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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3공화국 최대 미스터리 피살사건 주인공 정인숙 아들

91년‘친자확인 소’제기 전격 취하 의혹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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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호 ⁄ 2007.07.03 10:55:31

박정희 정권 최대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는 ‘정인숙 피살사건’이 또 다시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월 한성골프장사장 납치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성일 씨가 지난 3월 16일 긴급 체포되면서 정 씨가 바로 70년 ‘의문의 피살사건의 주인공인 정인숙 여인의 아들임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공시절 수많은 권력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며 희대의 요화로 알려진 ‘의문의 피살’ 주인공의 아들인 정성일 씨가 지난 2월20일 정 씨가 서울 한 식당에서 강 사장의 외삼촌 유모씨,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김모씨를 만나 윤 씨에게서 골프장을 빼앗으면 1500억원을 줄 수 있느냐며 제의, 윤 씨가 수락하자 행동대원들을 끌어 모아 납치극을 꾸민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출생 비밀과 생부로 알려진 정일권 전 총리를 상대 ‘친자확인소송’제기후 ‘1백만달러 합의’ ‘탕진’ 신분도용사건 후 추방으로 이어지는 정 씨의 인생유전의 비밀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나 정인숙 아들 정성일’ 경찰이 정 씨를 검거할 당시 BMW를 몰고 강남구 논현동의 한 룸살롱에서 역삼동 K호텔로 대리운전을 시킨 첩보를 입수, 이호텔을 비롯한 인근 10여개 호텔을 탐문해 검거했다. 체포 당시 정 씨는 ‘리처드 박’이라는 이름으로 투숙했으며 BMW는 LG카드 명의의 리스차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체포당시 그는 ‘리처드 박’이외 2~3개의 가명을 상용했고 자신을 M&A 전문가로 소개하며 국내에서도 사기 행각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조사과정에서 정 씨는 3공화국 시절 한강변 의문의 권총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숙 씨의 친아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성일 씨의 모친은 다름아닌 지난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강변대로 코로나 승용차안에서 미모의 26세인 여인이 목과 가슴에 두발의 총알을 맞고 숨진채로 발견된 정인숙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고급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인데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수첩에 정재계 거물 2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여권발행이 힘들었던 시절에 복수여권까지 소지하고 있어 더욱 그녀에 대한 관심은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정인숙씨는 194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본명은 정금지. 대구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 아버지는 대구시장을 지냈다. 영화배우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비밀요정으로 가게 되었고 당시 검찰은 정여인의 오빠가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을 분노해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그녀가 낳은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의 아버지가 국무총리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버지 진실공방이 소송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정일권 전 총리 돌연 소 취하 베일에 쌓인 정 씨는 지난 93년 쓴 자서전 ‘저는 당신의 아들었습니다’에 기술된 내용에 의하면 외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외할머니가 작고하자 친척을 통해 어머니 정인숙의 존재를 알게 됐다. 고교 2년 재학중이던 1985년 미국 LA로 유학을 갔으며 US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금융회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91년 한국으로 돌아와 동생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10년 실형을 살고 출소해서 사업을 하고 있던 외삼촌 정종옥씨를 만나면서 자신의 생부가 정일권 전 총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같은 해 6월 정 전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달만에 돌연 소를 취하하고 LA로 다시들어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며 주지육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LA에 사는 교포들은 그때부터 정 씨가 바로 정인숙의 아들이며 생부가 정일권 전 총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 씨 스스로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항상 ‘내 생부가 정일권 전 총리이며 정인숙 여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고 다녔다. 그러고 한국을 다녀온 후부터 돈을 물쓰듯이 쓰고 다녔다. 웬만한 룸싸롱에서는 정 씨를 ‘돈 잘쓰는 정일권 전 총리아들’로 알고 있었고 친자확인 소송취하 조건으로 정일권 씨로부터 100만달러의 거액을 받고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친자확인소 취하에 대한 의혹이 결국 돈으로 해결되었다는 사실도 이번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돈이 떨어진 정 씨는 93년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 다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정 전 총리가 지병으로 병상에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다음해인 94년 별세하자 다시 LA로 돌아갔다. 그후 정 씨는 훤칠한 키와 외모를 지닌 D만두 식품회사의 딸과 결혼을 해 딸을 낳고 살았다. 그러나 허황된 꿈과 개인 사생활이 복잡해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씨는 2002년 6월 한인 4명의 명의로 신용카드 여러장을 발급 받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사귀던 애인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후 재판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와 온 정 씨는 이후 특별한 수입 없이 거액의 돈을 물쓰듯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난 해 6월 강남에 B&A와 풍력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하는 사무실을 내고 압구정동 아파트에 BMW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호사스런 생활을 하던 정씨가 최근에는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쪼들린 생활을 하고 있다가 이번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여진다. -김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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