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10.17 19:10:56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이 오는 10월부터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무대로 '안트로폴리스 5부작 ANTHROPOLIS Ⅰ~Ⅴ'(이하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윤한솔, 김수정 연출가의 목소리에서 대장정을 여는 비장함이 뭍어났다.
윤한솔 연출은 “저는 프롤로그와 디오니소스 연출을 맡았는데 프롤로그는 신탁 신화에 관한 건국 신화에 관한 소개 그리고 현대 문명이 전파되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해서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봤고요. 동시에 단순히 디오니소스의 프롤로그가 아니라 전체 다섯 작품의 프롤로그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장면들을 만들어 봤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새로운 세력과 구세력과의 대립라는 생각을 좀 해봤고요. 그래서 신과 그의 세력들 그리고 정주자들의 대립, 새로운 문화와 구문화 간의 대립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작품을 풀어봤습니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테베 왕가의 건국과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신인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을 벌하고 신성에 도전하지 않는 자들에게 파멸을 안겨준다는 이야기를 담은 <디오니소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에우로파가 황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되는 이야기로 시작해, 문명화를 이룬 부유한 도시 테베의 왕 펜테우스와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특히 디오니소스가 신으로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펜테우스를 처벌하는 과정을 집단적 욕망과 광기로 얼룩진 인간성으로 가감 없이 표현하는 등 폭력적인 비극에서 시작한 고대 문명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현대 사회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5년에 살고 있는 연출가는 신화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윤한솔 연출가는 “신화라는 게 그 당시에는 권선징악으로 누군가에게 벌을 주고 그걸 통해서 어떤 다수의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였지만, 역사를 지나오게 되면서 역할이 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화 혹은 현대의 법이 다수의 사람들을 통제한다면 그 통제 수단이 과연 유효한가? 그런 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은 비극들과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어떻게 하면 통제가 되고, 통제를 하는 것 자체가 맞는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확장됐습니다”라고 답했다.
대본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원작이지만 연출은 노래와 춤으로 이를 해결했다. 전령 역할을 하는 목동이나 노예들의 대사의 경우 4~5분, 10분 씩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연출은 이를 가사가 있는 노래로 풀었고 라이브 밴드를 무대 위로 올렸다. 작곡가는 신나는 분위기와 장면의 톤과 전환을 위해 안무도 고민했다.
이어서 11월 6일부터 공연되는 ‘라이오스’는 김수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5부작 중 유일하게 원작 각색이 아닌 직접 창작한 희곡으로, 1부작을 보지 않아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없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디오니소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에 비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라이오스라는 인물에 주목, 신화 속에서 조연에 그쳤던 라이오스를 서사의 중심으로 옮겨와 그동안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가 테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전사(前史)를 재구성했다.
앞서 1부작인 ‘프롤로그/디오니소스’가 18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대규모 프로덕션이었다면, ‘라이오스’는 무대 위 오직 한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1인극‘으로 진행된다. 작품은 단일한 문학적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서사시, 대화, 독백, 지시문 낭독 등 다성적(多聲的) 텍스트를 단 한 명의 배우가 다역의 다성적인 목소리로 전한다. 그리고 그 한 명의 배우는 전혜진이다.
김수정 연출가는 “전혜진 배우 외에 다른 누군가가 꼭 출연해야 하느냐는 고민도 해봤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냥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전혜진이라는 배우가 시작해서 끝을 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라고 전혜진 배우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전혜진은 라이오스,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 예언자 피티아, 테베의 시민들 등 극 중 인물이자 서술자로서 다성적인 내면과 행동을 묘사하는 ’이야기꾼‘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5부작이나 되는 이번 공연의 연결과 흐름이 궁금했다. 5부작에서 무대 미술은 한 사람이 담당한다. 분장, 의상, 음향의 경우도 1,2부작의 경우 4명의 디자이너가 동일하게 진행한다. 하지만 큰 틀은 유지하면서 연출가마다 각각의 작품에 변주를 준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무대미술은 ‘활화산’으로 2024 동아연극상 무대상을 수상한 임일진이 맡았다. 각각의 작품마다 상징적인 콘셉트를 구현한 무대를 통해 결국 ’테베‘라는 공간으로 5부작이 모두 연결되는 세계관을 완성하고자 한다. 또한 <프롤로그/디오니소스 Prolog/Dionysos>와 <라이오스 Laios>는 임일진을 비롯해 김성구 조명디자이너, 김지연 의상디자이너, 백지영 분장디자이너, 전민배 음향디자이너가 함께 1~2부작의 시청각 비주얼을 맡아 관객을 황홀한 세계로 이끈다.
이후 국립극단은 2026년에 3부작 ‘오이디푸스 Ödipus’, 4부작 ‘이오카스테 Iokaste’ 그리고 5부작 ‘안티고네/에필로그 Antigone/Epilog’까지 무대에 올려 5부작의 대장정을 완성할 예정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