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은 발생을 해도 부모나 주위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안다고 하더라도 신고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발생건수는 알 수 없다. 다만, 범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성폭력은 매년 5,000건 정도 발생하는데 전체 성폭력 피해자 중 약 1/3 정도가 13세 미만의 어린이이고 약 50%가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 신고율은 약 6%에 불과한 상황. 유엔이나 미국 국무부 분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매우 높은 성범죄 발생률을 나타내는 ‘아동성폭력 위험국가’에 속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성폭력 사건 1만5326건 중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 아동인 경우는 980건(6.4%)에 달했다. 이는 하루 세 명꼴로 아동 성폭행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고소를 한 사건은 극히 일부분으로 실제 발생건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바라기 아동센터’ 최경숙 소장은 “2005~2006 센터 통계에 따르면 피해 아동의 25.9%만이 고소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다. 이는 나이 어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인지해 고소를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 막상 고소하려 하면 7년이라는 짧은 공소시효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어린이·청소년 성 범죄에 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높지만, 지난달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아동성폭력 근절, 재범 봉쇄가 관건”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후 살해당한 초등생 허 모 양의 1주기를 맞아 지난달 27일 불광동 한국여성개발원 국제회의장에서 ‘아동성폭력 근절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온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는 ‘외국의 아동성폭력 피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형사정책과 제도’라는 제하의 발표를 통해 “허 양 사건에서 보듯 아동성폭행은 가해자의 범죄가 특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이 있다”며 “이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강력한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표 교수는 수많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행범이 소극적인 수사, 합의하면 처벌 못하는 친고죄 규정, 불기소 혹은 기소유예 처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집중 감시 및 강제치료 조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이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 놀이터 등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며 “그 피해가 평생에 걸쳐 지속되고, 피해 아동의 인생을 망쳐놓는 아동성폭력은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엄하게 처벌하고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표 교수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자의 신상을 인터넷 등에 공개하는 우리나라의 현제도에 대해 “해당 성범죄자의 재범을 차단하는 ‘실질적 예방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며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동성폭력 재범률 높아, 가해자 특성별 대책마련 필요 이어 윤덕경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아동성폭력 피해방지를 위한 사법제도와 정책 및 법개정 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아동성폭력 사건은 일반성폭력사건에 비해 재범률이 높다”며 “아동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실질적인 재범 방지대책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법·제도 개정 등을 통해 아동성폭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친고제 폐지 △전자팔찌제도 △성도착증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 확대실시 등과 아울러 범죄자 성향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재범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성폭력 피해아동의 조기발견과 구조·보호가 신속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신고의무자들이 아동성폭력 발견시 적극적으로 신고·고소·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형의 상향이나 범죄자에 대한 엄벌의지가 필요하지만 실제로 성폭력 범죄자가 엄하게 처벌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며 “성폭력 범죄의 법정형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범죄를 행하면 반드시 검거되고 처벌된다는 관념이 일반화되도록 형사사법체계가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성폭력 관련법 공소시효 연장이 핵심과제 토론자로 나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아동 성폭력 상담 사례 분석을 토대로 현행 공소시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동성폭력은 피해자 자신의 인식도가 낮아 피해자가 늦게 고소를 해 공소시효를 넘기는 일이 잦아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총 성폭력 상담건수에서 공소시효가 지난 건은 2004년도에서 2006년 8월까지 성폭력 상담소에 들어온 건 중 8.95%로 전체 6609건 중 592건에 달한다. 이 592건 중 8세에서 13세에 해당하는 어린이들의 비중이 47.97%로 가장 많으며 7살 이하도 22.46%나 된다. 14세에서 19세에 해당하는 청소년들도 17.22%에 달해 성인이 10.64%인데 비하면 소아성폭력 피해자들의 적지 않은 수가 공소시효를 넘기는 예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공소법 연장, 타법과의 형평성 문제로 난항 이와 관련, 지난달 12일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피해자가 19세가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연장하도록 하는 ‘성폭력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력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4월에 입법절차를 밟아 이르면 가을쯤에 적용될 예정이다. 