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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위험하고 불온한 사회,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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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호 ⁄ 2007.07.03 11:51:44

며칠 전 인천의 오피스텔 분양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파도같이 몰려왔다고 했다. 요즘은 뇌물을 받았다하면 아파트 값과 경쟁을 하는지 몇 억은 우습다. 몇 억, 몇 백억 할 때마다 교통비를 아껴야 하고 반찬값을 아껴야 하는 우리네 서민들로서는 삶의 의욕이 꺾이는 소리요 기가 푹~ 죽는 소리이다. 알고 보니 돈은 지천으로 풀렸는데, 내게는 하나 얼씬 거리지 않으며, 그런 일들이 별천지(別天地)에서나 벌어지는 것 같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으니 나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이 사회는 아주 「위험하고 불온한 사회」인 것 같다. 선거 때마다 돈 받는 것이 관행이고 지금은 옛날의 1/10만 받았다 하자. 나도 진급하기 위해서 돈을 바쳤으니 그만큼은 거두는 것도 인정 한다고 하자. 누구나 그 자리에 있으면 어쩔 수 없고 당신도 기회가 없으니까 못하는 것이지 하면서 그래도 나는 깨끗하다고 하는 것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힘없는 사람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없는 사람을 더 어렵게 하고 드물게 사회와 나라를 저주하면서 사람을 죽어가게 만든다면 악(惡)함이고, 이러한 악을 조장(助長)하는 발상(發想)이나 system(구조)은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나는 강물의 지류(支流)가 본류(本流)가 될 수 없고, 지류를 본류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사사로움이 나라를 농단하고 국민의 기풍(氣風)을 좀 먹는다면 그것은 용서 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본다. 나는 세월이 가면 정의는 더욱 높이 세워지고 사회는 명랑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살기는 더욱 힘들고 사람들은 의심하고 모든 것이 갈갈이 찢어지고 있다. 창조적 파괴라면 다행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막가파식 충동뿐이요 막가파식 대응뿐이다. 상·하가 다 그렇다. 대통령이 그렇고 말단 관리가 그렇다. 나라의 어른이라는 사람들로부터 코흘리개 아이도 그렇다. 재벌에서 거지까지 다 맞보기고 막가파식이다. 이러니 다 날강도요 사기꾼이요 협잡꾼뿐이다. 우리 사회에 무슨 종교가 있고 무슨 도덕이 있고 무슨 어른이 있는가? 다 이용하고 이용해 먹고 마지막에는 언제 봤느냐하는 식이다. 이런 것을 어찌 사회라 할 수 있고 공동체(共同體)라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거짓들의 경연장이요 아수라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각박하고 살벌해 졌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싸우고,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협동(協同)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하고, 서로를 승냥이 대하듯 한다. 지하철 남자 화장실 소변기 상단 글말에 「자기 있는 것 다 주고도 그래도 혹시 모자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쓰여 있다. 적어도 내 것을 남에게 주지 못할망정 빼앗지 말아야 한다. 동냥은 주지 못 할 망정 쪽박은 깨뜨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말이 통치고 합법이고 제도이지 그 이름으로 매일 살인을 하고 강도짓을 하고 토색질을 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폭력이고 가진 자의 폭력일 뿐이다. 직접 하지 않아도 직권이나 신분을 이용하거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돈을 모으고 황제의 수레 같은 차를 타고 아방궁 같은 집에서 사는 것도 죄악인 것이다. 정당하게 벌어서 쓰는 것은 적극 장려되어야 하지만, 진짜 인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검소하게 산다고 듣고 있다. 하물며, 검은 거래나 남의 등을 쳐서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까지 돈을 모으고 호의호식하고 사치와 향락을 극(克)하는 것은 범죄요 타도 대상이다. 