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쓰나미’를 연거푸 맞았다. 노동계 반발에도 비정규직 법안은 작년11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노사로드맵 관련 노동법 개정도 이번 국회 회기 안에 강행처리될 조짐이다. 2007년 1월 새 집행부 선거까지 앞두고 있는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 말대로 ‘안팎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CNBNEWS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비정규직법 원천무효와 노사로드맵 입법저지를 위해 11일째 단식 투쟁중인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난해 12월 21일 만났다. 조 위원장은 열흘이 넘는 단식으로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3~4개의 신문을 펼치고 탐독하며 천막 밖 소식에 촉수를 세우고 있었다. ■“비정규직법, 비정규직 절대 보호하지 못 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가 정규직이지만 올해 비정규직법 입법 저지를 핵심 투쟁 사안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국회 날치기 통과였다. 정부는 비정규직법 국회 통과를 두고 ‘정규직 전환의 문이 열렸고, 비정규직 차별 개선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는 장밋 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조준호 위원장은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 법안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노동자들 스스로도 보호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보호법이라 할 수 없는 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1,500만 노동자 가운데 855만을 넘어 양적으로도 위험 수위에 도달했지만,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양산하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13일 발표한 ‘2006년도 노사정관계 평가와 2007년도 전망'을 보면,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2007년 7월 1일 사용자가 정규직화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준비기간이 짧고, 현재 기업의 고용관행이나 인사노무관리체계를 볼 때 당장 정규직화보다 해고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한국노동연구원은 특정 업무를 간접고용으로 바꾸어버리면 해당 사업장에 비교 가능한 정규직이 없어져 차별시정 자체가 어렵고, 합리적인 차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힘들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노동자 벼랑끝 내몰고 사회양극화 해소는 어불성설’ 조 위원장은 “사회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IMF이후 중산층 몰락에 있다”면서 “중산층 몰락의 원인을 다수의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문제에서 찾아야한다”고 진단했다. 조 위원장은 “우리나라 경제 수준은 단군이래 최대 규모를 보이고 있으며 기업은 부자이지만 겨우 생명을 연명하는 수준의 일자리만 넘치는 상황”이라며 “몇몇 기업들의 활동이 국가 경제지표를 올리긴 하겠지만 이들 기업만 잘 살기위해 상당수 노동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CNBNEWS는 평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조한 조 위원장에게 인터뷰 바로 전날인 20일 우리은행 노사가 정규직 임금동결로 비정규직 3,1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했던 일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조 위원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정부가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방안과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고 기업이 솔선하는 것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조 위원장은 “정규직노동자들의 양보만 요구하는 것은 마치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만들지 않고 국민 모금운동으로 빈부격차를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 12번 총파업, 민주노총 총파업 원동력 건재 과시 올해 민주노총은 이례적으로 총연맹 차원의 총파업을 12번이나 진행했다. 이에 따라 거듭된 총파업 자체에 대한 비난과 함께 총파업 동력약화 등 조직운영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조준호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렇게 총파업을 자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면서도 “산별노조가 완성되지 않았고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안고 있는 현 상황에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파업 참여율이 낮다는 노동계 안팎의 비판에 대해서도 조 위원장은, “총파업 때마다 최소 10만 이상의 조합원과 30만에 육박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80만 조합원 가운데 20만 밖에 되지 않느냐는 비판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로, 한 나라의 노동단체에서 1/4의 조합원이 총파업에 참여한 것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사건이다”고 평가했다. 또한, 조 위원장은 “파업권이 없는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즉각적인 파업이 어려운 보건의료노조도 적극적으로 총파업에 참여한 사실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원동력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민주노총이 ‘선진화 방해하는 5적이라니’ 올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법과 노사로드맵과 관련한 총파업은 물론, 한미FTA저지·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등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런 민주노총의 행보를 두고 이른바 보수세력의 시선은 차가웠다. 최근엔 자유주의연대라는 보수단체가 민주노총을 한총련·통일연대 등과 함께 ‘선진화를 방해하는 5적’이라며 민주노총 지도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 보수화 움직임에 대해 조 위원장은 뜻밖에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사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도 있었다”며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은 좌파 용공세력이라는 말로 평가절하 받았지만, 이후 진보운동은 다행히도 건강하게 흘러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반대시위에 참여한 민주노총이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정치파업으로 일관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조 위원장은 “한미FTA는 누가 보더라도 노동자와 농민이 나서 막아야하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라며 “과거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할 때 ‘학생들이 무슨 데모냐’라고 말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노동자들이 사회 구성체의 중심으로서 한미FTA라는 사안과 사회현상에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조 위원장은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을 하면 대공장 이기주의에 빠져있다고 비난하고,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치파업이라고 주장하는 ‘자기모순적인 논리’를 들이댄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사실 보수언론은 광고를 받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구조로 자본에 매여 있다”며 “건강한 신문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 속에 이들의 역할은 자본의 생각을 전달하는 전도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언론은 이미 언론의 기능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며 “보수언론에 민주노총의 활동을 평가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조 위원장 “산별노조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 1997년 IMF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이어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부 정책은 노동권 약화를 가져왔다. 조 위원장도 집회 연설이나 기자회견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말해왔다. 조 위원장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가 자본의 세계화 초국적 자본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며 “IMF이후 정부의 기본정책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의 세계화를 위해 노동권의 약화를 강요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관계 로드맵 역시 이런 신자유주의 속에 사용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노동권을 약화하기 위한 것”이며 “한미FTA는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완성하는 작업이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이날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은 현재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산별노조로 가야 한다”며 “지난해 산별노조 시대를 완전히 완성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지만 다음 민주노총 집행부는 금년에 산별노조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완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준호 위원장은 보궐선거를 통해 2006년 2월부터 민주노총 위원장에 선출됐으며, 금년 2월 임기를 모두 마친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