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짧고 재벌은 영원하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재벌들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이 사슬을 연결하듯이 정치-학계-경제등 염주알식 연결고리를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재벌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의 전선을 넘나들고 있다. 일예로 중앙일보를 계열사로 갖고 있던 삼성그룹은 경쟁상대인 동아일보와 혼인인맥을 구축했다. 또 5공화국초기에 유공의 인수특혜로 재계 순위에 들은 SK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혼맥관계로 황금알을 낳는 휴대전화 011을 인수, 재계 3위에 올라서는 위력을 과시했다. 이렇게 연결된 고리는 정권이 재벌들을 탄압해도 이들은 그때만 숨죽이고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경영을 해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참여연대를 통해서 밝혀졌다. 참여연대는 취업 등을 통해 삼성그룹에 공식적으로 영입된 고위공직자·법조계 인사 등을 총망라해 삼성의 ‘인적 파워’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담은 ‘삼성 인적네트워크’를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삼성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장악하려 하고 있고 ‘삼성공화국’의 힘은 이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발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참여연대가 앞으로 발표할 예정인 삼성그룹의 여러 측면을 분석한 7~8편의 ‘삼성 보고서’의 첫번째 보고서다. ■ 관료-학계-법조-언론-경제-정치-재계 연결고리 참여연대는 이번 보고서에서 △삼성에 취업한 고위공직자(5급이상)·법조인(검·판사 경력)·언론인 △삼성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 △삼성그룹 관련 6개 재단이사 △삼성출신 고위 공직자·법조인·정치인 등을 조사해 278명의 경력, 학력 등을 분석했다. ▲관료출신 참여연대는 삼성이 관료 출신 외부인사를 영입한 특징을 자신이 당면한 현안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행정부서의 공직자를 집중 영입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삼성 식구’가 된 전직 관료는 모두 101명으로 이 중 취업이 47명(46.5%), 사외이사 37명(36.6%), 재단이사 15명(14.9%) 순이었다. 부처별로는 재정경제부가 20명(19.8%)으로 가장 많았고 금융감독위원회 등 금융감독기구 출신이 18명(17.8%), 국세청 12명(11.9%), 공정거래위원회 7명(6.9%), 산업자원부가 7명(6.9%)이었다. ▲재경부·금융감독기구 출신 참여연대는 삼성은 현안과 관계있는 재경부의 금융정책 담당부서 출신을 다수 영입한 한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2001년 H 재정경제원 국고과장 영입을 시작으로 2003년 B 재경부 경제홍보기획단 총괄기획과장·2004년 K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의 삼성경제연구소로 입성 등 금융정책 근무경력자 6명이 삼성에 취업했다. 참여연대는 “N 현 삼성전기 사외이사(재무부 이재국 근무), L 전 제일모직 사외이사(전 재무부 증권국장) 등 사외이사를 포함하면 금융정책에 관여했던 인사 영입수는 더 늘어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재경원 출신의 삼성계열사 사외이사 A씨가 공정거래법이 ‘개악’된 직후인 2001년 3월 선임된 점, 청와대 경제수석실 출신 B씨가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이 후퇴하기 시작한 2000년에 영입된 점” 등을 들며 재경부 관료들의 영입 시기의 ‘미묘함’에 의혹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또 “삼성의 경영권 세습 현안은 금융감독기구의 업무와 연관돼 있다”며 “모 금융감독기관장과 인척관계인 모 전 총리가 1995년부터 삼성언론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감사원 출신 참여연대에 따르면 국세청 출신 현직 삼성 사외이사는 9명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이재용 상무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와 관련해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2000년 이후 전직 국세청 관료 8명이 사외이사로 영입됐다는 ‘시기적인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삼성에 영입된 공정위 출신 7명은 사외이사 2명·직원 3명·고문 1명·재단이사 1명 등 다양한 형태로 삼성에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서는 밝혔다. 이들 가운데 2000년 이후 영입된 사례가 5명으로 참여연대는 “이는 삼성이 1998~1999년까지 4차례 공정위 부당내부거래 조사로 485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직후”라고 밝혔다. 또 감사원 출신 5명은 대부분 삼성계열사의 상근감사 형태로 취업했다. ▲삼성의 자동차 진출과 산자부 인사 영입 참여연대는 “삼성이 자동차 산업 진출 직후인 1995년부터 불과 1년 사이 관련부처 공무원 5명을 집중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이들의 영입시기가 삼성이 자동차 산업 진출과 관련돼 각종 인·허가가 절차가 완료됐던 1994년 말 직후인 1995년부터 시작된 점을 들어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는 삼성이 1999년 자동차 사업을 정리한 뒤 산자부 관료를 단 1명 영입한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삼성이 경영권 세습과 관련해 세금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국세청 관료를, 지배구조와 금융법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금융감독기구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부처에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취업제한' 공직자윤리법 사실상 위반 참여연대는 삼성계열사의 C상무가 기업의 부당행위를 조사하던 공정위 국장을 역임하다가 2002년 퇴직과 동시에 삼성에 취업한 사례 등을 들며 “관료 영입 과정에서 공직자윤리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퇴직 후 2년 간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민간업체에 취업이 제한된다. 