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의 정체성은 많이 팔리는 것이다.” 최근 노조 집행부가 ‘시사저널의 정체성이 뭐냐’고 묻자, 사측 박경환 상무가 한 말이다. 1989년 <시사저널>의 탄생은 주간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찍이 이런 주간잡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주간지는 이른바 ‘선데이서울’류의 선정적인 화제나 연예가의 가십 따위를 다루는 타블로이드 판 ‘옐로페이퍼’가 주종이었다. 당시 <시사저널>은 한국의 <타임> 또는 <뉴스위크>를 자처했다. 그들은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표방했다. <시사저널>은 어떠한 권력과 성역도 인정하지 않았다. 해마다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기획하여 본격적으로 여론조사를 도입했고, ‘촌지 안 받기 운동’을 펼쳐 이를 언론계에 뿌리내리게 한 것도 <시사저널>이었다. 그런 <시사저널>이 지금 중병에 걸려 있다. 현장을 누비며 ‘진실의 펜대’로 사회의 어둡거나 밝거나, 아프거나 맑은 부분을 보도하던 현장기자들은 지금 ‘길거리 편집국’의 천막 아래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농성을 하고 있다. ■ 진실의 등불에서 ‘주간 삼성’으로의 화려한(?) 변신 <시사저널> 사태의 뿌리는 작년 6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관련된 경제면의 2쪽짜리 기사를 삭제할 것을 지시한다. 당시 이윤삼 편집국장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이 편집장은 사흘 후인 6월 22일 기사 삭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했고, 금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현장 기자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그러나 6월 25일 금 사장에게서 돌아온 답은 ‘팀장 전원 서면 경고’와 ‘총괄팀장과 편집팀장 감봉 3개월’, 그리고 ‘총괄팀장 무기 정직과 출근 금지’였다. 금 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금 사장은 7월 5일 <시사저널> 사태를 보도한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과 비판적 성명을 발표한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회장,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자신의 의자를 편집국으로 옮긴 평기자 2명에게는 ‘정직 3개월’을 내렸다. 그러자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퍼졌다. 이들은 작년 10월 12일 ‘시사저널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꾸렸다. 현재까지 가입한 단체는 민언련 등 총 22개다. 이어 10월 16일에는 구독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이 발족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측은 ‘취재 보강’을 구실로 정치 2명, 경제 2명, 사회 3명 등 총 13명의 비상근편집위원을 위촉하고 이들로 하여금 기사를 생산하도록 했다. 이후 <시사저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12월 15일 단체협상이 결렬됐고, 올 1월 11일 노조는 마침내 무기한 전면파업을 결의했다. 그리고 금년 1월 22일 금창태 사장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후 노동조합은 1월 24일부터 사옥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한겨레21>과 더불어 시사주간지의 대명사로 손꼽히던 <시사저널>이 ‘주간 삼성’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시사저널>은 현장 기자들의 기사가 아닌 비상근편집위원과 실명 여부가 불분명한 자유기고가들의 글로 채워진 채 ‘짝퉁 아닌 짝퉁’으로 발행되고 있다. ■“이학수 관련 기사를 읽지도 않고 삭제했다” <시사저널> 사태의 핵심은 ‘금창태 사장에 의한 삼성 관련 기사 삭제’와 ‘그 과정에 삼성의 압력 유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금 사장과 노조 측의 입장은 루비콘의 강을 건넜다. 금 사장은 “보완 후 게재를 지시했을 뿐 삼성 기사 삭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노조는 “금창태 사장은, 삼성 그룹으로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이윤삼 편집국장을 불렀고 이는 관련 기사를 보기 전이었다”고 밝히고, “당일 금 사장은 취재 기자도 불렀다. 경제팀 이철현 기자에게는 이학수 삼성 부회장과의 친분을 들어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했다. “취재 기자에게 사장 겸 편집인이 해당 기사를 보기 전에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인간적으로 부탁했다는 것은, 금사장 본인이 이미 노조 측에도 인정한 사실”이라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 사장과 이 편집장, 이 기자의 만남이 있은 후 하루가 지나 이윤삼 국장이 “기사에 문제가 없다”며 기사 게재 방침을 알리자 금창태 사장은 명예훼손 소송 운운하면서 기사 삭제를 강요했다고 노조는 밝히고 있다. 금 사장은 이에 대해 “해당 기사가 허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기사를 인쇄소에서 들어낸 이후 비로소 등장한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혹여 해당 기사에 사소한 하자가 있다면, 보완해 게재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금 사장이 한 것처럼 취재 대상과의 친분을 들어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인간적으로 부탁하는 것이 편집인의 권한은 아닐 것”이라는 게 노조의 항변이다. 금 사장은 또 “기사를 보기 전에 삭제를 지시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조 측은 “그는 해당 기자에게 이미 삼성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고 말했으며 그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해왔다”며 “그런데 그것을 인정했다는 사실마저도 공공연히 부인하는 금창태 사장의 몰양식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금 사장은 “평소 시사저널 기사가 소송에 휘말려 회사의 손실이 컸다”며 “삼성 측의 명예훼손 소송을 우려한 편집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금 사장이 예로 든, ‘순복음교회 관련 기사 때문에 1천만 원을 물어주었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금 사장이 예로 든 순복음교회 관련 기사는 4주에 걸쳐 보완 취재가 이루어졌고, 이후 30억 원 대의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이후 원만히 타결됐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노조는 “사적인 친분 때문에 기사를 삭제한 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허위 주장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의 신뢰에 흠집을 내는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금 사장의 주장을 비난했다. ■ 편집권은 사장의 권리(?) 