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빅뱅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정계개편은 여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열린우리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나가있는 기간 동안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삼가기로 했지만, 이미 당·청은 실질적 결별의 단계에 이르렀고, 당 내부에서는 정계개편 움직임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단 열린우리당에서는 당의 미래를 묻는 설문조사를 의원들에게 익명으로 진행해 이를 자료로 20일 즈음, 의원총회를 갖고 정계개편 방법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당내 통합신당이 압도적임을 보여준 바 있다. 결국 설문조사와 이후 지속될 의견수렴절차는 갈라짐을 위한 명분쌓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 세력의 명분쌓기는 내년 2월 계획되고 있는 전당대회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고보조금 등 현실적인 이유까지 맞물린 상태에서 소수파인 당사수파는 통합신당파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고, 명분이 부족한 통합신당파는 중도개혁세력 대연합이라는 명분을 쌓기 위해 시간을 벌려 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양 세력은 계속된 기세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익명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일 즈음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양 세력은 크게 충돌할 가능성이 커 열린우리당의 미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당·청 이미 실질적 결별, 내년 대선 4당 체제 될 듯 이러한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40여회의 재보선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국민들의 반노 정서는 상당한 것이어서 지난 5·31지방선거에서부터 야당이 제기한 정권 심판론은 모두 효과를 거두었고, 열린우리당은 선거마다 연전연패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김근태 의장 체제를 출범시켜 뉴딜 정책 등 서민경제회복에 사활을 걸면서 대통령과 독자노선을 걸으려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 등 당·청의 분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김근태 의장과 열린우리당을 경시하는 모습을 수 차례 보여왔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회동을 통해 김근태 의장에 막말에 가까운 말로 기를 죽이기도 했고, 여당이 지난 8·15 광복절 특사로 기업인을 대규모로 사면해 줄 것을 청와대에 요청했으나 청와대가 이를 묵살해 뉴딜 정책의 힘을 빼놓기도 했다.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내정에 대해 당에서는 김병준 불가 방침이 대세였지만, 청와대는 이를 무시했다. 이 과정에서 김근태 의장은 당의 격앙된 분위기를 청와대에 잘 전달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근태 의장이 전효숙 헌재소장과 관련된 국정마비를 의논하기 위해 청와대에 면담을 4번이나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것은 김근태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얼마나 경시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 이후에도 청와대는 김근태 의장과의 논의대신, 당·정·청 정치협의를 발표했고,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철회 때도 여당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김근태 의장의 입은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여당에서는 “김근태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맞서야 할 때 맞서지 않아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다”는 말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등 김근태 의장의 리더십은 상당부분 상처받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김근태 의장과 비대위는 청와대에 독자노선을 걸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이에 청와대와 친노 세력은 즉각 대반격에 나섰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1일 “개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통령을 흔들고, 차별화하는 전략은 과거에도 그랬고 정치사에서 성공한 적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구조”라고 강조하면서 “서로 국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비서실장은 “우리당은 모든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의 책임만을 얘기하는데, 과연 우리당도 그런 면에서 얼마만큼 책임있게 임해왔던 가에 대해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친노세력은 비대위의 해체와 김근태 의장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이 속에서 비대위는 결국 청와대와 결별할 것을 분명히 하고, 헤어짐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당은 2일 비대위 회의를 열어 일단 갈등을 봉합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3일 해외순방을 떠남에 따라 대통령이 외국에 있는 동안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대통령이 돌아온 후 정계개편의 방법을 제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신 열린우리당은 당내 의원들에게 통합신당과 당 사수를 둘러싸고 익명 여론조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친노계열 의원들은 이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서 논란이 됐다. 비대위는 이에 한 발 물러서 전당대회를 거칠 것임을 분명히 했지만, 이마저도 통합신당파와 당 사수파의 입장이 크게 다른 상황이다. 통합신당파는 정계개편의 대략적인 방안을 결정한 뒤 이를 추인받는 형식을 선호하고 있지만, 당사수파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통합신당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친노세력이 주가 되는 당 사수파는 최대 40여명이지만, 친노계열로 분류된 의원들 중에서도 통합신당의 입장을 가진 의원들이 있어 실제로 당 사수파는 2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은 의원워크숍을 갖고 비대위에는 노무현 대통령 2선 후퇴요구와 비대위 유지로, 친노세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 유지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의 조속한 구성을 두고 갈등을 봉합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양 세력 간 갈등은 상당하다. 이러한 ‘처음처럼’의 갈등 봉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이후 여권에서 촉발된 정계개편 움직임에는 이미 상당한 탄력이 붙었다. 결국 우리의 정치권은 보수를 상징하는 한나라당, 중도보수인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민주당·고건 전총리의 신당파, 친노세력 신당,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4개 정파로 나뉘어 다음 대선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졌다. ■ 대권 대비 정계개편, 그러나 마땅한 후보는 없어… 사실상 현재 여당의 정계개편은 오는 2007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니만큼 결국 대권 후보가 누가되느냐가 정계개편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범여권 대권후보로는 고건 전 총리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탄핵 전후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30%대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나, 현재는 지지율이 절반 수준인 10%대로 떨어졌다.
