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의 號」는 쓰나미현상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2002년 5월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힘겨루기를 벌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그 후 박근혜의원은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후 지방선거에 뛰어든다. 그 후 갑자기 박근혜 의원은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단독 면담이 이루어졌다. 북측에서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의원을 이렇게 환대하게 맞이한 것에 대해 그 당시 국민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朴·金 회담 미스터리’ 이와 관련, 박근혜 의원의 김정일 단독면담에 대해 김대중 그 당시 대통령의 작품이라는 설이 지금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세기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후 그 결과로 노벨평화상까지 안았지만 갈수록 국민의 여론은 국민의 정부를 떠나고 있었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국정원 등을 동원해 여러 작품을 구상했지만 오히려 갈수록 지지기반이 바닥을 쳤다. 김대중 대통령은 만일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특히 이회창 후보에게 내어줄 경우 친인척은 물론 측근들이 서울구치소로 향할 것을 두려워 어떻게해서든지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며 묘책을 구상했다. 그결과 김대중 대통령은 가장 신뢰했던 김중권 전 비서실장과 노무현 의원을 놓고 측근들과 막바지 조율에 들어갔다. 이과정에서 이인제 후보는 제외됐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결국 바보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노무현 후보를 대선으로 성공하는 작품을 호남에서 띄었으며 호남의 바람이 전국을 뒤엎었다. 김대중의 노무현 대통령만들기는 호남 바람을 타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노무현바람은 5월들어 퇴조되기 시작했다. ■ DJ 나 밟고 가 대선 올인해 이를 위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바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분열시키는 작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나라당 유력 대권후보인 박근혜 의원을 밀회를 통해 김정일 단독 면담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박 후보는 탈당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을 내락하고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그후 박근혜 의원은 대표로 자리를 옮긴후 곧 바로 방북,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면담을 했다. 곧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작품의 하나이다. 국민의 정부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대패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노무현 후보의 지위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나를 짓밟고 가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이뜻은 당시 민주당이 분당위기에 처했으며 일부 의원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등 민주당은 좌초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를 호재로 이용했으며 드디어 선거의 중립을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선거내각을 구성,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간의 여론조사결과 두 후보간의 오차범위에서 이회창 후보가 앞서자 김대중 대통령측은 정몽준 의원을 상대로 모험을 걸어 성공을 거뒀다. 선거 시작 몇시간 앞둔 시점에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와의 결별 작품을 만들어내 드디어 노무현 후보를 제16대 대통령의 막을 올렸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