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망 속에 당신이 계셨고 당신의 열망 속에 갈매기가 되었습니다 휜 다리 모양 마음은 휘어져 있지않아 낡은 의자는 마치 종이배처럼 일렁이고 고르지 못한 다리에 눈물 하나가 끼면 얼른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조개들이 파헤친 곳에 혼자 가만히 서 보면 석양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다다를 수 있겠지요 열망 -최윤정 ■ 휜 다리, 낡은 의자, 눈물 하나… 이 시에는 뭔가 애달픈 사연이 있음직하다. 알고보니 이 시를 쓴 최윤정씨는 실제로 휜 다리와 곱은 손을 가진 장애인이었다. 이 시는 불편한 다리로 낡은 의자에 앉아 눈물을 짜내듯 힘겹게 시어 하나하나를 써내려가는 시인 본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최윤정씨는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이다. 최씨가 시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시집도 발표했다. 하지만 “시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그는 자신의 시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며 시인이라는 호칭에 낯을 붉혔다.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들 중에서도 최씨는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에 속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활동하는 문학모임 ‘상록수’의 회원으로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으며 지난 10월에는 뇌성마비시인들의 시낭송회에서 자신의 시를 직접 낭송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불편한 몸으로 창작활동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신보다 장애가 심한 언니와 단 둘이 살면서 모든 살림과 언니의 수발을 도맡아 해야하는 최씨에게 시를 쓰는 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최씨는 “삶에 유일한 활력소인 시는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라며 시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자신의 속내를 담아낼 수 있는 시어와 표현을 찾는 것도 힘들지만 현실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에게는 고통의 시간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손글씨로 쓰던 것에 비하면 컴퓨터로 시를 쓰는 지금은 그나마 작업이 쉬워진 편이다. 컴퓨터는 시를 쓰는 도구일 뿐 아니라 바깥 나들이가 쉽지 않은 최씨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컴퓨터를 다루는 데에는 아직 초보지만 머지않아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시인 최윤정’만의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 장애인·비장애인 차별말고 작품으로 평가 해주길 1993년 곰두리 문학상(현 장애인 문학상)에 가작으로 입선한 후 지금까지 최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집은 세 권.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성시인이 아닌 아마추어 시인 대열에 속해 있다. 일반 출판사들이 장애인 시인의 작품 출판을 꺼리기 때문이다. “번듯한 내 시집 하나 갖고 싶은 게 꿈인데 그게 어려워요. 정상인들의 시만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게 현실이죠. 장애인들이 더 힘들게 시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값어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기를 낳는 심정으로 정말 어렵게 시를 쓰는데 말이죠. 장애인 시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 빨리 개선되면 좋겠어요” 시종일관 말수가 적던 최씨가 장애인 시인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는 작품으로만 평가되어야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경직된 표정에서 그동안 장애인 시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설움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몸으로 시를 써내는 최윤정씨는 네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장애인 시인에 대한 차별을 겪느라 맘고생은 하겠지만 그래도 최씨는 계속 시를 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를 쓰는 건 ‘시인 최윤정’의 창작활동이 아니라 ‘인간 최윤정’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입 모양으로 세상을 열고 손 모양으로 세상을 느끼고 감각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하나 더 만회하는 벙어리 가능하지 않는 환타지를 끄집어내는 소유자 환타지를 따라 목마를 타며 하늘의 유성으로 달린다 소유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우주의 깃발은 모조 하거나 가공하지도 않는다 속 음성까지 시원스레 내뱉고 영아스런 별세계로 수반된다 해는 달을 위해 있는 것 별은 밤을 위해 있는 것 환타지는 벙어리 위해 있는 것 벙어리 환상곡 -최윤정 -한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