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돼 왔던 고건 전 총리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포스트 고건’ 즉, 고 전 총리를 대신할 여권의 대선 후보가 누구인가에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이 여전히 유력한 대선 후보로 여겨지고 있지만, 본인들의 인정과 부인에 상관없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도 신중하게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더 해 열린우리당과 함께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내 통합파들은 최근 한나라당 소속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대선 후보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범여권 후보군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이달 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에 관심 없다”며 “열린우리당에서 거론되는 게 더 싫다”고 말하는 등, 정치 참여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지만, 그의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시선은 ‘속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전 총장은 깨끗한 이미지와 경제와 교육 문제에서 전문성과 상대적인 개혁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본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호적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 내에서는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 전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최근 몇몇 언론과의 통화에서 “정 전 총장이 아직 결심을 하지 않았을 뿐 권력 의지는 분명하다”고 말해 정 전 총장이 ‘대선 후보’에 많은 관심이 있음을 시사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역시 그간 여권 내에서 꾸준하게 ‘외부선장’으로 거론돼 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박 이사는 지난 4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대권도전 의향이 없음을 재차 밝힌 바 있다. 박 이사는 이날 “정치적으로 초연하면서 할 일만 열심히 하겠다”며, “내 일도 바쁜데 그 와중에 (정치권에) 들어가 무엇을 하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박 이사의 이러한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박 이사가 그간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 등의 설립과 안착과정에서 보여준 ‘초탈’의 이미지와 기획력 그리고 조직 장악력 등에 비춰볼 때, 박 이사의 대선 정국 참여는 범여권에게는 천군만마를 얻는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최근 행보 역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문 사장은 최근 ‘반수구세력 전선을 통한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을 모색하는 ‘미래구상’의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문 사장은 최근 자신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에 현역 의원들도 많고, 나는 정치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며 “경제인으로서 중소기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현실 정치의 진입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관건임을 시사한 바 있다. ■ 통합신당 추진 세력, 손학규에 러브콜 한편 ‘범여권통합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 세력과 민주당 측은 고건 전 총리의 대안으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손 전 지사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그리고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과는 달리 ‘이미 검증되고 있는 현실 정치인’이라는 점과, 손 전 지사의 개혁적이고 참신한 이미지가 범여권이 추구하는 대선 후보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손 전 지사 역시 이러한 범여권의 러브콜에 ‘싫지는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범여권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평가되던 고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정계은퇴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대안 찾기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여권의 입장에서는 손 전 지사와 같은 중도개혁 성향의 인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손 전 지사 역시 한나라당 내에서 이른바 ‘빅3’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양강(兩强)’에 비해 인지도나 지지율 등 모든 면에서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또 성향에 있어서도 이 전 시장이 중도, 박 전 대표가 보수 성향인데 반해 손 전 지사는 개혁성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한나라당 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 어려운 이유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의원이나 조만간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고진화 의원 등이 손 전 지사와 성향이나 지지층이 겹치는 것도 손 전 지사 측의 고민거리다. 원 의원에 이어 고 의원까지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공식 참여할 경우, 손 전 지사는 이들과 한데 묶여 ‘군소후보’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그 과정에서 언론에 의해 ‘양강’ 대 ‘군소후보’로 나뉘어지고 손 전 지사는 ‘잊혀지는’ 정치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범여권은 손 전 지사 측에 ‘지역구도 타파’와 ‘통합’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고, 손 전 지사는 자신과 정치성향이 엇비슷한 여권의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 신중식, “손학규 통합 중심 가능성 배제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신중식 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고 전 총리의 중도하차 후 손 전 지사가 중도세력 통합의 구심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신 의원에 앞서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중도개혁은 민주당이 추구해 온 노선인데 손 전 지사가 이 자리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지난해 말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중도개혁 성향 단체인 ‘선진한국연대’행사에 손 전 지사가 참석해 격려사를 한 것도 다시 음미해볼 부분이다. ‘선진한국연대’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했던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손 전 지사의 말씀을 들으며 어쩌면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며 “그러나 왜 우리는 다른 정당에 있어야 하는가. 이게 바로 한국 정치사의 아픔”이라고 밝혀 발언의 의도에 궁금증이 모아졌다. 비록 이 자리서 손 전 지사는 “중도개혁 성향의 사람들이 한나라당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당의 외연을 넓혀 더 큰 한나라당을 만들겠다”며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 했지만, 고 전 총리의 정계은퇴로 인해 손 전 지사의 행보에 범여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 손학규, “이념적 통합 꾀하는 게 앞으로 할 일” 이와 관련해 손 전 지사는 최근 한 방송에서 ‘통합’을 강조해 그가 범여권이 추진하는 통합신당 논의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우리 정치의 새로운 질서를 짜는 것이 정치를 하고 있는 의미”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생각을 할 때 좀 더 크게 전국적인 통합을 꾀하고 좌우 이념적인 통합을 꾀하는 일은 당연히 앞으로 해나가야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통합정치에 대한 요구가 크고 통합적인 정치를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보여지니까 자꾸 그런 말씀도 하는데 참 고마운 얘기”라며 “사실 그것을 어떻게 엮어내느냐 하는 것이 내 역할이고 지금 한나라당을 통합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내가 지금 담당한 과제”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또 ‘제 3지대 통합세력’의 새로운 인물로 추대될 가능성에 대해 그는 “지금 할 얘기가 아니다”고 의미 확대를 경계하면서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리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나와야 된다는 원칙을 갖고 그것을 꾸준히 추구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고건 전 총리의 정계은퇴 이후의 범여권 대안론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당과 후보군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현재의 정치 기상도에서 혁신적인 돌파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운찬·박원순·국현 같은 사람들이 싫든 좋든 주변으로부터 결단을 요구받고 어느 날 갑자기 대선 주자 중 하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당직자는 또 “손 전 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올 연말의 대선은 지난 여러 번의 대선처럼 이념의 전선이 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며 “정책 중심의 대선을 상정해 놓고 본다면 정운찬·박원순·문국현·손학규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