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그것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2차원의 존재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경이로운 존재, 날개. 새는 그 날개를 보유한 지구상 유일의 온혈 동물이었다. 새가 하늘을 날게 된 것은 순전히 날개 덕분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날개에 의해 발생되는 기압의 차이 때문이다. 윗부분의 볼록한 부분에서는 기압이 떨어지고, 아랫부분의 오목한 부분에서는 기압이 올라간다. 결국 새의 날개에서 두 가지 기압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공기가 흐르는 원리를 날개는 교묘하게 이용했다. 새는 그 날개에 편승하였을 뿐이다. 철새는 한 군데에 정착하지 못하는 가련한 존재이다. 오로지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할 뿐이다. 인간 세계에도 이와 유사한 종족이 있다. 이른바 유목민으로 불리는 이들은 양떼를 몰고 이동에 이동을 거듭했다. 정착되지 못하는 삶. 파괴적인 삶의 연속. 기본적으로 서양 문명은 유목민의 문화이며 철새와 같은 문화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그리도 즐기는 건가. 그러나 철새는 파괴적이지 않다. 종에 따라서는 텃새들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못된 무리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먹이만 있으면 온순하게 지내는 존재이다. 철새는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다. 인간 세상의 못된 모습을 자신에 비유하는 수사법을 무척 싫어할 것이다.
겨울 풍경, 겨울 저수지. 그리고 겨울 철새. 수많은 이들이 한데 몰려 있어 누군가 했더니 500mm렌즈를 장착한 일단의 사진가들이었다. 대포처럼 우람한 렌즈들을 값비싼 삼각대에 올려놓고 호수를 하염없이 응시하는 그들. 셔터를 하나씩 누를 때마다 탄생하는 새들의 현란한 몸짓. 그들이 찍은 새들의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는 직접 보지 못하는 기이한 것들이다. 만일 인간이 그들 곁에 다가 간다면 새들은 주저없이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고 만다. 인근 구룡산과 백월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낙동강물이 합쳐져 180만평이라는 광활한 수원지를 만들었단다. 산남·주남·동판의 3개 저수지가 수로로 연결된 그 넉넉함에 시야가 절로 펼쳐진다. 광활한 늪지 한 가운데에는 갈대가 자생하는 아름다운 섬이 하나 있다. 그 섬에는 개구리밥과 붕어마름 등 철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해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써 손색이 없다. 해마다 11월에서 3월까지 20여종 수만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는 주남저수지. 무지한 인간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그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주남은 여전히 철새들이 못 잊어하는 생존의 일급 장소이다. 저수지의 끝자락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낙조를 바라보니 새들의 군무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아름다웠다. -김대갑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