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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연대기 벗어나 작가의 사유·의식 흐름 따라 전시

스웨덴 출신 힐마 아프 클린트의 회화·드로잉·기록 139점 전시...유명한 열점의 대형회화도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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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7.21 21:02:17

부산현대미술관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10년간 서구의 주요 미술관에서는 집중적인 재조명을 통해 힐마 아프 클린트의 독창적 형식과 심오한 영적 세계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80년대 말부터 2025년까지 솔로 전시와 그룹전을 통해서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에 소개됐다.

부산현대미술관은 회화·드로잉·기록 139점을 전시하며 힐마 아프 클린트를 대한민국 부산 사화구에 소환했다. 7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첫 순회전이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그런데 도쿄 전시와는 다른 구성이다. 그 다름이 지금 부산현대미술관이 그녀를 소환한 이유이다. 부산에서는 연대적 배열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와 의식의 흐름, 그것에서 도출된 질문을 따라 전시를 감상하게 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사는 “이 전시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기획을 구상했었다. '단순히 연대기적 서사의 회고자라는 틀을 그대로 받아오는 게 아니라 이 작가를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공간 속에서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방식이 없을까'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제약과 조율 과정 속에서 완전히 다른 전시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연대라는 시간의 큰 틀은 가져 오면서 그 안에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같은 연작을 전시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나 질문을 바꾸는 그런 원고를 작성했고, 연대의 배열은 유지를 했지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어떤 단절이나 비약 혹은 반복 같은 감각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구도자적인 태도와 철학적 사유는 신비주의적 사상 철학 체계인 신지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그 뿌리를 인도 고대 철학, 불교 등 동양의 고대 철학에 두고 있다. 그래서 부산 전시에서 관객은 서구의 관객과는 분명히 다른 공감대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최상호 학예사는 그녀를 단순히 추상 회화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쉬운 요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1906년에 이미 비구상 회화를 시작을 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같은 거장들 보다 앞선 시기에 이런 작품들을 제작했다. 최 학예사는 그런데 힐마 아프 클린트를 단지 추상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힐마 아프 클린트가 주체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일종의 영매로서, 매개자로서의 예술가라는 점도 특별하다. 이번 전시는 7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단순히 어떤 시대나 사건을 보여주는 구조가 아니라 감각의 장면과 전환의 순간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전시 전경(초기 그림).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작가는 수의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어떤 것을 해부하고 그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을 통해 오히려 점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시 초입에 꽃, 식물을 그린 작품이 걸려 있지만 이어지는 작품들은 추상적인 그림이다. 작가는 5인회라는 실천 공동체를 만들어 마스터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시각화한다. 마치 ‘분신사바’처럼 자동 기록 드로잉도 수행한다. 이것은 힐마의 추후 그려질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점점 추상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힐마 아프 클린트는 신전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길 원했는데 그 그 신전은 결국 지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신전이라는 것을 상상하고 신전을 위한 그림이 다양한 연작들로 이어진다.

전시 전경(열점의 대형 회화).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대형 형상화라는 작품들은 자신의 드로잉에서 시도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질서를 정립하는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에는 십자가가 많이 있다. 그런데 상징을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상징을 사용해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겠다라는 결심이 보여주는 회화이다.


유명한 열 점의 대형 회화는 규모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단 40여 일에 걸쳐 완성됐다고 한다. 굉장히 빠른 시간에 작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열 점의 대형 회화는 인생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인생의 처음과 끝을 그린 작품으로, 인간 생명의 흐름과 의식의 진화를 거대한 화면 위에 단계적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진화’ 옆에 있는 ‘인식의 나무’ 또한 신전을 위한 회화 연작 중 하나이다. 인식의 나무는 인간의 신경망 같기도 하고 뿌리로부터 가지로 뻗어 나가는 모습이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발현하고 어떻게 세계와 맞닿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전시 전경(백조 시리즈).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어지는 백조 시리즈는 두 번째까지는 백조가 확연하게 보이고 그 다음부터는 추상화처럼 변한다. 그 다음 세 점의 작품은 신전을 위한 회화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작품으로 이 회화를 마지막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는 193점의 작품을 마무리하고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드로잉에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청색 화첩.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청색 화첩은 기획자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록이다. 오른쪽에 검정색이 있고 왼쪽에는 뭔가 칠한 것들은 드로잉이다. 왼쪽에는 작가가 그림이 너무 크다 보니 사진을 찍어 작게 만든 다음 그것을 다시 한 번 복구하거나 아니면 다시 한 번 새로 새로운 칠을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힐마 아프 클린트는 후기에 점점 나이가 들면서 다시 초반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꽃 그림 같은 모양이 다시 구상의 느낌으로 나타나고 또 기록에도 몰두하기 시작한다. 말년에는 작은 드로잉과 편하게 그린 드로잉이 만들어지면서 마지막 작품들이 오히려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최상호 학예사는 말했다.

전시는 관람자의 자율적인 감각과 해석을 중심으로 작품과의 깊이 있는 소통을 유도하는 체험 공간을 마련했으며 전시와 연계한 영화 상영도 함께 진행한다.

기호적으로 복잡하고 사유의 밀도가 높은 작가의 회화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며, 관람자 각자의 자율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전시 후반부에 ‘감각 소환장’을 마련하고 질문지와 감상평을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관람자가 자신의 감상을 환기하고 머무름의 흔적을 남기거나 자신만의 언어로 전시에 응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시 누리집을 통해 오디오 가이드와 깊이 있는 해설 그리고 다양한 연구자의 심화 연구 원고를 살펴볼 수 있다.

할리나 디르스츠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상영 현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또한, 전시 기간 중 할리나 디르스츠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을 상시 상영하며, 이외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삶에 관한 라세 할스트룀 감독의 영화 〈힐마〉(2022)를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입장 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전시 입장권 또는 온라인 예매내역을 보여주면 무료로 감상이 가능하다. 전시는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수십 년간 힐마 아프 클린트의 전 세계 전시를 따라다니며 일했던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측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다”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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