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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두 번 죽이지 마라”

경찰, 여수화재참사 뚜렷한 증거 없이 수사종결
유가족·시민사회단체, 진상규명과 국가 배상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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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호 ⁄ 2007.07.03 11:37:24

모름지기 그 사회의 건강성은 사회 약자에 대한 태도를 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이 병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열 사람의 생명이 쓰러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가는 우리 사회를 보고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 진광수 목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 지난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참사가 벌어진 지 40여일이 지났다. 여수화재참사는 정부 당국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단속과 추방정책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진상규명 전에 뚜렷한 증거도 없이 고인 가운데 한 명을 방화범으로 추정하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유가족에 대한 보상은 물론 납득할 만한 진상 규명도 되지 않은 채 언론과 여론의 무관심 속에 사건이 묻히고 있는 양상이다. 불타버린 ‘코리안 드림’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10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사연을 들어보자. 이 사연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가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공대위 측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故 이태복 씨(43세) 평생 농사만 짓다 1996년 빚을 내서 브로커에게 8백만원을 주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공장이 3~4개월 만에 문을 닫아 ‘귀국조치’ 명령을 받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0년 동안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건설현장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故 김성남 씨(54세) 건축과 서비스업에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으나 일이 없어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했다. 엄마 없는 청각장애인인 큰 딸과 둘째 딸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려고 노예처럼 일했지만 체불임금 해결을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 숨진 하루 뒤 유가족이 확인한 통장에 체불임금 720만원이 입금됐다. 故 천슈엔훼이 씨(35세) 비행기표를 못 구해 하루 더 머물다 목숨을 잃었다. 故 김광석 씨(39세) 보호소에서 폭행을 당해 치료를 요구했지만 묵살당했고 오히려 독방에 갇혀 온갖 인권 유린을 당했다. 여수 외국인보호소는 고 김광석 씨에 대한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故 에르킨 씨(47세) 체불임금 420만원 때문에 꼬박 1년째 갇혀 있었다. 봄에 결혼할 딸에게 혼수품을 사줄 것이라며 귀국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다. 故 장지궈 씨(50세)와 손관충 씨(40세) 강원도 채소밭에서 배추와 무를 캐 시장에 배달하며 손발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일했다. 한 형제처럼 서로를 위로하던 이들은 보호소에 갇혀서도 한 방에서 지냈고 변을 당하기 직전 고향에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故 리사오춘 씨(46세) 여권이 없어 보호소에 남은 지 6일 만에 변을 당했다. 故 진선희 씨(38세) 2001년 브로커에게 1200만원을 주고 입국했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다 못해 1년 반만에 작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 ■ 경찰, 증거도 없이 ‘김 씨’가 방화범 한편 경찰은 뚜렷한 증거도 찾지 못한 채 이 사건을 방화범에 의한 방화사건으로 서둘러 종결지어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여수경찰서는 지난 3월 6일 사망한 외국인이주노동자 김 아무개씨를 방화범으로 최종 결론짓고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등 관련자 9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김장완 여수경찰서장은 최종 수사결과 브리핑을 통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 보호외국인 진술, 폐쇄회로 TV 판독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사망한 김 씨(39·중국)가 라이터를 이용, 점화를 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으나 이번 사건의 방화범으로 인정하게 됐다”는 애매한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미 사망한 중국인 김 모씨(39)가 불길에 가연성 바닥재를 올려놓아 불을 확산시켰으며, 이 불길이 천장을 통해 인근 보호실로 번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은 숨진 김 씨가 불을 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다만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와 생존 보호 외국인들의 진술, CCTV 판독 결과에만 의존, 김 씨를 이 사건의 방화범으로 추정한 것이다. ■ 값싼 기계 취급말라,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다 허망한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이 같은 경찰의 애매한 수사결과 발표에 또 한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차나카(38, 스리랑카)씨는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이주노동자를 도둑이 아닌데 도둑처럼 가둬놓고 있기 때문”이라며 “어떤 사람이든 그렇게 오래 갇혀 있으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들은 한국 사람이 하지 않는 위험한 일과 어려운 일을 하고 있지만, 정부는 우리들이 이 나라에 필요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고 말했다. 여수화재참사 공대위는 여수 외국인보호소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보호소와 보호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운영실태를 조사와 함께 재발방지와 실질적 개선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또한 공대위는 장기간 불법감금을 관행적으로 자행하는 공권력에 인권유린을 조속히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출입국관리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보호기간을 20일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퇴거가 힘들 경우 집행이 가능할 때까지 무기한 감금이 자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로 악명 높았던 산업연수생제도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오기 위해 많은 빚을 내어 브로커 비용으로 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일하다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양산해왔다. 이주노동자 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제도 운영의 산물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를 씌우고 인권을 무시한 채 무자비한 단속과 보호소 수용을 자행해왔다고 비판한다.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을 값싼 기계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가장 낮은 곳에서 절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정책 중단과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면서 “이것이 한국에서 다치고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라고 강조했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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