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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유통점에 먹히는 ‘개미’ 상인들

성남시에 잇단 입점… 시장상인들 항의 ‘철시’… 지역경제 연쇄부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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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호 ⁄ 2007.07.03 14:52:42

지역 중소상인 400여명이 하루 동안 가게 문을 일제히 닫는 ‘철시’에 들어갔다. 해방 이후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중원구 구도심 재래시장 상인·슈퍼마켓 상인·대리점업 종사자 등 400여명은 14일 가게 문을 일제히 닫고 성남시청 앞으로 몰려 갔다. ‘공룡점포’라고도 불리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점 입점 소문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시청 앞에 모인 상인들 사이에서는 ‘70년대 서울에서 쫓겨나 이 곳에 왔듯이 또 어딘가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나돌았다. ■ 2008년부터 대형유통점 줄줄이 오는 2008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7336번지 일대 옛 인하병원 자리에는 대지 3,217평 지상 12층 지하 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아파트 186세대와 판매 및 영업시설이 들어선다. 지역 중소상인들은 ‘판매 및 영업시설’은 대형유통점 ‘이마트’가 유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인들은 “재개발 지역인 성남시 중원구 중동 1구역과 수정구 제 1공단 개발지역에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등 국내 3대 대형유통점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으로 알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점포 30여개를 송두리째 앗아간 화마를 간신히 극복하고 활기를 되찾은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중앙시장 상인들은 불과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새로 들어설 대형유통점 입점 소식에 또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중앙시장의 한 상인은 “간신히 다시 자리를 잡고 이제 냉장고도 새로 들여놨는데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어떡하라는 말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단 한 개로 재래시장 9개를 싹쓸이 하고 상인 1,000여명의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는 유통업계의 괴물이라 불리는 대형유통점이 성남 구도심이라는 ‘먹이’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 ■ 대형유통점, 중소상인들엔 공포의 대상 통계청이 올해 9월 발표한 ‘도소매업 판매업지수, 도소매업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1,650여개의 재래시장과 중소상인들의 매출은 매년 10%씩 하락하고 있다. 한 상인의 말처럼 ‘재작년 다르고 작년 다른’ 오랜 불황에 지역중소상인들은 시달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대형마트들의 매출액 규모는 24조원을 넘어섰고 그 성장세도 계속되고 있다. 2005년 대형마트 매출액은 2004년과 비교해 12% 성장을 보였고, 올해도 10%를 넘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5개 대형유통점이 있는 천안시의 경우, 2005년 매출을 살펴보면 이마트 천안점 1,567억원, 롯데마트 성정점 1,084억원, 메가마트 천안점 750억원, 까르푸 천안점 514억원, 롯데마트 천안점 445억원 등 총 4,36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거두었다.

