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부동산 관련 1·11 대책이 전격 발표된 직후 용인의 집값이 하락했다. 또한 금융권 PB(Private Banking)에는 부유층들이 부동산 에 묶인 자금의 이동과 관련 수많은 상담을 해 오고 있다. 전국의 부동산 투기자금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신의 눈길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부동산 거품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섞인 해석을 보이고 있다. 최근 강남·분당 등 주요지구의 집값 안정추세는 참여정부의 고집스러우리만치 강력한 추진에 따른 심리적 현상에 기인한다는 것. 특히 학계에서는 “이번 시장의 가격 안정은 1·11 대책 그 자체보다는 이를 발표한 건설교통부 장관의 ‘필요하다면 자본주의 논리에 위배되더라도 더 강력한 정책을 계속 쏟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언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 즉 이번 시장의 반응은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 1월 11일 이후 부동산 투자자금 술렁 이날 발표된 대책은 분양가 상한제 도입, 분양원가 공개, 환매조건부 아파트 분양, 아파트 내부 마감재를 입주자가 선택하는 마이너스 옵션제 도입, 전월세 대책 마련, 토지보상제도 개편 등을 골자로 한다. 또한 정부는 매년 장기 임대주택 50만호씩 공급, 연기금 및 민간 참여를 통한 임대주택 펀드 마련 등 잇따라 추가대책을 발표했다. 이뿐 아니라 이용섭 건설부장관은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 등은 시장원리에는 맞지 않지만 주택시장은 공공성이 강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 도입했으며 부동산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적 원리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이보다 더욱 강력한 대책을 계속해서 내 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에 눌러앉아 있던 부동자금들도 술렁이고 있다. 이와관련 서울 서초구에 사는 A씨(여, 55세)는 “노무현의 고집이 장난 아니다”며 “일시적으로라도 자금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CFP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담당 보험설계사와 은행 PB, 담당 세무사 등과 상담하며 부동산 중심의 투자처를 펀드·주식 등으로 다양화 하는 방안에 대해 고려중에 있다. 그러나 압구정동의 B씨(여, 40세)는 “이번 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혼자 생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같은 정책이 실질적으로 집행되려면 국회에서 관련법을 개정한 후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며 “이번 정책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1·11대책, 입법화 실패 땐 집값 폭등 우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책은 입법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심각한 부작용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사실 여의도에서는 이번 정부 대책이 입법화 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정책은 이용섭 건교부 장관의 표현처럼 일부 사회주의적 대책이 포함돼 있다. 또 반값 아파트 정책에서도 홍준표 의원의 토지임대부 분양제를 제외한 채 열린우리당의 환매조건부 분양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다. 또한 최근 열린우리당의 분당급 탈당 사태로 인해 지난 8·31 대책 입법과 같은 실력행사도 불가능한 상황.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 내 당 사수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대책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 등 이번 정책을 함부로 승인하게 되면 12월 대선에서 중산층 이상의 표심과 결별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정치권의 이해관계는 1·11 대책의 입법화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또 건교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현실성 없는 일”이라고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3일 건교부를 출입하고 있는 A일보의 모 기자는 사석에서 “말 대로는 상당히 강력한 대책이다. 그러나 정책에 실제로 반영하려는 적극적 의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 시장적 정책 등의 발표를 통해 시장에 겁을 줘서 다가구 주택 소유자와 건설사들의 투매를 유도한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분석이다. 이와관련 부동산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집값이 하락되고 있는 것은 지난달 11일 이 장관의 ‘집값 잡을 때 까지 계속 대책을 내 놓을 것’이라는 엄포가 시장 심리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 대책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공염불이 될 때 부동산 불패에 대한 확신이 퍼지면서 계속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참여정부의 연속적인 규제 속에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황이라는 것. 그러나 1·11 대책의 입법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억눌려 있던 투기 심리가 스프링이 튀어오르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폭등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 1·11 대책, 부동자금 안착대책 없어 성공해도 문제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대책이 입법화에 성공한 후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11관련 입법이 완료되면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자금의 탈출 러쉬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자금을 빼내기 위해 시장에 많은 매물이 나오게 되고 공급의 확대가 자연히 집값 하락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빠지게 된 부동자금이 마땅히 갈 데가 없다는 것. 