고 전 총리는 정치권에서 세력이 약하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존 정치권에 입당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절호의 기회 때마다 자신의 정치세력을 구체화시키지 않아 이제는 때를 놓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전총리는 현재 12월 중 통합신당을 세울 것을 천명하고 그 준비작업을 하고 있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10%대의 지지율로 고착된 상황이라 여당 내에서 “고건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더구나 그는 전북 군산이 고향인 호남출신이다. 현재 여권이 지리멸렬해진 상황에서 여권 후보가 승리하려면 충청도의 기반이나, 영남의 일정한 지지기반이 필요하다. 지난 98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DJP 연합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표 차이는 정확히 충청도의 차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대선에서는 영남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영남에서 표를 잠식해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진보세력의 상징성을 갖고 있었던 노무현 후보였으나,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의 지지가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비해 고건 전 총리는 현재 부동산 정책 등의 실패로 여권이 지리멸렬해진 상황에서 이를 상쇄할 만한 충청도에서의 지지도, 경상도에서의 지분도 갖고 있지 못하다. ‘고건 킹메이커론’이 여권에서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권에서는 고건 전 총리에 비견될만한 대권 후보가 거의 없다. 원심력이 강화된 여권에서 내년 4월까지 새로운 후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대안부재론 속에 고건 전 총리가 범여권 통합후보가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여권내 강력한 대권 후보중 하나이다. 정 전의장은 기자 출신으로 미디어에 강한 정치인이다. 미디어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대선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현재 정계개편이 의석수 139석인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정 전의장이 유리한 점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내에서 정동영 전 의장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의원은 박명광·정청래·박영선 의원등 30~4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3일 당·청 갈등에 대해 “당과 대통령이 정면충돌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촉구하는 등 최근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정 전 의장은 지난 4일부터 3일간 중국에 방문하는 등 첨예한 문제로 떠오른 북핵과 범여권 통합과정에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은 고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호남 출신인데다가, 두 번의 당 의장 경력으로 미디어에 노출이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지율은 3%대의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정치권에서는 정동영 전 의장이 정치적 승부수에 약하다는 설들이 들려오고 있다. 탄핵 역풍으로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17대 총선에서 노인비하 발언으로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나, 지난 7·26 재보선에서 성북을에 출마하라는 주위의 간곡한 요청을 거부해 결국 여당이 선거 전패로 원심력이 극대화된 것도 그렇다. 현재 지난 4일부터 3일간 중국을 방문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과 여권 통합에 역할을 함으로서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정동영 전 의장이 현재의 와신상담으로 여권의 대권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한명의 유력한 여권후보인 김근태 당의장은 위기의 시절 당을 맡아 누구보다 언론에 노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않는 지지율 때문에 고민이다. 재야파의 수장으로 당내 입지도 탄탄하고, 기자 등 전문가들에 조사한 대권후보 적합도에서도 1,2위를 다투는 등 높은 컨텐츠로 유명하지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터졌을 때 누구보다 확고한 평화의지를 공고히 해 신선한 인식을 주기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인사문제, 부동산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있을 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기 보다는 한 발 물러나면서 말을 아끼는 입장을 견지하는 등 유약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현재 김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자신의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벗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한 발 늦는다는 평가는 여전한데다 당내 지지자들조차도 대권후보로 어렵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지리멸렬해진 여당의 입장을 쇄신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인물이 여권 후보로 뛰어오를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의 이름이 대권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본인들은 정치권 진출 거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러브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현재 범여권 통합 활동을 하고 있는 추미애 전 의원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추 전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는 등 상당한 경륜을 갖추고 있다. 또한, 영남 출신이면서도 DJ의 정치적 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호남에서의 지지도 탁월하다. 그러나, 추미애 전 의원은 여성이라는 장점이자 약점이 존재한다. 현재 북핵과 경제 위기 속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지도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 전 시장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뚜렷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유권자들이 여성인 박근혜 전 대표를 위기극복에 약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추 전 의원은 현재의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또한,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당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것도 추 전의원의 과제 중 하나이다. 현재 추 전 의원이 몰두하고 있는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이러한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대선이 1년여 남은 상황에서 멀찍이 앞서 가고 있는 한나라당의 빅3에 비해 여권에서는 눈에 띄는 범여권 후보는 보이지 않지만, 현재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 전 의장이 범여권 통합후보로 앞서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여당은 8%대의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가는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한계는 명확해서 추미애 전 의원, 천정배 의원 등 현재 잠재적 후보로 분류되는 후보 중 한명이 새로운 범여권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도 커 귀추가 주목된다. -채송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