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글로벌 히트를 치며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이 작품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악마 사냥꾼으로 변신해 모험을 펼치는 스토리로, 화려한 액션과 중독성 있는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져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된 지 두 달 만에 역대 넷플릭스 영화 시청 순위 2위(8.26 기준)에 올랐으며, 급기야 극장 싱얼롱 버전까지 출시되어 북미에서만 18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는 최초의 극장 1위 성과다. 빌보드 핫100에서도 OST 수록곡 ‘골든’이 2주 연속 2위를 기록하고, 모든 수록곡이 상위권에 올라 많은 한국 네티즌들은 “케이팝이 세계를 정복했다”며 뿌듯해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교 사례로 드는 중국 애니메이션이 ‘너자 2(Ne Zha 2)’다. 중국에서 개봉 직후 13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고, 지난 5월 기준 글로벌 총수입이 21.4억 달러에 달해 전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세웠지만, 총 해외 매출은 3600만 달러에 그칠 정도로 반응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총수입의 98%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한 셈이어서 많은 한국인들은 ‘자국 중심’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너자 2’가 과연 ‘중국 내수용’에 그칠 뿐인 실패작일까? 궁금한 마음에 ‘너자 2’를 뒤늦게 감상해봤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래픽 디자인 수준이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고, 특히 3D 애니메이션의 세밀한 표현이 압도적이었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유연하고, 배경은 중국 전통 미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각적 충격을 줬다. 기술적으로는 AI 기반 렌더링과 고해상도 효과가 돋보여, 중국 애니 산업의 발전을 실감케 했다.
스토리 구성도 탄탄하고, 매력적이다. 강력하지만 악한 존재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따돌림당하는 너자의 내적 갈등과 그런 너자를 감싸주고 헌신하는 부모의 사랑, 용왕의 아들 ‘오병’과의 애틋한 우정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고대 신화 배경의 세계관과 엄청난 규모의 전투 씬은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듯 했다.
물론, 중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 설정과 스토리 구성, 다소 미려하지 못한 면이 있는 캐릭터 디자인,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유머 코드, 지나친 폭력성 등 글로벌 흥행이 쉽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케하는 요소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이 ‘너자 2’의 해외 흥행 실패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산 애니메이션이라 하기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문화를 다뤘고,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한국계 미국인들이 제작진에 대거 포진하긴 했지만, 제작사는 엄연히 일본계 미국 기업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고, 판권을 가진 배급사는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다.
반면 ‘너자 2’는 순수 중국 제작사와 배급사, 중국인 감독이 자국 기술과 창의력만으로 제작한 100% 토종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은 이런 대형 애니메이션을 독자적으로 제작한 경험이 부족하다. 한국 애니 산업은 여전히 웹툰 원작 드라마나 케이팝 뮤직비디오 제작에 치중돼, 장편 애니메이션 분야는 취약하다.
애니메이션 분야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이 지배하고 있고,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중국이다. 조만간 ‘너자 2’의 완성도를 뛰어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상의 글로벌 흥행을 기록할 중국산 애니메이션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미 중국은 지난해 게임 분야에서 ‘검은 신화: 오공’으로 그런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 문화경제 정의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