근래에 한창 불을 뿜고 있고 힘을 얻는 듯한 노조활동도 그들만의 Leage(리그)고 집단적 이기주의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것도 경계해야 한다. 진정한 가치 찾기가 아닌 패거리 문화는 정부든 재야든 사용자든 노동자든 짐승이 제 새끼만 귀여워하는 것에 불과하고, 저들끼리 다 해먹고 끼리끼리 다 해 쳐먹는 것은 남이야 죽든 말든 저들끼리는 「이대로를」외치겠다는 악랄한 형태이다. 20여년 전쯤 cbs(기독교 방송)에서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케치프레이즈 아래 성실함을 강조한 적이 있다. 오늘날 다시 한 번 했으면 하고, 오늘날에 더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규범이 무너지고 룰(rule)이 실종된 상태에서 불의와 정의 문제는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는 인민재판식으로 해서도 안 되고, 그저 막연히 각 행동 주체들의 양식이나 처분에서만 맡겨서도 안 된다고 본다. 이것은 인간화냐 비인간화냐, 인간이 목적이냐 수단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부터 적극적으로 몸으로서 실천해야 하고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수긍하며 누구나 호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순전히 나의 노력이 아닌 직접이든 간접이든 착취에 의한 것이라면 내가 지금 누리는 귀족생활이 나의 잘남 나의 우수함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교묘하게 이전(移轉)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노략질인 것이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당하게 부를 추구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은 권장되어야 하고, 좋은 것 중의 좋은 것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로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물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데 혈안이 돼 있다. 얼굴도 모르고 정말 상관없는 증손 현손을 위해 재산을 남긴다. 참으로 우습고 부질 없는 짓이다. 기껏 그렇게 해서 100년을 산다고 하자. 그래, 그 100년 동안을 아귀처럼 흡혈귀처럼 꼭 살아야 하나. 높은 산에 올라갈수록 하느님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에 오르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경이를 느낀다면 더럽게 살지는 않을 것이고 돈이라면 뭐든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 알다시피 돈이 좋고 물질은 편리하다. 그러나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나만 싹쓸이 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명품(名品)만을 찾고 남의 것을 언제나 호시탐탐 노리는 작태는 이제는 버려야 한다. 5000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 가진 자는 더 가질려 하고, 없는 자는 하나라도 챙기려고 웃음을 판다. 공정한 게임에서 졌다면 할 말이 없다. 단지 운이 나빠서 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다면, 나처럼 낙관적이고 인간의 선함을 믿는 사람도 낙담하게 되고 서글퍼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가 적(敵)이고 원수 대하듯 한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 대하기를 송충이 대하듯 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증오한다. 서로 경원하고 적의가 충만하여 언제나 맞짱을 뜨려고 한다. 강을 사이로 남북이 갈리고 도(道)로 갈리고 회(會)로 갈리는 등 이게 무슨 나라이고 사회인가? 정말 더러워서 말 안하고 워낙 살벌하니까 몸을 사리는 것이지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고 모색단계이며 방향성만 타진할 뿐이다. 어찌해서 우리는 하루하루 다치지 않고 사는 것 을 천행(天幸)으로 알고 어렸을 적 아이들 땅따먹기 하듯 작아지고 쩨쩨해 졌는가? 왜 小成에 만족 하고 위대하고 웅장한 것을 꿈꾸지 못하는가? 의기(意氣)는 어디로 가고 치기(稚氣)만 남고 대의(大義)는 스러지고 소(小) 만 보이는가? 과연 남을 중상모략 하고 내리깎고 짓밟아야만 내가 사는가? 왜 우리는 소모적이고 내살 깎아먹는 그런 소아적이고 유치한 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정녕 사적(私的)인 것이 공적(公的)인 것을 항상 이기고 소인이 선각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봐야 하는가? 