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라는 말이 있다. 어떤 조직에서 완전히 소외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 심성이 너무 순박하거나 순진해서 자신에게 손해보는 일도 곧잘 하는 사람을 말한다. 2007년 현재의 한국정치에서 ‘왕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정치인은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이다. 그러고 보면 ‘바보’라는 말은 노무현 대통령의 별명이기도 하다. ‘왕따’와 ‘바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특정 사회의 ‘주류’들로부터 배척당한다는 것이다. 고진화 의원은 요즘 한나라당 내에서 빗발치는 ‘탈당요구’에 묵묵부답이다. 한 마디로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가장 반(反)한나라당스러운 정치인’ 고진화 의원을 지난 23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삶과 정치적 견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 자리에는 정치웹진 ‘무브온21’의 함태식 편집장이 함께 했다. ■ 한나라당에는 전략적 사고가 없다 고 의원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해 “전략적 사고나 행동들에 대한 훈련이 전혀 안돼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고 의원은 “집권세력이라는 오랜 경험 역시 10년도 더 전인 노태우 정권 때였다”면서 “최근의 한나라당의 상황은 하나의 예를 들자면,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주된 기조가 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상호주의’에 대해서 “남북관계의 전략적인 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의 하나의 방법론”이라며 “그걸 남북관계의 기본 전략이라고 하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 의원은 “오랫동안 담론 형성의 훈련이 안돼 있고, 사회 정체성이라고 하는 부분이 같은 것들은 과거에서 빌려온다는 게 바로 한나라당이 ‘불임정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냉전체제가 해소된 이후에 진보진영은 분화도 많이 일어났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논쟁과 논란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는데, 보수진영은 그런 것들이 적었던 것 같다”며 “한나라당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고 의원의 한나라당 비판은 당내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이르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는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처럼 지지율이 많이 나온다는 후보들이 과연 진짜 획기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고, 문제라고 지적되는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럴 만큼의 세력적 네트워크가 돼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 왜 한나라당인가보다는 시대적 과제의 실행이 중요하다 고 의원은 이른바 ‘386 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몇몇 인사들은 이들을 가리켜 ‘이념의 과잉’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고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념의 과잉이라는 부분은 우파 사람들이 좌파에 대해서 ‘좌파’라는 큰 틀로 규정해버리려고 하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적하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이 너무나 많은데 그 중에 가장 틀린 것은, 386들이 모든 것을 이념적 틀 속에서 사고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라고 비판하고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말했다. 정치인 고진화에게 가장 많이 던져지는 질문은 바로 “그 당에 왜 당신이 있는가”이고 그 다음이 “이부영 전 의원과 김부겸 의원 등 이른바 ‘독수리 5형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왜 따라나오지 않았는가”이다. 고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솔직하고 자세하게 언급했다. 그는 먼저 ‘독수리 5형제’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저는 당시 다섯 분들이 나가는데 찬성을 한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수리 5형제’는 당시 원외위원장이던 고 의원 등이 자신들에 합류하는 것을 말렸다고 고 의원은 전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뚜렷한 방향이나 이런 것이 합의가 안돼 있다는 이유였다”는 게 고 의원이 밝힌 만류의 이유다. 그는 “자기들이 보기에는 저희들이 합류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도 말했다. 고 의원은 “그 당시로서는 (탈당과 신당 합류가) 상당히 모험수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고 의원은 “해방 이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숙제는 국민적 에너지를 어떻게 모으느냐의 문제”라면서 “저희 세대도 운동이라는 것을 했지만, 의지만 앞섰지 힘을 모으는 데는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화해협의회처럼 어설프게라도 좌우를 모으는 게 옳은지, 아니면 특별한 의지가 있는 분들이 뭉쳐서 해야 하는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정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것인데,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면서 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도 없고, 제가 몇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며 “저는 다만 이 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하면 실행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자신이 어느 공간에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 개헌의 본류는 시대의 변화를 담는 것 이날 인터뷰에서 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정치권에 화두로 던진 ‘개헌 문제’에 대해 “진짜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대통령 5년 단임제’로 규정돼 있는 현행 헌법에 대해서 “그건 분명히 ‘1盧·3金’ 체제에서 자신들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한 번씩 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 의원은 “돌아가면서 해먹자는 합의라는 점에서 빨리 합의가 됐다”며 “‘대통령 직선제’는 대중이 알기 쉽다는 측면에서는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저는 헌법을 고친다면, 선거제도 즉,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가 무엇이 변화하느냐’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부분은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들의 경우 정·부통령제까지 주장했었다”면서 “개헌은 모든 정파가 동의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정권에서 개헌하자’는 것이 지금의 국민여론이고, 이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결과적인 국민적인 불신의 결과이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진짜로 다음에 할 의사가 있느냐는 측면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경우, 다음에도 하지 말자는 뜻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개헌에 대한 말바꾸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고 의원은 “헌법 개정의 본질은 진짜 헌법개정이 필요한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이며, 누구에게 유리한가는 논의의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의 약점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야당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헌법이라는 것이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은 지금 더 급박한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럴 형편이 못된다”면서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을 때 가능한 주제가 바로 개헌이다. 정권 출범 초기 같이 정권에 힘이 있을 때 개헌하자고 하면, 누가 관심을 갖고 덤벼들겠는가”라며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높이 평가했다. ■ 박근혜는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이 없고, 이명박은 본질이 불투명 이날 인터뷰 말미에 고 의원에게 유력인사들에 대한 촌평을 부탁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 고 의원은 “굉장히 절제력이 있고 권력의 운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들은 안돼 있다”고 평가했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좀 모호하다. 생각이 어느 지점에 가 있는지, 자신이 그리려는 사회가 뭔지, 카멜레온 같이 변화가 가능한 분인데, 실질적으로 그 분의 본 모습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에 대해서는 “촌철살인이다. 그 선배는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가려는 의지만이 아닌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고,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는 “두뇌 회전이 아주 빠르고 천재형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해서는 “덕이 있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전투적인 불같은 그런 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사라진 반면, 푸근함과 넉넉함은 많이 생긴 것 같다”고 후한 점수를 줬고,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해서는 “말을 너무 잘하시고 달변가이고, 순간적인 어필을 잘한다. 하지만 김근태 의장에 비해 삶의 무게감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