대형유통점은 1999년 유통시장 완전개방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1999년 전국에 119개이던 대형유통점은 현재 전국에 300여개에 달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또, 주로 신도시에 들어서던 대형마트들이 이제는 구도심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과 첨단 물류 시스템으로 무장한 이들은 지역 중소상인들에게는 이미 공포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지난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유통점이 들어설 경우 30분 거리에 있는 소규모 점포 2,000여개는 도산 등의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 중소상인들, “지역경제 통째로 무너질 것” 성남시는 수정구·중원구를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와 신도시 지역인 분당구로 이루어져 있다. 계획도시인 분당 신도시에는 현재 10곳의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섰다. 이와 비교해 수정구·중원구 구도심은 분당 신도시와는 태생부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성남시 구도심은 70년대 강제이주 정책으로 내몰린 철거민과 빈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따닥따닥 붙은 20평형짜리 연립주택들이 여전히 대부분의 주거 형태를 띠고 있고, ‘골목상권’이라 불리는 동네 슈퍼마켓과 재래시장이 구도심의 주된 유통시장이었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현대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윤희일(64)씨는 “돈 많고 깨끗한 사람들이야 이마트나 그런 거 들어오면 가서 사겠지만 성남은 서민들이 모여 끼리끼리 살았던 곳이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덤이나 돈 몇 푼이라도 깎는 맛에 이 곳을 찾고 있는데 대형유통점이 들어오면 그런 모습도 이제는 보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유통점이 들어설 경우 뒤따를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006년 국정감사에서는 대전지역 17개 대형유통점의 연간 매출 1조 5천억원 중 80%인 1조 2천억원의 지역자금이 역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유통점이 들어서면 고용창출이나 경기회복 등 지역사회에 공헌할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 결과로, 대형유통점들은 지역자금을 역외로 유출하면서도 지역사회를 위한 환원사업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형유통점, 오히려 물가상승 부추기기도 대형유통점 입점을 찬성하는 이들은 시장경제에서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는 설득과 함께 쇼핑의 편의성과 질이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 때문에 소비자들도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대형유통점의 물류효율화와 바잉파워를 통한 원가절감이 지역물가 하락에 공헌하리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지난 9월에 내놓은 조사 결과는 이같은 환상을 뒤엎는다.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물류효율화를 통한 물가하락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대형점이 입점한 지역에 한정적으로 나타나고 그 외 지역은 상권이 몰락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물가하락과 상승을 합산했을 때는 오히려 지역 전체의 물가 상승효과을 가져온다는 것. 실제로 대형마트 면적이 1% 증가하면 전체물가, 농축산물물가, 식료품물가, 가구집기가사물가, 피복신발물가 등은 각각 0.0165%~0.0417%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중소기업청은 분석했다. ■ 성남시, 지역특성에 무관심? 이런 중소상인들의 공포에 가까운 우려에도 성남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교통혼잡을 우려하는 비대위 회원들이 교통환경평가 서류의 정보공개요구를 해도 ‘가져가서 보면 뭐 할거냐’ 정도의 답변을 내놓고 있다. 성남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확인된 바 없다”며 대형유통점 입점 계획을 극구 부인했다. 성남시는 대형유통점 입점저지 비상대책위가 지난 7월 대형유통점 입점에 따른 사실 확인과 성남시 대책을 묻는 질의에도 “대규모 점포 등록이 신청된 사항은 없으며 등록요건을 갖추어 신청할 경우 관련법에 따라 10일 이내 등록처리 하도록 되어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비대위에 내놓았다.

성남시의회 의원들 36명 가운데 34명이 대형유통점 입점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지역 중소상인들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건축허가 권한 등 실질적인 행정권을 가진 시 측은 입점계획에 대한 사실 확인은 물론 지역 중소상인들을 위한 보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시는 이미 지난 7월 7일 옛 인하병원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12층 주상복합건물의 건축 승인을 내줬고, 11월 14일에도 한창 터파기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위치한 성호시장에서 머릿고기를 파는 한 상인은 “재래시장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유통점이나 들어오게 한다”며 “이대엽 시장도 선거 전에는 시장을 찾아와 재래시장을 활성화 해주겠다고 해놓고는 이제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 중앙은 중소상인 보호, 지방은 외면 국회 의원들은 민생 안정을 위해 지역 중소상인들을 대형유통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들을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안’을 5월에 발의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도 기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나 특별법을 통해 지역 중소상인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유통점에서 파는 상품을 제한하거나 영업시간을 묶고, 강제휴무를 정하는 등 규제와 현행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성남시도 도시계획조례를 통해 입지를 제한하는 직접적인 규제나 교통유발부담금을 통한 간접규제에 방법을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윤희정 성남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할인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끼리 끼리끼리 어떻게든 살아왔던 성남 구도심에 대형유통점이 들어오려면 적어도 지역 중소상인들이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춘 상태가 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준비 없이 공룡을 받아들였다가는 밟히고 말 것이라고는 우려다. 이쑤시개부터 콩나물, 두부까지 8만 가지의 품목으로 지역 상권을 싹쓸이 하는 대형유통점. 성남 중소상인들은 대형유통점이 가져 올 폭풍 앞에 풍전등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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