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1월 18일(한국시간) 유엔 총회가 결정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사상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져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과거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투표에 불참하거나 기권표를 던진 우리 정부는 올해 입장을 선회함에 따라 유엔에서의 대북인권 논의는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오는 14일 방한하는 등 대북인권 문제는 그 영역이 날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대북인권결의안에는 문타폰 대북 인권특사의 북한에 대한 접근권을 수락해 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결의안에는 북한의 강제노역, 정치적 이유로 인한 사형집행, 이탈 주민에 대한 구금 및 고문, 사상 및 의사표현의 침해, 여성·아동 인권침해, 외국인 납치, 북한 주민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권리 침해, 장애인의 기본권리 침해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결의안은 이와 같은 북 인권실태 의혹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과 함께 현지 실태 조사를 위해 문타폰 특사의 방북과 인권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만 한 것은 북핵 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은 미미하다는 점이다. 대북인권결의안은 무력 제재를 포함하고 있는 유엔 헌장 7장을 기본으로 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1718호와 달리 권고 차원의 성격이 짙다. 따라서 정치적 구속력만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공보 담당관은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사람이 자꾸 가정폭력을 일삼으면 이웃주민으로서 ‘그 왜 자꾸 자식을 때리냐. 그러지 마라’정도의 한마디 충고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대북인권결의안이 충고 수준의 영향력만 있을 뿐, 인권을 무기로 북한의 체제변화(regime change)를 의도하려 한다는 일각의 추측에 대한 반박이다. ■ 대북인권 결의안, 법적 구속력 없어 또 하나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북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한국조차도 이번 결의안 채택에 찬성표를 던졌음에 불구, 반대 21표 기권 60표가 기록됐다는 점이다. 이 둘은 찬성 91표에 버금가는 숫자다. 전체 192개 유엔 회원국 중 20개국은 투표에 불참했다. 기권표를 던진 60개국은 주로 제3세계로 자국의 인권상황이 열악한 나라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유엔 회원국들조차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불가분의 관계인 한국이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냐는 국내 지적이다. 찬성결정은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지나치게 북한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 내 일각에서도 입장선회는 무리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이번 결정과정에서는 외교부와 통일부가 격론을 벌였고 결국 통일부가 논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 투표가 하루 연기돼 입장선회의 기회가 하루 있었지만 결국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통일부의 주장이 외교부의 압박에 묻혔다는 평가다. 박인국 외교부 외교정책 실장은 이번 입장선회 결정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 기조를 견지하면서 식량권 등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일종의 반론차단성 발언이다. 이와 관련, 진보단체 일각에서는 반기문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이번 찬성 선회의 결정적인 계기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과 미국이 제안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유보 등도 찬성 결정에 영향을 미쳤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과 강경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의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고등판무관 진출 등 유엔에서의 한국 입지강화가 더 큰 이유라는 것. ■ “결의안 찬성 변수는 핵실험보다 반 장관의 사무총장 선출” 북한인권결의안 찬성으로 인한 남북관계 냉각화는 곧바로 가시화됐다. 김창국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투표현장에서 “6자회담 두고 봅시다. 어떻게 되나”라며 미국의 한국압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어 김 차석대사는 “남조선이 언제 독자적으로 외교한 적이 있느냐. 미국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라며 대미 의존적인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김 차석대사 뿐 만 아니라 김명길 신임 유엔주재 북한공사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향후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직접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논의가 절실해지고 있다. 특히 식량권 측면에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북한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의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주민도, 군인도 절대빈곤 상황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 부장은 대북지원식량이 북한 주민에게 골고루 분배되는가에 대한 투명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역할은 인도적 차원의 식량과 비료지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배의 투명성은 한국과 국제사회가 만족하는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원량을 줄여서는 안되며, 우리 정부도 분배의 투명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게 이 부장의 요지다. ■“주민도, 군인도 절대빈곤” 대북식량지원 늘려야 더 나아가 이 부장은 대북 인권 결의안에 찬성했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대북지원을 줄인다거나 대북정책이 강경화될 것은 아니라는 바람도 거듭 역설하고 있다. 한편, 북한인권문제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전환해 생각해 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 문제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김수암 연구위원은 북한인권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는 물론 국제사회의 인권에 대한 접근이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도덕적 우월감을 버리고 남한사회의 사형제 문제나 미얀마와 같은 해외 인권사각지대에도 눈을 돌려야 우리의 대북포용정책에 힘이 실린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김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 한반도 특수성을 어떻게 설득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 담당 전문위원으로 일했던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도 “유엔에서 논의되는 모든 인권 논의들을 순수하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 내 헌장기구가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회원국의 국력과 국익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일종의 권력정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회원국인 미국이나 중국의 인권 문제가 한번도 결의안에 채택되지 않은 사실은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와 대조되고 있다.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도 “인권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낙인찍기’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유엔 결의안은 아무런 효력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추미애 전 의원은 최근 모교인 한양대 강연에서 제이 레프코위츠 미 대북인권특사와 뉴욕에서 만난 사연을 소개하며 “대한민국과 북한은 샴쌍둥이”라고 정의내렸다. 한국과 북한은 심장과 간을 공유하고 머리는 두 개인 샴쌍둥이인데, 미국과 소련이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추 의원은 “남한은 북한 인권에 대해 겉으로라도 단호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여당내 조율없는 일방적 입장선회 이러한 대북인권 결의 찬반양론은 여당내에서도 반론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 선회로 인식되고 있다. 당·정간 협의없이 이뤄진 결정으로 인한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이인영·임종석·유승희 의원등 18명의 의원들은 반대성명을 내고 “대립과 긴장의 한반도를 평화와 협력의 한반도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 우리 정부와 국민의 역할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18명 의원들은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 더 현명하다며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가 합의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인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도 별도의 성명을 내고 “인권문제가 강권 외교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며 인권결의안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김 위원장은 인권 문제에 있어 인류보편의 가치가 우선되기보다 국가간 이해관계가 더 중시됐던 사례가 많았음을 근거로 삼았다. 한편, 이러한 국내 논란속에서 최근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고문·처형·정치범 억류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보고서에서 감옥 내 부당 대우로 임산부의 경우 강제 낙태와 즉결처형 및 강제노동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 11월 30일 개최된 북한인권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학자들이 “북한 인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체제전환 뿐”이라고 주장해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표적인 북한의 동맹국인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의 발언은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강경책인 북한 체제변화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속에서 오는 14일 방한할 예정인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국내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