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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단절을 끊고 천막을 걷자”

259일째 맞은 고려대 출교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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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호 ⁄ 2007.07.03 14:21:04

지난 해 4월 고려대 보건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선거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17시간 동안 보직교수 9명을 감금한 학생 7명은 학교로부터 ‘출교’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이후 출교생들은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지난해 4월 20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였다. 학교 측에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지 어느덧 259일째를 맞았다. 3일 천막 안에서 만난 출교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해 4월 20일 본교 앞에서 삭발식을 하며 흘렸던 눈물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그 때 잘랐던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다. 학생자치와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지지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은 큰 힘이 됐다. 강영만(26, 컴퓨터 교육학과)씨는 “비정규노동단체는 보건대 학생들이 받는 차별이 꼭 비정규직 차별과 같다고 말했다”면서 “보건대 학생들의 학생자치권을 위해 나선 우리의 행동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희망을 보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259일째 대화를 거부하는 학교 측에 항의하면서도 출교생들이 희망을 갖고 투쟁하는 이유였다. ■‘감금’으로 가려진 출교사태의 속은 ‘교수 감금’은 고대 출교사태의 본질을 가렸다. 고려대 병설 보건대 통합 이후 ‘보건대 2,3학년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줄 것인가’하는 문제로 학생들과 학교 측은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결국 보직교수 9명을 본관 계단에서 4월 5~6일 17시간 동안 감금하는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교수들은 17시간 동안 학생들이 건네려는 한 장짜리 요구안을 끝내 받지 않았다. 출교사태는 보건대 학생들의 총학생회 선거권을 요구하는 한 장짜리 요구서를 건네받지 않았던 교수들과 학생들이 교수 9명을 감금한 것으로 불거졌지만 출교를 당한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고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에 반대하고 항의하기도 했다. 출교생들은 “보복성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출교라는 일방적인 보복성 징계에 시민사회는 우려했지만, 학교 측의 태도는 완강했다. 민주적인 해결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에 뒷짐을 지고 있는 분위기는 3일 만난 이 학교 한 홍보팀 직원의 말에서도 여전했다. 이정철 고려대학교 홍보팀 과장은 “이번 일도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잘못했다고 먼저 나와야 해결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총장이 바뀌어도 변할 건 없다? 출교 당시 총장이었던 어윤대 전 고려대학교 총장은 지난 해 11월 13일 차기 총장 후보들을 상대로 열린 교수회의의 총장 자격적부시 심사에서 탈락했다.

어 전 총장은 4년이라는 취임기간 동안 ‘삼성 100주년 기념관’ 등 학교 내 시설을 새로 짓는 성과를 일궈냈다. 세계화를 위해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모든 강의를 영어 강의로 진행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 취임기간 동안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50위권 대학’에 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사 강의마저 영어로 진행하면서 생기는 생경함과 불합리함도 있었다. 출교생 안형우씨는 “영어공부를 하는지 전공공부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필상 총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취임식을 갖고 고려대학교 16대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이 총장은 선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학교는 법과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교육기관이다. 처벌은 잘못을 뉘우치고 더 잘되라는 채찍이어야 한다”며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여일이 넘도록 학교 측 대화제의는 없다. 주병준(22, 고려대학교 지리교육학과)씨는 “새 총장님께 편지도 보내고 메일도 보내, ‘조건 없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원한다’고 보냈지만 아직 답장은 없다”고 말했다. 출교생들은 보수적인 성향의 재단과 교우회가 이필상 총장의 결단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 소통의 단절, 법정으로 간 출교사태 출교생들이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대화이다. 주병준씨는 “학생과 학생 사이 불신의 골이 깊다”며 “오해는 무엇이었고 서로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대화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해 5월 22일 전국 128개 대학(사립대 96곳, 국립대 32곳)의 징계규정과 학생상벌규정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전국 128개 대학 징계규정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28개 대학 가운데 무려 80개 대학이 징계학생을 징계위원회나 학생상벌위원회 등에 출석시키는 것을 의무화하지 않거나 ‘필요시에만 할 수 있다’는 애매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또 32개 대학은 징계 절차에 대한 규정 자체도 없었다. 최순영 의원은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징계로 학생과 학교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징계 조치를 당한 학생의 이의신청 과정을 명시하거나 징계학생의 과 학생회장·총학생회장이 자리를 함께해 의견을 펼칠 기회를 주는 대학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자 결국 출교생 7명은 지난 6월 ‘출교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최근 법원은 조정과정을 위해 학교 측과 학생들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조정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학교 측은 지난 해 11월 29일자로 본관 앞 천막을 거두라며 출교생 7명과 천막농성을 지지하는 학생 13명 등 20명에 천막철거소송으로 맞섰다. 학교 측은 “언제 어떠한 행동을 실행할 지 모르는 학생들의 천막농성으로 외부 인사 초청 및 방문과 학교 행정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며 “명예 실추와 일반학생들의 수업권 및 피교육권도 심각히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1월 18일엔 천막철거소송 1차 심리가 있는 날이면서 동시에 출교생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지지했던 고대 학생·교수·교직원·시민사회단체·학생운동단체들과 함께 시민사회연대(가칭) 발족식을 가질 예정이다. 학교 측과 출교생들이 출교의 상처를 대화를 통해 씻고 출교생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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