이들은 “삼성은 이런 위반 소지를 감추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SERI)를 ‘신분세탁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C상무는 영입 직후 SERI에 있다가 그해 계열사로 옮겼으며 C감사 는 1997년 SERI에 입사해 1999년 계열사로 가는 등 5명의 퇴직 공직자가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쳤다. 참여연대는 “SERI 홈페이지에서 ‘신분세탁’의 의심이 가는 5명의 연구보고서를 검색해 본 결과 한 건도 찾지 못했다”며 이들의 실제 연구 활동에 의문을 나타냈다. 삼성 관계자는 “이들을 영입할 때 공직자 윤리법상 취업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법조계 참여연대가 파악하고 있는 삼성그룹 법조 네트워크의 총 인원은 59명이다. 이 가운데 삼성에 임직원으로 취업한 인사가 28명(47.5%)이고 사외이사로 16명(27.1%), 재단이사로 14명(23.7%)이 영입됐다. H 모 고검장은 현직 법조인으로 삼성에 ‘영입’된 인사는 아니지만 삼성가(家) 출신 인사로 삼성의 법조 네트워크에 포함됐다. 참여연대는 삼성의 법조계 네트워크의 특징을 “보통의 기업처럼 투자 등에 관한 법률 해석을 담당하는 대형 로펌(법무법인) 출신이 아닌 기업 비리의 사법 처리에 관여해 온 판·검사 출신이 절대 다수”라고 정리했다. 이들 법조계 인사의 출신은 검사가 28명(47.5%)으로 가장 많고 판사 22명(37.3%), 변호사 6명(10.2%), 헌법재판소가 3명(5.1%) 순으로 전반적으로 판·검사 경력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참여연대는 “영입된 법조인 중 가장 많은 검사 출신 인사는 S 전 법무장관, K 전 법무차관, K 전 법무연수원장, C 전 대검중수부장, L 전 서울고검장 등 검찰 요직을 거친 고위 인사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삼성이 기업과 권력층의 비리 수사를 담당하는 특수부 출신 검사를 영입했다며 “이들은 기업 비리를 수사한 경험을 살려 삼성에 방어 전술을 지도할 능력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판사 출신으로는 Y 삼성전자 상무(전 서울고법 판사), K 삼성전자 부사장(전 서울중앙법원 부장판사)이 있고 2002년 불법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됐던 S 전 부장판사는 전 삼성중공업 사외이사였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Y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H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은 삼성그룹 관련 4개 재단에서 감사를 맡고 있으며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던 L 전 지방법원장은 삼성생명 공익재단 이사로 재직 중이다. 헌재 출신으로는 Y 현 헌재 소장이 과거 삼성전자 고문이었고 K 전 헌재재판관은 전 삼성 SDI 사외이사이자 현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참여연대는 “주요 로펌의 대표변호사들이 사외이사나 재단감사의 형태로 삼성과 관련을 맺고 있다”며 “H 법무법인 대표 Y씨 외에도 삼성언론재단 이사인 S 법무법인의 S 대표변호사, 제일모직 사외이사인 T 법무법인의 L 대표변호사가 주요 로펌 출신”이라고 밝혔다. ▲학계·언론계 참여연대는 “삼성의 학계·언론계 네트워크는 삼성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삼성의 가치’를 '’우리 사회의 가치’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강소국론’, ‘국민소득 2만불론’, ‘위기경영론’ 등이 삼성에서 출발한 이념 또는 가치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그러나 삼성에게 연구비나 연수를 지원받은 학계와 언론계 인사에 대해서는 비공식적인 관계일 뿐 아니라 이번 발표에서 포함된 인사와 같은 무게로 볼 수 없는 것으로 판단, 차후 발표할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따라 삼성의 재원으로 운영되는 재단의 이사나 사외이사로 영입돼 공식적인 관계로 인정되는 인사에 한정해 인적네트워크에 포함했다. ▲학계 참여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의 학계 네트워크 인원수는 87명으로 이 중 재단이사는 49명(56.3%), 사외이사는 31명(36.8%)이다. 전공별로는 상경계가 34명(39.1%), 예술계 9명(10.3%), 이공계 8명(9.2%), 법정치계 8명(9.2%), 언론계가 6명(6.9%) 등으로 다양했다. 참여연대는 “상경계 34명 중 25명이 사외인사”라며 “이는 상경계 출신이 영리기업의 사외이사로 선호되는 현상을 반영한다” 고 말했다. 언론·사회복지·예술 전공 교수들은 삼성언론재단·삼성문화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들의 출신대학은 서울대 48명(55.2%), 연세대 7명(8%), 고려대 5명(5.7%), 성균관대 4명(4.6%) 순이었고 교수로 재직한 대학은 서울대 22명(25%), 한양대 8명(9.2%), 연세·성균관대 각 6명(6.9%) 등으로 서울대생·교수 출신의 비율이 높았다. ▲언론계 언론계 네트워크는 총 29명으로 이중 19명(67.9%)이 재단이사, 5명(14.3%)이 삼성계열사의 고문, 3명(10.7%)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매체별로는 신문이 23명으로 '압도적'이고 방송 5명, 통신 2명 순이며 신문사 출신 중에는 J일보 출신이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부에서 영입된 언론계 인사가 재단의 이사로 임명된 사례는 삼성언론재단 소속 11명, 삼성문화재단 3명, 삼성생명공익재단 2명, 삼성복지재단 1명, 호암재단 1명 순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삼성언론재단 전·현직 이사진에는 R 전 J일보 주필·C 전 H신문 사장·J 전 H일보 사장·C 전 모 방송사 사장 등 주요 언론사 대표나 사장 경력을 지닌 인사가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홍기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