나는 오늘 너무나 한쪽으로만 편향된 사회,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로 만들 수 있는 이 사회를 보고 비통한 마음으로 너무나 염려스러워서 이글을 쓰는 것이다. 아(我)와 비아(非我)와 투쟁이 개인에도 해당되고 국가에도 해당되고 역사에도 해당된다면, 이제 돈과 관련되고 저들만 살겠다는 저 더럽고 추잡한 쟁탈전에 모두가 살고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정의로운 싸움에 나서야 한다. 정의로운 전쟁은 종교적으로는 악마나 마귀의 편이 아니라 성스럽고, 특정 사람이나 특정이념에 봉사하지 않고 인간에 봉사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잘난 무슨 주의, 무슨 체제, 무슨 사상을 능가 한다. 그것은 가져야 할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고 실재적 이다. 그것은 「천만인이 가로 막아도 옳다면 가겠다.」는 맹자(孟子)의 기백으로 나타날 수 있고 「오랑캐 마다 중국을 정벌했는데 우리 조선만 못한 것이 한이다」라고 죽기 전에 말한 임백호(林白湖)의 선비정신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지금처럼 아파트 값 올라가는 것에 좋아하고 서민 아파트나 장애인 시설을 짓는다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권다툼에 마빡이 깨지고 특혜를 얻기 위해 사생결단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나 있고 우리나라에서나 통할 것이다. 국민 모두들 돈에 독이 올라 있고 약이 올라 있고 악에 복받쳐 있다. 독이 올라 있는 것은 아파트 청약에 밤새워 줄 서있는데서 알 수 있고, 약이 오른 것은 각종 투서나 무고가 난무한데서 알 수 있고, 악에 치민 것은 툭하면 결사반대를 외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나라가 악한 싸움으로 국민을 끌어들여 스트레스를 가하고 홧병 등으로 일찍 죽게 하고 있다. 국가 권력을 업은 자는 발호하고 국가는 그 무를 포기한지가 오래 되었다. 이 와중에서 비록 군자라도 대인이라도 꼼수나 속임수를 쓰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은 힘들 것이고 바라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치사하고 원색적이고 동물적이고 단세포적인 싸움은 이제 그만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싸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쟁을 하자. 싸움을 해도 자비를 위한 싸움을 하고, 남을 돕는데 마빡도 깨져보는 싸움을 하고, 이웃사랑을 누가 더 잘 하는가 시합하는 그런 싸움을 하자. 어느 친구 목사님의 표현처럼 「본향은 하늘이고 인생길은 나그네길인데 나그네가 쉴 곳만 있으면 되지 무슨 장식을 하고 폼을 잡느냐?」는 그것은 못한다 하더라도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하자는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定)은 원래의 바름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모든 것이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쪽으로 해석을 한다면 아침 이슬 같고 부조(浮早)같은 돈이나 물질보다는 영원한 기쁨을 주고 가슴 뿌듯하게 하는 선한 싸움, 정의를 위한 투쟁에 악착스러움을 견지 하자는 것이다. 이 전쟁은 앞에서나 뒤에서나 승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쟁은 달아도 삼키고 써도 삼키는 것을 말한다. 정직이 최대의 방책임을 믿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남을 믿는 것이다. 고만 고만해서 우물 안에서 싸우고, 주머니의 돈이나 따지고 저희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륙(大陸)을 도모하고 대양(大洋)으로 나가는 것이다. 좁은 생각 좁은 마음을 버리고 대인(大人)의 풍모 군자(君子)의 품격을 지니자는 것이다. 너무 돈! 돈! 해서 더러워 지지 말고 추해 지지 말고, 돈 말고도 충성하고 목숨을 바칠 것도 많다는 것을 알자는 것이다. 돈에만 너무 일방적으로 경사된 나라. 돈 버는 데만 기를 쓰고 환장한 사회, 권력 앞에서는 개꼬리 내리듯 하고, 권력 앞에서는 웃음도 헤퍼야 하는 나라.하나의 희화를 보는 듯 하고 하나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이런 풍토에서 정의를 위한 싸움을 주장한다면 NON-Sense(넌-센스)인가? 무모함인가? -千里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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