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9.16 22:00:20
전남도립미술관이 기획한 국제전시《BLACK&BLACK》이 막을 올렸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4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수묵 남종화와 1950년대 서구 블랙 회화를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교차 조망하는 전시로 국내외 총 20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회화와 도자기, 영상 설치 등 작품 70여 점이 한자리에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전남도립미술관은 파리시립 세르누치 아시아미술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센터, 아르퉁 재단 등 프랑스 유수 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작품을 대여했으며 여기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여러 기관의 협력으로 작품 스펙트럼을 넓혔다.
1950년대 파리 화단은 전후 국제미술의 중심 무대이자, 다양한 문화와 사조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 파리는 단순히 유럽 미술의 수도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모여들며 예술적 실험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국제적 예술의 장이었다.
특히 중국 출신 화가 자오우키(Zao Wou-Ki)는 서정적 추상의 흐름 속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작업은 전통 중국 회화의 서예적 필치와 산수화적 공간 개념을 서구적 색채와 즉흥적 붓질과 결합하여, 시적이고 서정적인 추상의 세계를 열어갔다. 그의 성공은 아시아 작가들도 세계 미술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동시에 서구의 작가들, 예를 들어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한스 아르퉁(Hans Hartung) 등은 아시아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앵포르멜의 격렬한 제스처와 물질성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발전시켰다. 이로써 파리 화단은 단일 문화권의 미술이 아니라, 동서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국제적 차원에서 새로운 미술 언어를 구축해가는 중심 무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60년대 한국 작가들의 등장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응노(Lee Ungno)는 파리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동양의 서예적 전통을 현대 추상 회화로 확장해내며 프랑스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는 전통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허물며, 국제적 담론 속에서 ‘동양적 추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 이우환(Lee Ufan)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서구에서 활동하며 ‘관계항(Relatum)’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서구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모색하며, 존재와 사물, 공간 사이의 긴장 관계를 탐구했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동양적 공간 개념을 기반으로 하였고, 이는 서구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쳐 국제 미술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Black & Black》 전시는 단순히 동서양의 블랙 회화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파리 화단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교류와 예술적 상호작용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한국과 아시아 작가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며 서구 미술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는 자리이다. 특히 남도 수묵 남종화가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정신성과 추상성은 서구 작가들의 블랙 회화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남도 수묵의 여백과 먹빛의 농담이 보여주는 기(氣)의 흐름은, 술라주와 하르퉁의 격렬한 제스처와 물질성이 드러내는 생명력과 서로를 비추며 동서양 블랙의 조응을 가능케 한다.
검정이라는 공통 언어는 이 과정에서 단순한 색채가 아닌, 동서양을 연결하고 시대를 넘어 예술적 사유를 확장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는 동서양 거장들의 대표작과 더불어 남도 수묵의 흐름을 함께 조명한다. 참여 작가로는 서구 거장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한스 아르퉁(Hans Hartung), 장 드고텍스(Jean Degottex),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자오우키(Zao Wou-Ki)를 비롯해, 한국 현대미술을 이끈 이우환, 이응노, 이강소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 공재 윤두서에서 시작해 소치 허련,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남도 수묵의 전통이 소개되며, 현대 수묵의 맥을 잇는 김호득, 정광희, 최종섭, 송필용, 박종갑, 설박, 황인기, 박정선 등이 함께 참여해 한국 수묵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색채 전시가 아니라 검정이라는 공통 언어가 어떻게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예술적 교감을 이루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