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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波칼럼) 利己主義의 元素 ‘에고’ 그것을 먼저 잠 재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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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호 ⁄ 2007.07.03 14:45:13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자기의 에고(ego)밖에 모른다. 나만 내세우고, 내 이익과 내 욕망, 내 쾌락과 나의 권익만을 추구 주장한다. 그의 안중에는 오직 나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너’도 없고 ‘우리’도 없다. 내 이익과 나의 욕망, 내 쾌락과 내 권리를 위해서는 타인이 희생되고 제물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나만 알고, 남을 나의 욕망 실현의 수단과 도구로 삼아도 무방하다. 나의 이기적자아(利己的自我)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나의 이쾌욕(利快慾)만 채우려 드는 야비한 생활태도 이다. 이기주의자의 상징과 표본적 대표를 찍어 내자면 고대 중국의 양주(楊朱)를 들지 않을수 없다. 그는 전국시대의 극단적 사회 혼돈 속에서 이기주의 사상을 부르짖었다. 그는 “나의 몸에서 털 하나를 뽑아 천하가 이로워 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털 하나도 뽑지 않겠다.(拔一毛而天下不爲也 : 孟子 盡心上)”며 일신이쾌(一身利快)사상을 주장해 왔었다. 동조하는 무리들이 떼지어 몰렸지만 주말(周末)에 들어 모두 흩어지고 사라지고 말았다.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출국에 앞서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다”고 야당을 원망하며 심기불편을 토로했다. 민주 의회정치에서 야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이런 발상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의도대로, 욕심대로 펼치는 국정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이 야당측에는 물을수 없단 말인가. ‘공동사회적 관계’의 룰에 의해 공동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잘하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았는가, 시장경제가 활성되는데도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가. 잘, 잘못을 따져 선양(宣揚)할 것은 찬사를 받아야하고, 폐단스러운 것은 폐기하게 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정당정치의 역할이 아닌가. 남을 원망하는 ‘에고’는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홉즈(T. Hobbes)가 말한대로 “만인(萬人)이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로 돌입하여 쌍방의 자유와 권리가 모두 부정되고 아무도 자유와 권리를 누릴수 없게된다” - 따라서 이기주의는 이기주의의 부정(否定)으로 끝나는 것이다. 차분한 반성은 이기주의의 원소(元素)인 ‘에고’를 삭이고 몰아낸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을 철회한 것을 ‘에고’로서의 자기본위로 생각하면 ‘굴복’이 되지만, 임명 절차에 하자를 생각하면 개과천선의 아름다운 본보기로 남을 역사적 사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굴복’이라는 서글픈 표현으로 TV화면에 나왔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6년을 평가하는 국민투표였다. 부시는 대패했다. 그러나 부시는 자기 고집을 내세워 이기주의적 ‘에고’를 내세우지 않았다. “공화당의 지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이제 선거는 접어두고 국가적 이슈와 관련해 야당과 함께 일하는게 우리의 의무다. 선거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민들이 이라크전에서 진전이 없음에 대한 불만을 인정한다”며 럼즈펠드 국방장관 경질을 곧바로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31 선거 참패후 “한 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 못되지 않는다.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로 장관을 바꾸지 않는다”며 독불장군 스타일로 으젓하기만 했다. 영국의 정치가 글래드스톤(Gladstone)은 “이기주의란 인류의 최대 재앙(災殃)”이라고 말했다. 인간 사회의 많은 악이 이기주의에서 유래한다. 이기주의 나무에는 탐욕의 벌레가 자라고 해타(害他)의 낙엽이 지고 소망의 그늘이 지는것이다. -박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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