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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기업] 동화약품 창업주 민강, ‘활명수’로 독립 자금 지원

동화약방 통해 독립운동 지원·약학 교육 기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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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한시영⁄ 2026.03.17 14:47:26

'활명수를 낳은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민강' 평전. 사진=동화약품

한국 최초의 제약사 동화약품을 설립한 민강(1883~1931)의 삶과 독립운동 활동을 조명한 평전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국산 소화제 ‘활명수’ 개발과 동화약방 창업을 통해 제약 산업의 기반을 마련한 그의 삶을 비롯해 독립운동 지원과 교육·약학 발전에 기여한 활동도 담았다. 또한 서울 여학생 만세운동에 참여한 친척 민금봉의 생애도 함께 조명한다.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조국 독립을 꿈꾸다


민강은 1897년 한국 최초의 제약사인 동화약품(당시 동화약방)을 설립해 초대 사장을 맡으며 국내 제약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부친 민병호 선생과 함께 국산 소화제 ‘활명수’를 개발해 소화불량으로 고통받던 구한말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

그는 양반가 출신이었지만 관직 대신 동화약방 창업을 선택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뜻에서 약을 만들고 판매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왕명을 전달하는 궁중 선전관이었던 민병호는 궁중 비법과 서양 의약 기술을 접목해 소화제 활명수를 개발했다. 활명수는 한의학 전통과 서양 의학을 결합해 탄생했으며 당시 흔하던 가루약이나 환약과 달리 물약 형태의 소화제였다. ‘사람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서북지방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동화약방의 1940년대 활명수 제품. 사진=동화약품


민강은 기업인에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동화약방을 독립운동을 위한 국내 연락망과 자금 통로로 활용하고 활명수 판매 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에서 활명수를 판매해 그 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19년에는 탑골공원 인근 종로에 동화약방 분점을 열었다. 이곳은 독립선언문 배포 거점으로 활용되며 매상은 인쇄 비용으로 사용됐다. 약방이 단순히 약을 제조·판매하는 것을 넘어 3·1 운동을 돕는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이후에는 동화약방에 임시정부 국내 연락 거점인 ‘서울 연통부’가 설치됐다. 이를 통해 정보와 군자금 전달 등 임시정부 지원 활동이 이어졌다.

소의학교·조선약학교 설립 참여…약학 교육 기틀 마련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사진=동화약품


민강은 약업 활동뿐 아니라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다. 1907년 소의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와 1918년 조선약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인재 양성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1915년 소의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일제의 사립학교 탄압으로 자금난이 이어지자 일제가 개최한 식민 통치 선전 박람회 ‘조선물산공진회’에서 경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 전액을 학교에 후원하며 운영을 지원했다.

민강은 한국 약학 교육 기반 마련에도 역할을 했다. 조선인·일본인 약업인들과 함께 ‘경성약업조합’ 결성에 참여해 부조합장을 맡았으며, 당시 조선총독부가 한국인의 전문학교 설립을 꺼리던 상황에서도 설립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1918년 조선약학교가 설립됐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으로 이어진다. 민강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제약업계 기업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태극기 소녀 민금봉, 서울 여학생 만세운동 참여

이번 평전은 서울 여학생 만세운동에 참여한 민강 사장의 친척 민금봉 선생의 생애도 함께 조명한다. 그는 동화약방에서 거주하며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이화여고보)에 재학하던 중 태극기를 제작·배포하며 항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민금봉은 1912년 청주의 양반 지주 민영덕의 딸로 태어났다. 출옥한 친척 민강의 병문안을 위해 1922년 아버지를 따라 상경한 뒤 보통학교 시험을 보고 3학년에 편입했다.

 

1927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기독교 선교사가 설립해 총독부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이화여고보에 입학했다. 이후 동화약방에 머물며 학업을 이어갔다.

민금봉은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1930년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여학생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80장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민금봉은 서대문경찰서에 피검돼 훈계방면 처분을 받았으며, 민강 역시 범인은닉죄로 체포돼 취조를 받았다. 정부는 민금봉의 공적을 인정해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이처럼 민강 평전은 활명수와 동화약방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독립운동과 약학 교육 지원에도 힘쓴 동화약품 창업주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동화약품 역시 창업주 민강의 생명존중과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맑은바람 캠페인’을 통한 어린이 식수 지원, 임직원 헌혈, 어린이 생활안전 캠페인, 남산역사탐방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경제 한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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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  민강  활명수  독립운동가  동화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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