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기여 입학제’를 금지한 교육부의 ‘3不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들의 잇따른 ‘3불정책’ 폐지 주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폐지 절대 불가’ 입장을 밝히자, 각 정당의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난 3월 22일 전국 158개 사립대 총장들로 구성된 한국사립대학 총장협의회는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금지 등 3불 정책 폐지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들은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막아 온 3불 정책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이제 폐지를 고려할 시점이 됐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이 모임의 회장인 서강대 손병두 총장은 이날 “앞으로 사학발전 워킹 그룹을 만들어 대학의 자율권 문제 등을 논의한 뒤 오는 5월 4일 열리는 한국사립대학 총장협의회 총회를 소집해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고 정치권에 호소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 “일부 대학, ‘교육’ 경쟁 대신 ‘학생 잘 뽑기’ 경쟁”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서울대와 사립대학 총장들이 본고사·고교등급제 등을 금지하는 정부의 3불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학생을 획일적인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학원으로 쫓아버리는 정책을 할 수 없다”며 ‘3불정책 폐지 절대 불가’를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과학기술인 육성관련 업무보고에서 “몇몇 대학들이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경쟁을 하지 않고 잘 뽑기 경쟁을 하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교육의 자유는 좋지만 왜 선발하는 것까지 꼭 자유를 가져야 하느냐”며 대학들의 ‘본고사 부활’ 요구를 강력히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공교육이 본고사로 가버리면 교육 기능을 학원에 빼앗기고 아이들은 고통을 받게 되고 교육이 전체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불가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대학들에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교육부 김광조 차관보는 지난 22일 “3불정책은 우리사회에서 학벌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50여 년 간의 경험에서 나온 최소한의 사회적 규약”이라고 주장했다. 김 차관보는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확고한 입장을 갖고 3불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3불정책을 어기는 대학들이 있을 경우엔 법령이 허용하는 모든 제재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조 차관보는 이와 함께, 3불정책 가운데 ‘기여입학제’ 등을 제외한 나머지사안을 분리해 존폐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그럴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3불정책 고수할 것”vs“폐지해야” 열린우리당의 입장도 ‘3불정책 고수’다. 열린우리당의 정봉주 제 6정조위원장은, “대학이 사회적 책무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인 3불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자세”라며 대학들의 3불 정책 폐지 요구를 맹비난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본고사 체제에서 망국적 사교육이 창궐하는 상황을 이미 경험했고, 고교등급제를 허용하면 교육양극화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위원장은 또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라는 것은 돈으로 모든 교육을 결정하겠다는 망국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을 뽑아 졸업장만 얹혀주겠다는 발상은 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며 “열린우리당은 국회 교육위·교육부와 힘을 합쳐 교육의 가치를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정권 후반기에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교육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 정치적인 자세”라고 비판하고, “본인들의 경쟁력 저하를 입시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전 세계 20위권 대학 중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하고, “무책임하고 노력 않는 자세를 입시정책으로 돌리는 자세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그동안 ‘평준화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한나라당은 즉각 그 핵심인 ‘3불 정책 폐지’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전재희 정책위의장은 “평준화를 국가가 제도로 통제하겠다는 건 탁상공론에 파묻힌 것”이라며 “대입 완전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불정책 폐지 불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도 완고하다. 심상정 의원은 “3불 정책은 우리 교육이 지켜야할 마지노선”이라며 “여기서 물러난다면 우리 사회는 신귀족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심 의원은 3불 정책을 시급히 입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이미 국회에 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심 의원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선발권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일부 대학과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지금도 소수대학이 우수학생을 싹쓸이 하는 현실”이라며 “대학교육의 문제는 학생선발권이 제약된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대학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영길 의원도 “현재 각 대학들이 3불제 폐지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입학은 입맛대로’, ‘교육투자는 안하고’, ‘졸업은 쉽게’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으로 대학교육의 경쟁력 향상과도 무관한 것일뿐더러, 최종적으로는 ‘등록금과 기여금을 많이 받는’ 교육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권 의원은 특히 고교등급제에 대해 “한마디로 ‘연좌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권 의원은 “출신학교의 성적에 의해 평가받는 ‘출신학교 연좌제’이며 학교의 위치가 강남이냐 비(非)강남이냐로 구분되는 ‘출신지역 연좌제’라고 지적했다. 대선주자들의 입장도 첨예하게 엇갈리긴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평준화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손학규 전 지사나 잠재적 대선 주자인 정운찬 전 총장 역시 ‘대학의 자율성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열린우리당 의장은 “3불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본고사를 보지 말아라, 고교등급을 하지 말라는 것은 없앴으면 좋겠다”며 “정부는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부와 각을 분명히 세우고 있다. ■교원단체 간에도 대립 심화 ‘3불정책’은 교육단체들 사이에도 논란거리다. 특히 교총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교원단체와 전교조로 대표되는 진보적 교원단체 사이에서 이 문제는 거의 감정싸움 수준이다. 전교조 등 진보적 교육단체들은 한 마디로, “3불 정책 폐지는 망국의 길”이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0여개 교육단체는 27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3불 정책이야말로 한국 공교육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3불정책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3불정책이 교육문제가 아닌 정치문제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3불 정책이 폐지된다면 한국 공교육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 지적하고, “고교등급제가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본고사는 공교육을 붕괴시키며, 기여입학제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적 교육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3불정책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며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교총도 3월 27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교총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적으로 대학의 학생선발은 대학자율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한재갑 한국교총 대변인은 “3불 정책은 이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총은 “3불 정책의 재검토는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전면적으로 해제하면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계적,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교총은 이어 올 연말 대선과 관련해 “좋은 교육이 나라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에서 ‘교육대통령 만들기’에 조직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며 “상반기 중 차기 정부의 핵심 교육과제를 제시하고 반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교총이 자체 회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교총 회원들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교육 대통령으로 성공할 것 같은 정치인’ 1위로 꼽은 바 있다. ■‘3불정책 폐지론’의 허점 “3불정책을 폐지 또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학생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본고사도 허용해야 하고 고교 간 실력차가 분명한 만큼 고교등급제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여입학제도 일부 보완을 조건으로 허용할 시기가 됐다”는 주장도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오류가 있다. 우선 3불 정책으로 인해 대학들이 우수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착각’이다. 이들은 “대학들이 고교평준화처럼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우수하지 못한 학생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교 간 실력차도 인정하고 본고사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른바 ‘SKY대학’으로 상징되는 명문대학들은 본고사건, 학력고사건, 수능시험이건 어떤 입시제도 하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만을 뽑아 왔다. 특히,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 출신학생 상당수가 이들 명문대학으로 진학해 왔다. 이에 대해 대다수 입시전문가들은 “3불 정책과 관계없이 명문대학들은 가장 우수하다는 학생들을 사실상 싹쓸이 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명문대학 관계자들도 “3불 정책으로 인해 우수학생을 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솔직히 없다”고 입을 모은다. 3불 정책과 관계없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온 대학들이 3불 정책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중등학교 국제평가지수(PISA2003 등)에서 상위권을 휩쓸던 우리 아이들이 서울대에만 가면 평범한 ‘둔재’로 변모하는 실정이다. 서울대 역시 세계 100위 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입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대학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지방대학들이 우수한 인재 육성에 성공하고 있는 점도 ‘3불정책 폐지’를 주장하는 ‘명문대학’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자신들의 교육 실패를 ‘3불정책’ 탓으로 돌리는 태도가, 교육을 내세우는 명문대들이 취할 입장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