금 사장은 자신의 기사 삭제 행위에 대해서는 “편집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는데, 편집국장이 전화도 받지 않고 퇴근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노조는 “공인으로서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며, “이윤삼 편집국장이 전화도 받지 않고 퇴근해버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개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기사 삭제를 결정한 해당 회의가 열리던 그 시간에 이윤삼 편집국장은 평소대로 편집국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고 평소에도 항상 그런 작업 패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측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는 “통보 없는 일방 삭제에 대한 이윤삼 편집국장의 항의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 “그의 항의 사표를 이튿날 즉각 수리해버림으로써 회사는 파국을 자초했다”며 사태의 원인이 사측에 있다고 강변한다. 대개 ‘편집권은 취재 제작에 종사하는 이 모두가 공유하는 권한’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취재 기자에게 “결국 언론사가 기댈 곳은 삼성이다. 이학수 부회장과의 관계가 있으니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운운했던 인물이 제대로 된 편집권 논쟁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자 없는 <시사저널>, 일명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에 대해서도 사측은 고소로 응대하고 있다. 이미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 고재열 현 시사저널 기자,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등이 금 사장에 의해 고소된 상태다. 또 고재열 기자는 단체협상이 재개된 직후, ‘짝퉁 시사저널’을 비판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무기 정직 처분을 받았다. ■ 짝퉁 시사저널, 단행본 발췌 칼럼에 표절 의혹까지 노조가 분노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현장 기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금 사장은 “결호를 낼 수는 없다”는 이유로 고려대학교와 중앙일보 인맥을 동원했다. 중앙일보 출신으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인물을 총괄 편집위원에 앉히기까지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사저널 899호’는 범 중앙일보 관련 인물이 지면의 53%를, 900호는 56%를 채웠다고 노조는 분석했다. ‘짝퉁 시사저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미 출간된 단행본을 일부 발췌해 컬럼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외신보도를 전재하다시피하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표절성 기사’를 싣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 편집위원에게 정치 관련 커버스토리 집필을 맡겼고, 제 1야당 당직자에게 시론 집필을 맡기기도 했다. 현장 기자들은 “시사저널이 평소 견지해온 편집 방침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졸속 편집”이라며 경악하고 있다. 특히 외신기사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언론의 상도를 어겼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금 사장은 해당 기자가 “BBC 측과 교신한 이메일이 있으며, 이를 확인해줄 수 있다”면서 “BBC 기자가 오히려 자신의 기사를 소개해주어 고맙다고 했으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메일 내역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BBC 기자가 한국의 시사잡지가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기사를 소개하는 것을 용인했을지 의심스럽다”면서 “더욱이 홍 아무개 편집위원은 ‘기사 송고 후 취재원 측의 연락처를 확보했으나 이미 송고가 완료되어 손쓸 수 없었다’라고 한 일간지 기자에게 답변하기도 했다. 따라서, 금사장의 답변은 진실을 호도하는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제 2의 구본주’가 된 <시사저널> 기자들 삼성그룹의 언론 통제를 말해주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조각가 구본주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어느 날 친근한 벗들과 한잔 술을 걸친 조각가 구본주 씨는 새벽녘 자신이 사는 집 근처에서 뺑소니차량에 치어 불귀의 객이 됐다. 뺑소니차량은 잡혔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가해자는 삼성화재에 보험을 들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화재 측은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구본주 씨 유가족에게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보상금을 제시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유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소식을 전해들은 전국의 예술인들이 삼성화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이 사건은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크게 보도됐고, 결국 삼성화재는 유가족들과 합의하기에 이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삼성화재 측의 부단한 언론 간섭이 도사려 있다. 삼성화재는 구본주 씨 사건을 둘러싼 예술인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려는 독립영화감독 태준식 씨의 작품을 문제 삼았다. 인터넷 매체의 보도에는 그 흔한 ‘유감 표시’ 한 번 없었다. 삼성화재 측이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은 시청자 참여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KBS의 ‘열린 채널’ 측에 고소와 고발을 시사하면서 태준식 감독의 작품,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의 방영을 막았다. 유가족과의 합의에 따라 일부 수정된 내용이 방영되는 것으로 사태는 종결됐지만, 자사의 이미지를 해치는 그 어떤 내용의 진실도 막으려는 삼성의 태도는 완강하다. 결국, <시사저널> 기자들은 ‘제 2의 구본주’인 셈이다. 고 구본주 씨와 <시사저널> 기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구본주 씨는 고인이고, 기자들은 살아있다는 점, 그리고 구본주 씨 사건은 종결형이지만 <시사저널>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뿐이다. 우리가 걸어온 지난 시기를 일러, ‘어둠이 밝음을 가리고, 거짓이 진실을 구타하며 반역사가 역사를 강간한 시기’라고도 표현한다. 많은 부분이 나아지고 또 나아지는 과정에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 주소라고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성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이른바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언론권력이고, 또 하나는 ‘삼성’으로 상징되는 ‘자본권력’이다. 이 둘이 만나 야합의 과정에 이르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어떠한 합의로도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될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에 언론과 시민사회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