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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탑>에는 ‘염동일’과 ‘이주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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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호 ⁄ 2007.07.03 12:00:08

최근의 <하얀 거탑>은 초반의 강렬한 맛이 떨어진 감은 있으나, 배우들의 여전한 연기와 생생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앞세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하얀 거탑>을 다루는 언론의 기사들이 장준혁과 최도영에 대해서는 넘쳐날 정도로 많은 분석을 시도하는 것에 비해, 일부 TV비평 전문지를 제외하고는 주변부 캐릭터에 대해서는 관심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하얀 거탑>은 이례적으로 조연 배우들의 비중과 설정도 능란하게 살려놓은 드라마로서, 초반에는 조연 캐릭터들이 더욱 부각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캐릭터들 역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명인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음모와 배신을 나누는 그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주완, ‘나도 프라다를 입고 싶었다’ 귀족의 품위를 숭상하는 그는, 겉으로는 권모술수를 ‘천박한’ 잔재주 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호랑이 새끼’ 장준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권모술수를 부려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으며, 오히려 내심은 품위와 두뇌 회전 능력을 동시에 갖춘 완벽한 정치인이 되길 원한다. 실제로 그는 영리한 판단력과 음흉한 연기력을 겸비했으며, 그에 걸맞은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거두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포커페이스에 능하지 못하며, 승부처에 약해 허둥지둥한다는 약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주완은 명인대학병원 출신이 아님에도 선거를 거쳐 과장이 됐다는 점에서, 과거의 관록과 풍운을 짐작할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품위와 권모술수, 거기에 안락한 노후와 만만한 후계자, 심지어 사위까지 얻으려는 등 너무 많은 덤을 얻으려다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일부 시청자들이 초반에 장준혁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장준혁은 10년이나 이주완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았는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점. 물론 권력의 단맛이란 결코 쉽게 물려줄 수 없는 것이지만, 너무 집착하면서 한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다 보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이주완은 완벽한 악마를 동경하며 ‘프라다’를 입으려 했으나, 결국 입지 못하고 ‘입고 싶었다’는 입맛만 실컷 다신 캐릭터다. ■“정치, 이렇게만 하면 우용길만큼은 한다” 관록있는 교수들 사이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원장의 자리에 오른 우용길. 치고 빠지기의 명수이며, 외교의 달인이다. 장준혁이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세월에 걸맞은 관록과 특유의 욱 하는 기질만 어떻게 손댈 수 있다면 아마 우용길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본다. 그의 외교정책은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놀라운 유연성이다. 어제의 친구도 당장 오늘의 적이 되며, 오늘의 적이 당장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아랫사람을 쥐고 흔드는 능력 역시 최도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적중하는 장면 역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염동일이라고 했나? 자네 앞으로 자주 좀 보지?”라던가 “장준혁이 이 친구가 글쎄 브랜치로 자원을 가겠다는데 이걸 어떻게 하죠?” 등의 명대사는 권력자의 포커페이스와 무게를 엿보기 좋은 한 마디였다. 이주완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장준혁이 아무리 장인의 돈을 끌어다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삭막한 현실의 정치, 그 모범은 우용길이 보여준다. 이런 캐릭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남으며 권력을 누린다. 우리의 역사가 말해준다. ■이윤진, 그녀의 오지랖은 어디까지인가? 음모와 배신은커녕, 우직하기만 한 그녀. 풍족한 의사 집안의 외동딸로서 일찍부터 철들어 시민운동에 종사하고 있으나, 오히려 욕먹을 거리가 됐다. 