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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라면의 아버지」 안도 모모후쿠의 유업 불퇴전의 정신 우리는 외면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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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호 ⁄ 2007.07.03 12:00:43

우리들 귀에 익은 가곡 가운데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으로 『사랑』이란 노래가 있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올 곳이 없느니다/ 반타고 꺼질진대 애져(아예) 타지 말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으니다』. 소프라노 김은경의 노래로 듣던 이 『사랑』의 애절한 감회가 오늘은 백패불굴(百敗不屈)의 의지로 가슴을 뭉클케 한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遺訓)으로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諸行無常 不放逸精進)는 말씀이 있다. 팔십 평생을 산 수행자로서 최후로 남기고 싶은 말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 하필이면 이 말을 남겼을까. 우리는 그 뜻을 도(道)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세속생활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온갖 모순과 부조리와 갈등으로 뒤얽힌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말짱한 정신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일상의 타성에 젖어 자칫 나태(懶怠)에 빠지기 쉽다. 그 타성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정진할 수밖에 없다. 한결같이 꾸준히 힘써 나가는 것을 정진이라고 한다.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면 애당초 안한 것만 못하다. 씨를 뿌렸으면 열매를 거둘 때까지 사계절의 질서를 따라 꾸준히 가꾸어야 한다. 조금 해보다가 눈앞에 곧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만두기를 버릇하면 아무 일도 끝을 보지 못한다. 『사랑』노래의 가사처럼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데가 없다. 타려면 재마저 말끔히 타버려야 한다. 올 초 타계한 일본의 「라면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전 닛신(日淸)식품 창업자겸 회장의 추모행사가 오사카의 교세라돔 야구장에서 열렸는데 행사장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會根康弘)·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직 총리를 비롯해 6500여명이 고인의 업적을 추모했다. 고인은 1958년 세계 최초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즉석 라면을 개발했는데 첫 상품의 이름을 「치킨라면」이라고 했다. 71년에는 조리기구 없이 끓는 물만 부어먹는 컵라면을 내어 놓았다. 컵라면은 라면이라는 식품을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사회에 널리 알린 그의 대표 상품으로 평가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사업에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되기도 한 그는 어느 날 오사카 시민들이 재래식 라면을 먹기 위해 포장마차 앞에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즉석라면 개발에 나섰다. 수년 동안 실패만 거듭하던 그는 아내가 만든 튀김요리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순간 유열(油熱)건조법」을 고안해 냈다. 오래 보존할 수 있고 끓는 물만 있으면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상품화에 성공한 것이다. 95세였던 지난해까지 경영일선에서 일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고인의 삶은 실패와 도전과 열정으로 이어진 드라마였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식품문화를 개척했고 전후 일본의 부흥을 주도한 창의적 기업인』이라고 회고했다. 이 일본의 「라면의 아버지」는 96세의 생애를 탈대로 다 태워서 전후 일본경제 부흥에 바친 것이다. 불퇴전(不退轉)이면 성불(成佛)이란 말이 있듯이 시련에 굴복치 않으면서 끝까지 천착(穿鑿)의 드라이버를 놓지 않음으로써 전후 일본 경제 부흥에 이바지 하며 세계적인 장인(匠人)의 면류관을 얻은 것이다. 엘리히 박사는 606회의 실험 끝에 매독(梅毒)치료약인 살바르산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약 이름을 「606호」로 명명했다. 우리는 남의 단점은 비평하며 남의 장점은 남의 일처럼 간과(看過)하는 습성이 없는지. 어쨌거나 우리의 모든 정력을 탈대로 다 태워서 국익에 공헌하고 이름을 만방(萬邦)에 남기도록 애를 써야 한다. -박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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