나도 그릴 수 있겠는걸?”
그의 붓은 점 하나를 찍는 데만 5분이 걸린다. 크기나 방향 등을 신중히 고민한다. 숨을 참고 집중하며 온 힘을 다해 찍는다. 그 점도 그가 생각한 모양대로 그리기 위해 따로 맞춘 붓을 사용한다. 하나의 점을 찍고 말리고, 다시 찍는 과정은 40일가량 걸린다. 작품을 잘 살펴보면, 점을 찍을 때 종이를 누르는 힘, 그리고 붓이 지나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 “나도 그릴 수 있겠는걸”일까?
이우환 작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평소 사물 간 관계를 깊이 있게 고민했다. 남휘 에듀케이터는 “이 작품을 통해선 생성과 소멸 그리고 사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이우환은 이 점이 어떻게 놓여 있느냐에 따라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의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고 알려줬다.
백남준의 ‘사과나무’, 리히텐슈타인의 낯선 회화
3층보다 4층을 먼저 찾았다. 이 공간은 ‘듀플렉스(Duplex) 하우스’다. 과감한 색채를 바탕으로 한 유쾌한 감성의 작품들이 이곳에 가득하다.
입구엔 텔레비전 모니터들이 사과나무 모양으로 장식돼 있다. 세어보니 모두 서른세 대다. 그렇다. 미디어를 새로운 예술의 가치로 바라봤던 작가, 백남준의 작품이다.
백남준은 전파를 수신하고 빛을 발산하는 텔레비전 혹은 미디어를, 마치 자연 속에서 나무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산소를 발생시켜 지구의 생명체가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사과나무 모양으로 빗대 표현했다. 그래서 작품명도 ‘사과나무’(1995)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백남준의 작품을 하나 더 만난다. ‘즐거운 인디언’(1995)이다. 언뜻 인디언이 스쿠터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얼굴·팔·가슴은 크고 작은 모니터로 대체했고, 손과 머리는 활과 화살, 깃털 장식 모양의 조명으로 꾸몄다. 아메리카 원주민 호피족의 신화에는 방패를 타고 날아다니는 하늘의 신과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해 주는 메신저인 가면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스쿠터 앞은 가면처럼 생겼다. 모니터에는 자동차·비행기 등의 이동 수단과 전화기·컴퓨터 같은 통신 매체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가 없어지고 또 나타나길 반복한다. 백남준은 서양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원주민의 문화를 작품에 담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세계화는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평일에는 낮 12시부터 3시까지만 영상과 불이 들어온다. 작품 보호를 위해서다.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듀플렉스 하우스는 복층 구조다. 계단으로 오르면 또 다른 신세계다. 오르기 전, 크게 걸려있는 대형 회화 두 점. 그중 하나가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 작품이다. 허나, 그의 작품 같지 않다. 우리가 아는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장면을 이용하고 뚜렷한 윤곽선이나 무수히 많은 점이 특징인데, 이 ‘불완전한 회화’(1988)는 너무도 낯설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스타일로 바뀌었다. 굵은 윤곽선으로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만들어냈다.
그림의 왼쪽 아래를 잘 보면 회색 삼각형 모서리가 작품 테두리 밖으로 튀어 나가 있다. 실수가 아닌 의도된 연출이다. 도형이나 선을 이처럼 바깥으로 빼면서 이를 ‘불완전한 회화’라고 불렀다. 비대칭성과 불안정성을 강조한 이 작품은 작가의 추상 시리즈 중 하나다.
계단을 오르니 온통 미니카 천지다. ‘컬렉터 K’가 40여 년간 열정으로 모아온 것들이다. 그가 여태 수집한 작은 차는 무려 10만여 점에 이른다. 올드카부터 영화에 나왔던 자동차까지, 작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는 미니카들을 실컷 볼 수 있다.
컬렉터 K는 다른 공간의 빈티지 넥타이 컬렉션을 통해서도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넥타이들을 보여주고 있다.
온통 모노톤, 복잡함 속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다
3층 ‘테라스(Terrace) 하우스’는 모노톤의 작품들로 채웠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도 차분한 내면을 유지하려는 삶의 태도를 시각화한 공간이다. 그런 까닭에 블랙&화이트 톤의 미니멀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가장 눈에 띈 작품은 김영택 작가의 펜화다. 위아래 네 점씩 모두 여덟 점. 김영택은 0.03㎜ 펜촉으로 50~80만번의 선을 그어 사진처럼 정교한 그림을 그린다. 1㎜ 반경에 다섯 번의 선이 지나갈 정도로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김영택은 전국을 다니며 오래된 건축물들을 펜으로 그려 이를 보존하는 ‘기록 펜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까지 눈으로 보이는 것만 재현해내는 게 아니라 소실된 부분까지도 역사적 자료를 뒤져가면서 온전히 복원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가는 펜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곧 수행(修行)”이라고 말했던 김영택의 정성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재밌는 점. 이 펜화 중 한 점만 펜화를 바탕으로 한 석판화다. 아랫줄 맨 오른쪽이 그것인데, 이 작품에만 에디션 넘버가 없다. 보통 펜화에는 에디션 넘버를 단다. 직접 볼 관람객을 위해 작품명은 생략한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인 듯 테라스가 참으로 예쁘다. 단단해 보이는 테이블 위로 이름 모를 식물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테이블은 김무열 작가의 작품이다. 마치 도자기를 빚듯 흙으로 만든 세라믹 가구다. 김무열은 형태를 만들 때 생기는 손자국이나 유약의 두께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 그리고 흙을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라짐 같은 건 그대로 둔다. 흙을 다루는 과정에서 생기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형태보다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아름다움에 더 깊은 의미를 둔다.
위쪽 식물은 박소희 플로리스트의 작품이다. 꽃 외에도 식물 줄기나 덩굴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듯 표현해낸다.
다이닝룸에선 조명 하나에 꽂혔다. 폴 헤닝센의 작품이다. 정교하게 빛을 ‘설계’한 작품이다. 헤닝센은 이 조명을 만들기 위해 1년 정도를 암실에서 살며 조명 갓의 크기나 형태, 색깔과 소재를 바꿔가며 연구했다. 이 작품도 잘 보면 구리로 된 나뭇잎 모양의 전등갓 일흔두 개가 절묘하게 이어져 있는데, 어느 곳에서 봐도 눈부심 없이 부드러운 빛을 고르게 퍼뜨린다. 작업 과정에 작은 실수가 발생하면 빛의 방향이 미묘하게 틀어져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한다.
작품명은 ‘PH 아티초크’다. 조명이 북유럽에서 즐겨 먹는 채소인 아티초크를 닮아서다. PH는 폴 헤닝센의 이니셜이다.
거실에 이르니 재미난 소파가 눈길을 잡아끈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는 프랑스 작가 미셸 뒤카로이 작품이다. 소파의 주름진 형태가 특징이다. 다 쓴 치약을 쥐어짠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모습은 독특하지만 깨나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불편함을 모른단다. 1973년 처음 선보였을 때 많은 예술가와 음악가에게 사랑받은 디자인인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랑은 변함이 없다.
내년 2월 22일까지 전시
작가는 그의 삶을 그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고 믿는다. 우린 그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짐작한다. 검든 희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보여주는 그들의 용기가 갸륵하고 갸륵하다.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다. 화·수·목·일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토요일은 오후 7시까지다.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성인 1만2000원, 청소년 6000원이다. 1층 굿즈 숍에선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발목을 잡는데, 전시와 다른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