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호는 함선의 선장을 잃었다. 통합신당파가 나침반을 분실했기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탈당 도미노 현상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여권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가 17대 대선에서의 조타수가 되어 주기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내 이명박·박근혜라는 두 거물과의 경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인 손 전 지사의 탈당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 진대제·정운찬 향한 러브콜 발동 “(한나라당)탈당(할) 의사 없다” 이 한마디는 갈림길에 선 손 전 지사의 굳센 의지를 나타내기엔 한치의 모자람도 없다. 적어도 사전적 의미에서만은 그렇다. 그럼에도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통합신당 후보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달 말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는 여전히 손 전 지사의 개혁성향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월 29일 손 전 지사의 이른바 ‘드림팀’ 발언은 가히 핵폭탄 급 위력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져왔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한 직접적인 러브콜이었다. 더욱이 범여권의 영입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당사자가 역으로 여권인사에게 먼저 손을 뻗음으로써 적잖은 파급력을 발휘하게 됐다. 손 전 지사는 전남 목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대제·정운찬·손학규가 모이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도 영입 대상으로 지목해 눈길을 끌었다.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인물들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는 자신의 정체성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손 전 지사는 “칭기즈칸은 성을 쌓는자 망하고, 길을 여는 자 흥한다”며 끊임없이 길을 열어 나가서 한나라당의 그릇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러한 손 전지사의 발언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이미 여권인사들을 영입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은 이후에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 줄곧 열린우리당 인사 영입 주장 이는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차별화 행보를 보임으로써 범여권 주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자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손 전 지사는 당초에도 열린우리당 탈당인사 가운데서도 훌륭한 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며 적극적인 포용론을 펼쳐온 바 있다. 다만 이번에는 자신이 영입하고자하는 인사의 실명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도 외부세력과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열린우리당 이탈세력을 받을 수 없다”고 일축한 것과 정면 배치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운찬 전 총장, 진대제 전 장관,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을 한나라당이 영입하는 것은 절대 안 될 말”이라며 강경한 어조를 나타낸 바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명박 전 시장 역시 손 전 지사의 외부영입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선의의 경쟁은 환영한다며 손 전 지사의 발언에 화답했다. 이는 한나라당의 여권인사 영입이 아니라 손 전 지사가 직접 여권의 대선후보가 되어달라는 역제안으로 이해 되는 대목이다. ■ 손학규, 한나라당 소속 맞아? 손 전 지사의 돌발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KBS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의 목표는 무조건 정권교체가 아니다”며 지도부가 당운영의 목표를 정권쟁취에 두겠다는 발표를 직접 겨냥했다. 그러면서 손 전 지사는 “시대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연을 더 크게 해서 더 큰 한나라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부인사 영입을 지속적으로 주창했다.
범여권 인사로서의 자질은 여의도 뿐 만 아니라 청와대와도 연결된다. 손 전 지사는 최근 경제전문가와 경제 지도자의 차이를 비교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일리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손 전 지사는 노 대통령의 ‘경제를 직접 해봐야 경제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동조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경제마인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손 전 지사는 북핵 6자 회담 개최를 전후해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견해도 지도부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상회담이 여당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해 보기 위한 대선용이며, 정략적이라고 맹공하고 있는 데 반해 손 전 지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입장이다. 하려면 대선전에라도 얼마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거침없는 하이킥’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 최근 손 전 지사가 여권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내용의 김진명씨 소설이 사전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손학규, “당내 구성 바꿔야” 일갈 연일 외부 인사 영입 강조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한나라당은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된다”며 한나라당의 구성을 바꿔야 집권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손 전 지사는 1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와 같이 밝히고 자신이 거명한 여권 인사들이 실제로 한나라당 당적을 가질 의지만 있다면 이들의 입당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이 여권의 잠재적인 대권주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한 일종의 쐐기박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꼭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사람 아니라도 된다, 다른 데서도 그 정도의 전문가를 다 구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부분이다. 연일 진대제·정운찬·손학규 ‘드림팀’ 구성을 언급하고 있는 손 전 지사의 이같은 행보는 자신이 범여권의 대선주자로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당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정치는 생물, 탈당할 수도 손 전 지사는 본인의 탈당설에 대해 “정치는 (움직이는)생물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 자신이 박근혜·이명박 수준의 지지율을 획득하게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손 전 지사는 “지금 한나라당이 지지율이 높다고 안주하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지지층을 더 확대해야 한다”며 좌로 이동해 중도층을 흡수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을 실었다. 한나라당 세 주자의 지지율을 합하면 70%가 넘지만 결국 선거라고 하는 건 5%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층을 제대로 포섭을 해야 집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손 전 지사는 “손학규의 입을 보지 말고 손학규가 살아온 길을 봐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최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