법이 실제로 발효되더라도 그 이전에 상황이 이미 발생한 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연장이 적용되지 않는 등 일부 미비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법안의 발의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법안을 발의한 신상진 의원실 관계자는 대부분 이 법안의 발의를 환영하고 있으나 다른 법안과의 형평성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소아성폭력 공소시효 연장, 혹은 폐지가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비슷한 법안의 발의가 있었으며 현재에도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비슷한 법안이 준비 중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법무부가 다른 법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며 반대해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선진국, 공소시효 아주 길거나 없애는 방향 한편, 해외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성폭력에 대해 공소시효가 없거나 있어도 최하 6년을 보장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알라바마·알라스카 주 등에는 강간에는 공소시효가 없으며 그 외 많은 주들이 7년에서 오하이오 주와 같은 경우 최장 20년의 공소시효를 두고 있다. 그러나 DNA등이 확보되면 공소시효가 크게 늘어나거나 아예 없어진다. 독일에서는 공소시효가 20년이다. 프랑스는 강간죄의 공소시효가 10년 이상이며 1998년 이후 미성년자에게 저질러진 중죄의 경우 성범죄를 비롯한 모든 범죄에 대해 성년이 되는 날을 기점으로 개정했다.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공소시효라는 것이 없으나 성범죄처벌법에는 예외적인 몇 몇 법들과 함께 공소시효가 존재한다. 하지만 판사의 판단에 따라 공소 기각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형사법이 많은 참고를 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여타 친고죄에 대해서는 6개월 안에 고소하도록 되어 있지만 특례법으로 강제추행·강간·준강제 추행 및 준강간에 대해서는 고소기간의 제한을 풀어 놓고 있다.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체계 절실 소아강간죄에 대한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법무부·청소년위원회·경찰청 등의 협의가 필요하다.
그 중 형사처벌 등 강제적인 처벌을 내리는 법무부의 동의가 있어야 법 개정이 가능하다. 실제 법 적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소아 성폭력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은 성폭력 이외에도 청소년 성 보호법과 청소년 특별법이 있어 이들마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규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법망을 피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입법 활동이 다양한 부처들이 함께 활동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청소년 관련 성폭력 문제들을 총괄해서 다루거나 허브 역할을 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청소년 성폭력을 다루는 부서는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법무부·교육부 등의 주요 정부 부처 이외에도 국가인권위원회·국가청소년위원회 등 다양한 부서에서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기관에서의 기준과 취급 방법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은 상황. 최경숙 해바라기 아동센터 소장은 한국의 아동성폭력 피해자의 지원체계와 제도적 문제점을 짚었다. 최 소장은 “아동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지원체계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아동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해 주는 각 기관의 지원체계를 합할 경우 300여개가 된다. 하지만 충분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은 이들 중 10분의 1정도하기 때문에 실제 충분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지원체계는 부족하다는 것. 그는 또 “피해자 지원체계에는 범죄를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내는 특수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범죄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의료적 평가와 이 평가과정과 결과가 수사기관에 인정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동성폭력 피해의 유형이 다양하고 피해 아동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른 만큼 전체 그림 속에 각 부처의 특성을 반영한 지원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아동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체계가 마련되야 한다”며, “아동성폭력피해자의 지원을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피해를 발생하게 한 원인을 제거하는 부분까지 포함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성폭력 피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외국의 법과 제도 한국에서는 13세 미만 어린이 대상 성폭력의 법정형량과 성인대상 성폭력의 법정형량이 같지만 스위스의 경우 2004년 국민투표를 거쳐 아동성폭행범에게 무조건 종신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방안이 입법화됐다. 스위스에서 수감된 성범죄자는 2명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완치가 가능해졌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될 때에 한해 치료를 전제로 석방될 수 있다. 미국은 재범의 우려가 높은 성범죄자에 대해 형기 만료 후 재범 우려가 해소됐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을 규정한 ‘성맹수법(Sexual Predator Laws)’을 45개 주에서 이미 채택했거나 채택 준비 중이다. 플로리다주의 경우, 2005년 4월 어린이 성폭행 전과자에게 살해된 9세 소녀의 이름을 딴 ‘제시카 런스포드 법안’에 따라 어린이 성폭행범의 최저 형량을 25년으로 높이고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팔찌를 채워 집중 감시토록 하는 등 미국 대부분의 주가 아동 성폭행범을 사회로부터 장기 격리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동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거나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단하는 특칙을 마련해 아동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이밖에 대부분 선진국이 실효성 있는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 재범 가능성을 낮추는 등 아동성폭력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