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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 한 나무, 달맞이 길.

동양의 몽마르트, 해운대 달맞이 길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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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호 ⁄ 2007.07.03 11:50:46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반달’이란 동요의 도입부이다. 윤극영이 1923년에 작사·작곡한 이 동요는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동요라 할 만하다. 음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무려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들어도 새벽의 맑은 정감이 물씬 풍겨난다. 윤극영이 누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었다는 이 동요에는 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나무,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이 계수나무를 해운대 달맞이 길에 가면 볼 수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끝자락인 미포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고개는 15번이나 굽어야 하므로 일명 15곡도라고도 부른다. 이 작은 고개는 예로부터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고 하였는데, 달맞이 길을 굽이굽이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해안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또한 달맞이 길에는 ‘동양의 몽마르트’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랑과 훌륭한 디자인의 카페,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특히 국내 유일의 추리소설 전문 도서관으로써 ‘추리문학관’이 있다. ‘여명의 눈동자’, ‘제5열’ 등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을 선보인 김성종 씨가 사재를 털어 1992년에 설립한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이 도서관은 일종의 북 카페로서 구경은 무료이며 소정의 찻값을 지불하면 앉아서 책을 마음껏 골라 볼 수 있다. 달맞이 길 정상에 가면 해월정이란 달맞이 정자가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해월정은 특히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라고 한다. 달 밝은 보름날에 신혼부부가 해월정에 올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 평생 동안 금실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예전 어느 봄날, 달맞이 고개 아래 청사포에 살던 어떤 처녀가 와우산으로 자주 나물을 캐러왔다. 어느 날 처녀는 해가 기울어질 때까지 나물을 캐다가 송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송아지는 처녀 주위를 빙빙 돌더니 처녀가 집으로 가려고 하자 슬렁슬렁 따라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처녀는 청사포의 집으로 송아지를 데려가서 하룻밤을 재운 후, 그 다음날 송아지를 데리고 다시 나물을 캐러갔다.

그런데 해운대쪽에 살고 있는 어떤 양반집 도련님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제 송아지를 데리고 나가는 돌쇠를 따라 와우산으로 갔다가, 봄의 향기에 취해 반상의 구분 없이 너나들이로 놀다가 그만 송아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돌쇠는 주인마님에게 된통 야단을 맞았고, 도련님은 자신 때문에 돌쇠가 혼쭐났다고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돌쇠와 함께 와우산에 올라간 도련님은 송아지를 잃어버린 곳을 맴돌다가 달덩이처럼 고운 처녀가 나물을 캐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도련님은 선녀처럼 고운 처녀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처녀 또한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준수한 용모를 지닌 도련님이 아늑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송아지를 사이에 두고 잠시 말을 잊었는데, 곧 정신을 차린 도련님은 정월 대보름달이 뜰 때 지금의 해월정이 있는 고개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후 용맹정진하여 과거공부를 열심히 한 도련님은 급제를 하게 되었고, 정월 보름날이 되자 그 처녀와 약속한 와우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보름달은 와우산 언덕에 서리서리 빛을 뿌리고 있었는데, 옥구슬처럼 영롱한 달 안에는 그리운 처녀의 얼굴이 아로새겨 있었다. 도련님은 그 처녀가 어서 나타나기를 달을 보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애절하게 기도하던 도련님의 정성이 달님에 가 닿았던가? 마침내 선홍색 미소를 띤 처녀의 얼굴이 도련님의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처녀가 그리운 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비는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났던 것이다. 처녀를 발견한 도련님은 한달음에 달려갔고, 처녀는 도련님의 품에 안겨 사랑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달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그 후 청사포와 해운대에 살던 처녀총각들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와우산 달맞이 고개로 올라와 자신의 짝을 점지해달라는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해월정 앞에는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으며, 2000년 1월에 설치된 새천년 해시계가 일종의 출입문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문을 통해 새로운 세기로 진입하자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해월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유료망원경이 있는데, 이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각도를 잘 맞춰 보름달을 보면 달의 분화구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해월정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 장소였던 하얀 카페가 등장하는데, 그 카페 맞은편에는 나무로 깔끔하게 단장한 ‘연인의 광장’이 있다. 이 연인의 광장 주변은 평일이면 아주 한산해서 갓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 연인들에게 환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할 것이다. 달맞이 길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흰색 건물 4층엔 고즈넉한 분위기의 재즈 바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엔 재즈계의 살아있는 전설 ‘루이 암스트롱’이 있으며, 푸른 동해와 마티니의 향, 레인보우 칵테일의 색감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 달맞이 길에는 부산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이 있는데, 처음 가본 사람은 그 규모의 웅대함에 다소 놀랄 것이다. 스위스 풍의 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창가에 앉으면 청사포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여 전망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부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카페는 달맞이 길에 몽땅 몰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년 여름이면 달맞이 길에 흩어져 있는 카페와 화랑, 문화단체들이 연합하여 달맞이 축제를 개최하는데, 작은 음악회·전람회·무용 발표회·문학제 등 볼 거리가 풍성한 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달맞이 길에 속속 들어서있는 아파트와 빌라의 무리들이다. 왜 이 땅의 사람들은 국토의 문화적·자연적 가치를 쉬이 찾지 못하는지. 달맞이 길만 해도 몇 년 전에야 겨우 건축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을 뿐, 무차별적으로 들어서는 자본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였다. 뒤늦게 조치를 취한들 무슨 소용이랴. 운치와 예스런 멋은 이미 사라진 뒤이니. 달맞이 길이 잘만 보존되었다면 파리의 몽마르트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언덕이 되었을 것을…. -김대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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