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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뒤로 하고 이야기 내세운 ‘묵공’

유덕화·안성기 호연, 사실적 전쟁묘사로 평화·반전 메시지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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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호 ⁄ 2007.07.03 14:23:52

한국과 일본의 제작자, 중국의 감독, 그리고 세 나라의 배우들과 스탭. 한·중·일이 함께 한 범아시아 프로젝트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영화 <묵공>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일단, 만화 <묵공>이 영화로 완성되기까지 걸린 제작기간이 10년에 이르고, 총 제작비 160억원, 6,000명의 촬영인원이 투입되었으니 표면상으로는 ‘대작’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수치적인 것만으로 진정한 대작의 반열에 끼기는 힘들다. 작품적으로 대작임을 인정받으려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개 넘치는 연기자가 있어야 하고 장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며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웅장한 화면이 있어야 할뿐 아니라 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연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묵공>에는 유덕화와 안성기가 출연한다. 이 영화가 액션에 중심을 둔 무협극이 아니기에 두 사람이 맞수로 함께 출연할 수 있어 다행이다. (보도자료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 최고의 배우’ 유덕화와 ‘세계적 배우로 거듭난 국민배우’ 안성기는 몸으로 보이는 액션보다 그동안 쌓은 내공을 펼치는 덕장의 역할을 맡아 은근한 힘을 발휘한다. 서로에게 적장인 혁리(유덕화)와 항장군(안성기)지만 이들은 군사를 이끄는 동료애적인 교감을 나눈다.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 않고 인간적으로 맞서는 기개있는 두 덕장 중 어느 한 쪽을 딱히 편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안성기는 중국어 대사를 본인이 직접 하는 성의를 보였다. 안성기의 가늘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실미도>의 북파공작원들을 통솔하기에 역부족이었지만 희한하게도 10만 대군을 이끄는 항장군의 역에는 잘 어울린다. 한국어와 중국어라는 차이 때문일까? 대군을 호령하는 목소리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또, 최시원과 오기륭이 그들의 연기를 적절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사실, 최시원은 연기경험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아이돌 그룹(슈퍼주니어)의 멤버라는 이미지가 강해 자칫 영화의 방해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혁리로 인해 거만함을 떨치고 군주로서의 덕을 갖춰가는 변화로 양성 백성들의 민심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최시원의 연기는 신인답지 않게 힘있고, 나이답게 너무 무겁지 않다. 대사를 더빙으로 처리한 게 아쉽긴 하지만 역할 설정이 억지스러운 일열(판빙빙)보다 훨씬 작품에 잘 녹아드는 역할과 연기를 보여준다.

장지량 감독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서사극에 평화·사랑·반전의 의미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 안성기와 최시원 덕분에 우리나라의 관객들은 이질감을 줄일 수 있지만 그 외의 아시아 국가들도 과연 <묵공>을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였을 지는 의문이다. 성벽에서 돌을 던지고, 불화살을 쏘는 장면들은 이미 낯익은 장면들이다. 감독은 이런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최근 중국과 할리우드에서 유행하고 있는 하늘을 날고 허리가 휙휙 꺾이는 현란한 촬영기법들이 사용되기는커녕 칼싸움을 하는 무사들은 무거운 칼을 휘두르느라 휘청거리며 육탄전을 벌인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화면은 일본인 촬영감독 사카모토 젠조의 솜씨다. 이렇듯 판타지의 요소를 줄이고 현실감을 강조한 투박한 전투는 오히려 미학적이다. <묵공>의 재미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전투가 아니라 혁리의 뛰어난 지략에 있다. 과학적인 방어술과 고도의 심리전, 효율적인 공격이 총동원된 전략·전술은 수시로 연출되는 전투장면의 반복적인 지루함을 덜어준다. 혁리-일열 커플의 로맨스는 어색하고 가끔씩 영화의 맥을 끊는 슬로모션, 느닷없이 등장한 흑인 노예의 보은, 때 아닌 열기구의 공습이 황당하지만 궁수부대 장군 자단의 충심, 혁리를 통해 묵가사상을 접한 왕자 양적의 깨달음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은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이지만 <묵공>은 궁극적인 반전영화여서 현실적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선과 악의 뚜렷한 구분이 모호해 권선징악의 교훈보다 전인류의 평화를 갈구하는 묵가사상이 빛을 발하고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혁리와 항장군은 각각 소박한 도인의 면모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다.이것은 모두 화려한 영상보다 의미의 전달을 중시한 장지량 감독의 화법 덕분이다. 장지량 감독은 <묵공>이 영화가 아시아가 세계 영화의 중심이 되기 위한 선결과제인 ‘아시아 영화시장의 일원화’에 보탬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껏 규모와 스타를 내세웠던 여러 편의 아시아 합작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서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영화의 가치가 흥행성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영화는 그만큼 존재의 의미가 줄어드는 셈이다. <묵공>은 중국에서 처음 개봉되어 흥행중이고 1월 11일 우리나라에서, 2월 3일 일본에서 개봉예정이다. 이미 영화는 감독과 제작진들의 손을 떠났으니 남은 것은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다. 흥행성에 있어서 과연 <묵공>이 한·중·일 합작영화의 바람직한 본보기가 될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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