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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정한 설은 어디 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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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호 ⁄ 2007.07.03 13:40:45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기뻐하셔요. 혹시 가사가 틀렸어도 이해해 달라. 자료를 찾아보면 바르게 쓸 수 있지만 포기했다. 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으니까. 우리의 명절인 설의 팔자는 기구했다. 민족 고유의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다. 그러나 일제가 명절도 강탈해 갔다. 우리의 명절은 구정이란 이름으로 쫓겨나고 신정이란 이름의 새로운 명절이 생겨났다. 창씨개명처럼 말이다. 공무원이 구정을 쇠면 혼이 난 때도 있었지만 우리 설의 생명력은 강인했다. 우리는 설을 숨어서라도 찾았고 결국 우리는 설을 찾았다. 구정이란 이상한 이름을 버리고 당당히 우리의 설로 돌아 온 것이다. 이제 나이를 먹었다. 살아 온 날 보다 살아 있을 날이 훨씬 짧은 오늘 나는 설을 생각한다. 과거는 아무리 비참했다 해도 아름답게 채색 되어 찬란하게 부활한다. 일제 때 설날, 6·25 전쟁 중에 보낸 설날은 따지고 보면 아무 기쁨도 없는 설날이어야 하는데도 설날은 그냥 좋았다. 부모님은 어려운 속에서도 양말 한 켤레라도 새것을 마련해 주셨고 헌 옷이라도 말끔히 빨아 새 옷처럼 해 주셨다. 세배 돈도 주셨다. 요즘 설날이면 곱디고운 한 복으로 차려입은 어린이들을 보면서 문득 어려웠던 우리들의 소년 시절을 생각한다. 이제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의 선산도 사라졌다. 수 백 년 동안 조상님의 안식처였던 선산은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고향의 정취는 어디서도 느낄 수가 없다. 설날이면 멀리 떨어져 나가 산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온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먼 길이라도 설날은 고향을 찾는다. 도시로 돈 벌러 나간 우리의 귀여운 어린 딸들이 설날 어머니의 내복과 아버지에게 드릴 술병을 들고 귀향 버스에 오르는 모습은 아름답고 슬펐다. 그 언젠가 설날에 집에 못 간 노동자가 술이 취해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을 보았다. 설이란 무엇인가.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나는 이제 고향을 찾지 못한다. 선산도 사라지고 자식들은 모두 근처에 산다. 수백 년 물려받은 제사상도 사라지고 향로도 없다. 설날 자식들은 세배를 하러 찾아 올 것이고 시멘트 냄새 배어있는 아파트에서 나는 조상님께 차례를 지낼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는 자식과 손주들에게서 세배를 받고 세배 돈을 줄 것이다. 세배 돈을 받는 기쁨이 주는 기쁨으로 바뀌었지만 이 역시 오랜만에 느끼는 기쁨이 될 것이다. 이런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문득 실향민을 생각한다. 지금 이 땅에는 5백만의 실향민이 있다고 한다. 실향이 뭔지도 모르는 세대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북녘 땅이고 그들의 부모는 북녘에 묻혀 있다. 피난 와서 살아 온 오랜 세월. 이제 북녘 고향의 버드나무와 시냇물도 기억에서 지워 질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고향의 냄새가 그리울 것이다. 동구 밖 언덕을 넘어 집에 돌아올 때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청솔가지 타는 냄새. 외양간에서 우는 느려터진 암소의 울음소리. 그런 것들은 아직도 오래 된 사진처럼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실향의 길고 긴 세월. 이제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금강산에도 가고 개성에도 가고 평양에도 간다. 고향에 다녀 온 실향민도 많다. 이제 우리가 맞이 할 설날. 다시 돌아오는 설날에는 남과 북의 실향민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고향을 찾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비록 지금 오간데 없이 사라졌어도 고향의 냄새만이라도 맡을 수 있는 곳. 그 곳을 우리 모두가 마음 놓고 찾는 날이 왔으면 한다. 김 종길 시인은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설날 아침에’란 시에서 노래했다. 김 종길 시인의 따뜻한 시 한 편을 함께 읽어보자. 설 날 아침에 김 종 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대데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는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설날 우리의 진정한 설날은 지금 어디 쯤 오고 있을까. -이기명(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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