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로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가수들은 여러 부류로 나뉘어 진다.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남자가수·여자가수로 나뉘고 장르적으로는 발라드가수·댄스가수·트로트가수·록커 등으로 구분되며 그 밖에도 오디오형 가수·비디오형 가수, 전업가수·연기자 겸업가수 등등 온갖 것들을 동원해 한도 끝도 없이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여자가수라는 대분류 안에는 두 개의 소분류가 존재한다. ‘섹시 여가수’와 ‘청순 여가수’. 이 둘 중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에는 여가수로서의 존재감을 확보하기 힘들다. 20대 안팎의 여성들이 가요계의 판도를 좌우하는 가요계에서 ‘여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고 남자가수들과 동등한 입지에서 활동하며 버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진 가요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섹시하거나 청순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가수 기근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지난해 가요계를 예로 들어보자. 2006년을 크게 뒤흔들 거라고 예상했던 이효리가 예상치 못한 표절논란으로 활동에 차질을 빚으며 일찌감치 2집 활동을 접었다. 바다는 보이시한 컨셉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 매서운 가창력으로 인기를 얻었고, 발라드로 돌아온 백지영은 성공적인 컴백으로 화제가 되면서 톱가수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연말에 열린 가요시상식에 빠짐없이 모습을 보인 건 백지영 뿐이었다. 지난해 크게 히트한 ‘사랑 안해’는 발라드여서 그냥 조신하게 노래만 불렀을 뿐인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얌전한 발라드를 불렀을 뿐이라고는 하지만 백지영은 노래나 컨셉과 상관없이 무조건 섹시아이콘이 되어버리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게다가 ‘사랑 안해’의 후속곡 ‘Ez Do Dance’에서 섹시댄스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놓은 것도 어느정도 작용했다.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을 다 합해봤자 얼마 되지 않지만 가수들이 출연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의 멘트에는 이런 현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섹시퀸 ○○○의 무대”라던가 “청순미인의 대명사 ○○○” 하는 식의 수식어를 곁들인 멘트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섹시파 가수로는 이효리·엄정화·채연이 있고 청순파 가수로는 메이비·간미연 등이 있다. 아무래도 감성에 호소하는 청순파보다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섹시파가 활동영역도 넓고 호응도 크다. 한마디로 말해 섹시파가 더 인기라는 거다. 물론 섹시하지도 않고 청순하지도 않지만 노래는 정말 잘 하는 가수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중들이 단번에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했고 한 동안 열심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안타까운 건, 그들의 빈 자리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수라 해도 노래만 잘해서는 인기를 얻기 힘들어 연기·개그·토크 중 하나 이상은 눈에 띄게 잘 해야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은 남녀가수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런데 여가수들은 거기에 덧붙여 섹시미나 청순미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다. 유독 솔로 여가수에게만 ‘섹시 혹은 청순’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아무리 가수도 만능이 되어야 하는 토털 엔터테이너의 시대라 하더라도 가수의 기본기는 음악이다. 2007년에는 혈혈단신 활동하는 솔로여가수가 비록 섹시하거나 청순하지는 않지만 우직하게 노래만 잘 부른다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이들이 방송에서 연기자나 오락 프로그램의 패널이 아닌 가수 본연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