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해 11월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으로 2년 계약이 끝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지난 해 12월 22일 전국의 법원에 보낸 ‘비정규직 보호법률 시행관련 당부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면, 비정규직법이 결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법원행정처는 이 공문에서 올해 7월 1일 시행하는 비정규직 법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검색)업무 종사 기간제 근로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하고, ‘운전업무 종사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근로자를 용역근로자로 전환할 것을 당부(?)했다. CNBNEWS는 김성희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을 만나, 사회양극화 문제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와 7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벌써부터 드러나는 비정규직 법안의 허점을 살펴봤다. 인터뷰는 서울시 서대문 한국비정규센터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 비정규직법 시행을 7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와 외주용역 사례들이 들린다 법원뿐만 아니라 전국 대학교·병원·국가기관에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와 간접고용 사례들이 터져 나오고 있고 더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법안에서 기간제한 2년을 도입하면서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로 전환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노동계는 법안 시행에 앞서 해고되거나 2년이 지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대량해고 사태를 우려했다. 법 시행을 7개월 앞둔 시점에서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업들은 ‘골치 아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법안 조항 가운데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는 애매한 용어가 실효성이 의심되지만 어쨌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간접고용 이른바 아웃소싱을 통해 작은 문제라도 일으킬 수 있는 비정규직 법안을 빗겨가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미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는 더 열악해질 것이다. 요즘 추세를 보면 지난 해 포스코 사태 때 본관 점거라는 사실에 가려졌던 건설노동자들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중요한 주장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결국 작은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악한 차별이 존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다. ■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에 달한다. 규모도 문제지만 사회양극화 문제의 중요한 원인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이 점에 동의해 비정규직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보호법’이 아닌 ‘악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알려진대로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은 1998년 IMF사태 이후다. IMF사태 이후 ‘구조조정·실업·비정규직’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2000년 IMF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구조조정이나 실업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고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됐다. 흔히 IMF사태라는 위기를 2년만에 기적적으로 탈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대중이 희생됐고 이른바 대중의 빈곤화를 희생양으로 한국 경제는 위기를 빨리 탈출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도 기업들의 노동시장 유연화전략이 있었지만 IMF를 계기로 확산됐다. 저성장기에 들어선 한국 경제가 2004년 5%대의 성장률을 보였고 올해도 4%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을 보면 잠재성장률 자체가 소진된 것과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노동시장의 양극화 등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11월 통과한 비정규직 법안은 원칙적으로 모든 노동관계를 법으로 보호할 수 없어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통과된 법안을 보면 ‘비정규직을 불합리한 차별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법 취지는 무색해졌다. 정부가 강조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내용 가운데 차별시정과 관련, 불합리한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만 봐도 그런데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규정을 마련할 예정인데, 적어도 5년은 진정 사례들이 쌓여야 하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인정돼도 중노위 결정에 기업이 불복하면 법정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서 해고를 각오하면서 오랜 기간 소송을 진행하겠는가 무엇보다 지금 추세를 보면, 논란이 됐던 기간제한 사유제한이던 간접고용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 비정규직법의 큰 허점이다. 최근 우리은행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비정규직 법안의 긍정적인 효과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와 같은 우산 안에 들어가 노사 단체협상 결과에 적용받는다면 지금까지 심각했던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이 개선된 것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용은 보장됐지만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비정규직 법안을 빗겨가려는 장치가 도입됐다. 직무성과급제를 모든 은행들이 전부 도입하려는 첫 단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과 다르게 직무성과급제는 직무의 가치를 매겨 차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가와 능력급제 성격이 강하다. 사실상 승진이 없는 예전 여은행원제의 부활이라는 우려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은행 비정규직의 95%는 여성이다. 사실 창구업무는 다른 사람으로 대치하기 힘든 상시 고용노동자로 이들은 마땅히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하지만 임금 차별은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법안이 보호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합리적인 차별’로 포장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어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무관심하다고 전면으로 비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배부른 노동자와 배고픈 노동자라는 이분법은 굉장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금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권리는 거의 무권리 상태에서 피땀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공장 노조에 싸워주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으로 이어진 면이 있었다. 앞서 나간 노동자들로 해택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간격은 벌어졌다. 그 간격에 ‘집단이기주의’라는 공격이 들어왔고 그게 그대로 먹히고 있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절치부심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규직을 끌어당겨 주저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현재 정규직 노조는 개별 기업 수준으로 고립되어 있다. 겨우 작업장 수준에서 자기 권리를 획득하고 있으며 이 수준은 사용자들이 함부로 노조를 공격하고 노동권을 침해하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체로 정규직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조금만 칼날을 들이대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경향은 있다. 그만큼 정규직 노조들이 많이 시달려왔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 등 완성 3차 노조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것에 40%가 찬성하는 뜻을 밝힌 여론조사를 본 적이 있다. 절반이 넘지는 않았지만 기업별노조의 시스템과 정규직노조의 처지를 감안하면 40%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자기 것을 모두 내놓고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고 모두 다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면 희망을 가질 만한 수치다. 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정규직 노조에 대한 비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이 4천~5천만원이고 발전노조 노동자들의 연봉을 두고 386세대부터 심지어 젊은 세대까지 거품을 물고 공분하는 것을 본다. 추호도 흔들림없는 이들의 생각과 이것이 전반적인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이라면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물신주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의 IMF위기극복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고 물신주의와 함께 노동자를 포함해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 현실로 드러날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와 노동·사회단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올해부터 나타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사태는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간접고용 양상까지 겹쳐질 것이다. 정부가 우선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고센터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실체적인 증거들과 정확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비정규직법을 낸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의지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렵다. 사회단체나 노동단체에서라도 제대로 해야한다. 비정규직법이 올해 시행되더라도 2년이 지나야하는 긴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비정규직법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고 이러면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안전망 밖으로 몰리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