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위기 19장 19절> 요즘 패션계에서는 대담함, 기존 질서의 파괴적 행위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줄무늬=스트라이프’가 오랜 세월동안 악마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유가 무엇일까. 얼룩말의 줄무늬가 가지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함이 어찌하여 서양세계에선 배척된 이유는 무엇일까. 줄무늬가 갖는 의미성에는 과감함이나 대담함이 내재되어 있다. 두 가지 색을 조합하여 가로 혹은 세로로 아로새긴 줄무늬는 단색의 색감에서 느껴지는 강렬함보다 더 강하게 사람들에게 어필된다. 사실, 줄무늬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현대에서도 결코 용이하지가 않다. 사람들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때에 문헌이나 문학작품, 성화(聖畵)들을 보면,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은 대개가 사회적으로 버림받거나 혹은 배척받은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서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의 저자인 미셀 파스투로는 유대인이나 이단으로 찍힌 사람, 어릿광대와 곡예사, 나병환자나 망나니와 창녀, 기사도 소설에 나오는 배신자들, 구약성서 시편에 나오는 저주받은 미치광이들 그리고 유다와 같은 인물들이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리거나 표현했다고 한다. 미셀 파스투로는 중세 때에 줄무늬 옷의 악마적 속성이 노골화 된 것이 과연 구약의 레위기에 나오는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는 구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줄무늬의 악마적 속성이 단지 성경상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이 유럽세계를 주도한 중세에서 성경의 구절은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본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입고 있는 줄무늬 모양의 죄수복을 보고서 광대들의 옷을 연상하였던 기억이 난다. 중세 때에 줄무늬는 무질서와 범죄를 의미했던 악마적 속성이 그대로 현대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줄무늬의 상징성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 즉 무질서와 범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적 가치가 붕괴되어 가고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어 가는 근대에선 질서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전환되었던 같다. 유럽 국가들의 국기를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근대혁명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국기가 삼색의 줄무늬 모양의 국기이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삼색의 줄무늬를 착용하고 있다. 물론 가로무늬·세로무늬로 나누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중세 때에 줄무늬가 갖는 악마적 속성과 범죄·불온함·불결함·불경함 등등 불(不)혹은 부(否)의 이미지로 상징화된 것이 비단 성경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시각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셀 파스투로는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줄무늬가 갖는 역동성을 증명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아 이거다 하는 그런 감동을 주지 못하지만, 한번쯤은 읽어 볼만한 책인 것 같다. 중세 때에 악마적 속성을 상징하는 줄무늬가 유럽에 등장한 것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슬람교도들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4년간 포로생활을 하다가 어렵사리 프랑스로 귀환한 루이9세와 함께 파리에 입성한 가르멜 수도사들이 입고 있는 옷이었다. 가르멜회는 잘 알려진 대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나 도미니크 수도회와 더불어 3대 탁발 수도회로 불리는 수도회다. 루이9세와 함께 가르멜수도회의 수사들이 파리에 입성하기 이전부터 유럽에 스며들었지만, 루이9세와 함께 파리에 입성할 때 가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줄무늬 망토를 입고 있었다. 가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파리에 들어서자마자 파리 시민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가르멜 수사들은 자신들이 입은 줄무늬 망토로 인해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로부터 25년 동안 ‘줄무늬 논쟁’이 교황청 내에서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교황이 10번이나 바뀌었다나. 우여곡절 끝에 1287년 가르멜 수도회는 줄무늬 망토를 포기하기로 하였지만, 여전히 가르멜 수도회는 줄무늬 망토를 버리지 않았다. 로마교황청에서 나서서 줄무늬 망토 착용을 금한 것은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이슬람교에 대한 견제심리의 발로였다. 줄무늬 망토가 동양의 망토, 즉 이슬람 교도들의 망토라고 로마가톨릭교 내의 교조주의자들의 반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위 ‘성전’을 벌이고 있던 로마가톨릭 사회에선 적인 이슬람교도들이 입는 줄무늬 망토를 걸친 가르멜 수도회의 수사들이 온전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을 것이다. 결국 줄무늬에 대한 딱지 질은 종교 간의 적대적 관계와 동일 종교 내의 권력투쟁과 맞물려 빚어진 것이다. 줄무늬가 중세를 넘어 근대로 들어서면 점차 줄무늬가 갖는 역동성, 그리고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한 상징적 코드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과감성·역동성·도전정신·모험을 나타내고자 할 땐 줄무늬가 자연스럽게 차용되었다. 범죄자들의 무늬, 창녀들의 무늬. 그 사회의 버림받고 버려진 자들의 무늬가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무늬로 정착되면서 세로 줄무늬는 귀족들의 무늬가 되고 가로 줄무늬는 서민들의 무늬로 갈려졌다. (유럽 국가들의 국기들 중 가로 줄무늬 국가와 세로 줄무늬 국가를 재미삼아 찾아보시길) 줄무늬가 유럽의 중세에서 불온함과 무질서 그리고 범죄로 이미지 조작된 것은 로마가톨릭의 이슬람교에 대한 배척과 경쟁의식에서 비롯되었더라도 줄무늬 옷을 소화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서두에서 애기했지만, 줄무늬가 가로든 세로이든 줄무늬 옷을 입으려면 상당히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된 줄무늬는 더더욱 소화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줄무늬 망토를 고수했던 가르멜 수도회 수사들은 훗날 “용기 있는 자”들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줄무늬는 용기를 상징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줄무늬가 굵으면 굵을수록 용기는 더더욱 필요해진다. 줄무늬의 굵기와 용기는 비례한다. -천성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