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타인의 철학자, 레비나스

[인문학책 리뷰]강영안의 <타인의 얼굴>

  •  

cnbnews 제9호 ⁄ 2007.07.03 11:51:07

<타인의 얼굴>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강영안 교수가 레비나스의 철학세계를 비교적 쉽게 그러나, 전문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주체와 타자를 둘러싼 레비나스의 철학적 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레비나스의 철학에도 다른 철학과 사유처럼 학문적 엄격함과 권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레비나스 철학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근저에 흐르는 노철학자의 인간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레비나스는 러시아 문학과 히브리어 성경, 프랑스 철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베르그손, 그리고 20세기 초반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였던 독일 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를 읽으면서 자신의 철학 사상을 정립했다. 레비나스 초기에는 현상학자로 활동했으나, 이후 타자와 형성된 관계 속에서 무한을 향한 초월적 욕망을 밝혀냄으로써 현대철학의 가장 대담한 입장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1995년 12월 25일에 사망했다. 사랑과 대속의 철학자답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던 눈 내리던 날에 이 땅을 떠났다. 그 당시 <타인의 얼굴>의 저자 강영안 교수는 레비나스와 인터뷰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터뷰를 놓쳤다고 회고하고 있다. 하이데거 등과 함께 현대를 대표하는 한 철학자가 20세기가 기우는 시점에서 세상을 등진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한 전통적 논점은 주체와 타자, 전체와 존재, 향유, 그리스도와 대속 등 몇 가지의 키워드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철학 전공자도 아닌 입장에서 레비나스 철학세계를 다 분석하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레비나스 철학세계에 대하여 인상적인 몇 가지만 간단히 적는다. 전체적인 큰 그림과 세세한 짜임에 대해서는 관심 있는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첫째, 레비나스 철학의 제1 주제는 주체와 타자이다. 특히 기존의 주체를 중심으로 한 서양철학의 전통에 타자의 존재에 주목하였고, ‘타자의 얼굴의 현현’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병자·과부·핍박받는 자·고아들에게 우리의 몫을 내어놓고 사랑을 베풀 것을 레비나스는 말한다. 이들이 레비나스의 타자이며, 그들의 우리의 삶에의 등장이 바로 ‘타자의 얼굴의 현현’이다. 둘째, 레비나스는 ‘존재’로 대표되는 서양철학의 전체성의 전통에 반대를 하였다. 존재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전체성보다는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것들을 존중하였다. 자신이 사는 구체적 삶들을 ‘향유’하기를 말하였다. 그래서 레비나스에게는 사랑은 물론 성과 생활도 철학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묵직한 것’들만을 소재로 잡는 전통에서 이탈하여 ‘여성적인 것’, ‘소소한 것’, ‘하찮은 것’도 레비나스에게는 철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 것이다. 셋째, 레비나스는 삶의 소재를 철학의 주제로 선택하였다. 각각 독립적인 주제이기도 한 여성·집·출산성·에로스·노동·향유 등은 레비나스 철학의 중요한 범주로 서로 망처럼 얽혀 있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물론 정교한 철학의 언어를 빌렸지만 결코 우리의 삶과 생활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철학을 하였다. 삶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넷째, 레비나스의 철학에서 잊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그의 철학은 대단히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이 서양철학의 윤리철학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독교 사상과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통과 대속이라는 범주를 다룬다. 이 점은 하이데거와 다분히 차별적인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원형으로 하여 인간의 구원에 대해 전망을 하고 있다. 레비나스의 이름 엠마누엘은 우리가 익히 아는 철학의 시조 칸트와 우연히 이름이 같다. 엠마누엘(Emmanuyl)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흔한 이름이며,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정말 사랑의 철학자다운 이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어 만인에게 평화와 행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라는 것이 레비나스 철학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늦게 알게 된 레비나스의 부음을 애도한다. -심정곤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