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10.20 18:42:13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부산문화재단(BSCF, 대표이사 오재환) 홍티아트센터는 오는 10월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김선열 작가의 개인전 <서부전선 이상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를 통해 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2025년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의 일곱 번째 순서로, ‘카타스트로테크 솔루션즈(CatastroTech Solutions, 이하 CTS)'라는 가상의 군수·재난관리 기업의 '팝업 스토어' 형태로 기획되었다. 약 2주간 관람객들은 재난 이미지를 소비하고 감정을 데이터화하며 모든 것이‘관리’나 ‘구독’의 언어로 포장되는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한 풍경을 홍보물, 설치, 영상으로 마주하게 된다.
홍티아트센터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CTS가 개발했다는 핵심 <재난 관리 솔루션>을 체험하게 된다.
전시의 핵심 기술들은 재난이 어떻게 상품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시각충격 통합(VSI)>은 재난에 대한 과잉 이미지 노출이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무디게 하는지 시각화한다. <감정수집 드론(ESD)>은 관람객의 표정과 시선을 실시간 분석해 색상과 수치로 변환하며, 가장 사적인 감정인 불안감조차 측정 가능한 데이터로 취급되는 현실을 체험하게 한다.
특히, <안전지역 셸터(SZS)>는 은박 담요 속에서 ‘안전감’이 서비스처럼 판매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세이프 코인 전환(SCC)>은 관객이 기부를 하면 석고 코인을 가져가도록 해 재난에 ‘무언가를 보탰다’는 자기위안의 감각이 교환 가능한 무언가로 쉽게 변하는 과정을 비튼다. 마지막으로 <미소교정 프레임(SMF)>은 흔들리던 표정을 규격화된 ‘안심된 미소’로 만들어,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규율되는지를 보여준다.
김선열 작가는 “재난은 이제 뉴스의 사건이라기보다, 알림·패키지·구독의 형식으로 포장된 관리의 언어가 되었다”며 "불안·데이터·보상의 불편한 결합을 기업 홍보의 문법을 빌려 전시장 안에서 드러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장 곳곳에는 ‘본 프로젝트는 가상의 기업 설정에 기반함’, ‘구독 안내는 전시 종료 후 시작합니다'’등의 문구가 병기되고, 본 전시는 실제 판매나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안내한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시각문화가 재난을 어떻게 보이게(스펙터클화) 하고, 측정 가능하게 만들며, 결국 교환 가능한 무언가로 번역하는지를 추적한다. 작가는 대중매체가 구축한 ‘스펙터클의 경제(기 드보르)’와 위기 상황을 시장 논리로 전환하는 ‘쇼크-수익화(나오미 클라인)’의 비평적 시선을 바탕으로 재난과 자본의 불편한 공모를 비틀어 보여준다.
기술이 주는 환상과 그 이면의 아이러니를 탐구해 온 설치미술 작가 김선열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군수기업의 익숙한 홍보 방식을 예술의 맥락에서 마주하면서, 우리에게 ‘보호의 약속’을 하는 기술과 우리를 ‘감시하는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쉽게 맞물리는지를 체감하도록 유도한다.
한편, 홍티아트센터는 시각‧설치 분야의 창작 지원과 국제 레지던시 교류를 통해 동시대 예술 담론을 확장하는 창작공간이다. 릴레이 개인전은 입주작가들이 체류 기간 동안 진행한 창작 활동 및 리서치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장으로, 전시를 통해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다양한 접점을 모색해왔다. 이번 김선열 개인전에 이어, 빌라 부산 입주작가 옴블린 레이(Omblin Ley, 프랑스)의 전시가 11월 12일(수)부터 개최될 예정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