금융연구원·한국개발원(KDI)·부동산 연구원 등 경제 연구단체들은 현재 부동산에 묶여있는 부동자금이 대략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금들이 부동산 시장을 빠져나온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 이와관련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이 모씨(남, 38세)는 “주식은 휴지가 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며 “최악의 경우라도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부동산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주식·채권·펀드·선물·외환·대부업 등 한국의 투자처들 중에서 부동산만큼 저위험 고수익의 매력적인 투자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8·31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가 헌법재판소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작년 12월 이후부터 부동산 관련 입법이 올해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화 될 것이라는 전망 등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점차 위험한 투자처가 돼 가고 있다. 반면 저금리 기조 속에서 예·적금은 물가상승률 대비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하고 있다. 또 펀드는 수익을 얻었을 경우 운영 수수료·세금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수익률이 충분하지 않다. 또한 주식은 속칭 대박이라 부를 수 있는 고수익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원금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즉 기존의 부동산 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수익률의 안정적인 투자처가 없다는 것. ■ 1·11성공 후 부동자금 해외유출 대비 전무 이와관련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환율 안정 등을 위해 해외투자펀드에 세제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부동자금들이 해외투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투자금융 시장에서 해외투자 펀드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이와관련 대우증권의 곽병열 연구원은 “이미 세계 증시의 초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중국·인도·베트남·브릭스 등 펀드가 국내 투자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추세에 따라 지난해 11월 이후부터 해외투자펀드는 실질 유입액 면에서 국내투자펀드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달 말 기준 해외투자펀드의 수탁고는 36억원에 이르렀다.
이와관련 “자산운용협회는 부동산 부동자금이 해외펀드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투자펀드도 투자지역이 인도·중국·베트남·브릭스 지역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관련 국제금융협회의 안남기 연구원은 “우리나라 해외투자펀드는 중국·인도·베트남의 투자 규모가 전체 2/3 수준인 약 24조원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들 지역의 경제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할 경우 높은 수익성으로 해외투자를 촉진시켜 정부의 외환시장 수급 균형 정책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반면 해당 국가의 경제 현황에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으며 대규모 환매가 집중될 때는 투자자금 회수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자금, 즉 국부가 특정국가로 대규모 빠져나가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즉 환율방어의 측면에서 정부가 부동자금을 해외투자로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국부유출이 아닌 건전한 해외투자를 조성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지 않은 채 성급하게 세제혜택 등의 정책을 발표해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 이와관련 굿모닝 신한증권의 한 관계자는 “해외투자펀드가 만능은 아니다”며 “해당국가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언제라도 펀드잔고가 0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로인에 따르면 봉쥬르차이나주식1 펀드의 경우 -5.66%, 봉쥬르차이나주식2A는 -5.34%, 얼라이언스번스타인글러벌가치포트폴리오A펀드는 -0.80%, 미래차이나솔로몬주식 1종류A펀드는 -0.77% 등 많은 펀드들이 연초 후 기준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또 우리 경제의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는 IMF 외환위기도 지난 1996년 이후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금융권들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 집중 투자를 했다가 원금을 손실하거나 제 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대규모 투자실패가 핵심 원인이라는 점에서 무분별한 해외투자 급증은 IMF의 전례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한미 FTA, 부동산관련 모든 정책 무력화 가능 그러나 무분별한 해외투자에 대한 우려는 1·11대책이 실질적인 성공을 거뒀을 때 즉 관련 법률·시행령·규칙이 개정되고 그 정책이 실제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위력을 발휘했을 때 부동산 시장 바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 하지만 1·11 대책이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해 법령 개정이 완료되더라도 이 정책이 무력화 될 수 있는 암초는 곳곳에서 존재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일 최재천 국회의원은 “한미 FTA에서 투자자 국가소송제가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1·11 대책 뿐 아니라 8·31 대책도 무력화 될 뿐 아니라 향후 어떤 부동산 안정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측은 이 제도가 미국의 안대로 타결될 경우 국내법(토지보상법)상 수용에 따른 보상 수준이 미국 투자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제소 대상이 될 수 있고, 토지이용 정책·개발제한 정책 등 부동산 투기 근절이나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사전대책들과 개발이익에 대한 과세 및 공적 환수 정책 등도 간접 수용으로 간주돼 역시 제소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인들에게 토지를 귀속시키는 행위가 된다는 주장이다. -박현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