그녀는 <하얀 거탑>의 동네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렇다고 이윤진 역을 맡은 송선미가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이윤진’이라는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책임은 이야기 구도 자체에 있다. 송선미는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실제로 일본판 <하얀 거탑>에서는 의사 부인회의 비중이 한국판보다 더욱 무겁게 등장하면서, 남편들 못지 않은 정치놀음을 즐기는 부인들의 허세를 강도높게 풍자한다. 이윤진의 역인 ‘사에코’는 이 부인회의 모든 것에 대해 은연중에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며, 진정한 비호감의 극치인 어머니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똑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윤진에게는 “철없는 부잣집 딸이 세상물정 모르고 아무데나 나선다”는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똑같은 암투가인 아버지의 정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그 이유로 작용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장 엄한 잣대를 요구해야 할 대상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장준혁이나 병원 측에 대해서는 엄한 도덕과 책임의 잣대를 요구하며 오지랖을 과시하지만, 아버지 이주완이 아직까지도 ‘진정한 의사’인 줄 착각하고 있다. 그녀의 넓고 엄한 오지랖은 아버지에게만큼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비난의 대상이 된 숨은 이유 중 하나다. ■ 염동일, “소나무야. 정말 언제나 푸르를까?” 권순일 환자를 맡으면서 가장 열심히 동분서주했으나, 심적인 괴로움은 가장 크게 겪고 있다. 그는 생각보다 큰 비중을 갖고 있는데, 권력과 암투가 판치는 현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가 마주칠 수 있는 좌절을 그대로 겪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서슬퍼런 과장에게 환자를 위한 길을 이야기했지만, “명인대학병원 외과에 계속 남고 싶지 않느냐”는 명대사의 희생양이 됐을 뿐이며, 위기에 몰린 권력의 폭압에 굴복해 위증까지 한다. 물론, 감히 쳐다도 못볼 부원장으로부터 “자주 보자”는 이야기도 들었으며, 과장 부인에게 여자도 소개받는 등, 호사를 누리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도 ‘엄석대’에게 투항하는 순간, 생각도 못했던 권력의 단맛을 맛본다. 하지만 새내기는 새내기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양심과 고뇌가 있다. 독하게 마음먹으면서 과장이 소개해 준 여자와 진도도 나가지만, 한편으로는 환자 가족의 어려움에 괴로워하는 등, 그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 장준혁같은 훌륭한 외과의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그가 의지할 대상은 최도영이다. 테마곡 <소나무>가 최도영과 염동일이 등장하는 장면에 자주 흐르는 것이 꽤 의미심장하다. 소나무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에게 낙엽을 떨어뜨릴 것을 요구하며, 때에 따라 나뭇잎의 색깔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잎”, 과연 그는 언제나 푸르를 수 있을까? 양심과 일자리, 그를 괴롭히는 이 두 갈래의 길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 이상은 겪었던 고뇌임이 분명하다. 염동일은 우리 모두의 새내기 시절을 반영한 캐릭터인 셈이다. ■ ‘다이묘 행렬’,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일본판 <하얀 거탑>에서는 늘 첫 장면에 아즈마(이주완)와 자이젠(장준혁)의 총회진을 등장시킨다. 일본에서는 대학병원의 교수(과장)가 휘하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를 거느리고 나서는 총회진을 일명 ‘다이묘 행렬’이라고도 한다. ‘다이묘(大名)’는 일본 전국시대 시절에 1만 석 이상의 영지를 거느린 대영주를 일컫는 말이다. 봉건영주라는 이야기다. 우리 대학병원의 현실은 그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하얀 거탑> 속의 대학병원은 어쨌든 현실의 권력과 이전투구를 그리는 현장으로서는 제대로 그려졌다. 현실의 권력이라는 ‘봉건영주’ 앞에서 우리는 각각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장준혁일 것이며, 누군가는 최도영일 것이다. 염동일도 있을 것이며, 이윤진도 있을 것이다. 이주완처럼 떨어져 나간 정치인도 있으며, 우용길같은 권력의 달인도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두루 섞여 산다. 그곳이 바로 현실이다. 어쨌든, 한 편의 드라마가 생산성 있는 논쟁을 유발하고 세상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비춤으로써, 우리에게 상식과 선악의 정체에 대한 자각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다. 이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어쩌면 시청자와 네티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박형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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