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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이야기꾼 강풀, 그 따뜻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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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호 ⁄ 2007.07.03 10:42:08

‘강풀’, 그의 이름은 이제 블루칩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그의 작품을 욕심내고 있으며, 인터넷 만화가 출판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비록 아쉬운 작품이 됐지만, <아파트>가 마니아들의 기대와 함께 영화화됐다. <바보>도 차태현·하지원 주연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스틸컷 사진으로 공개된, 주인공 ‘승룡’ 역의 차태현의 이미지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원작의 이미지와 비슷함에 따라, 영화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직접 인터넷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강풀’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된 동기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고의 만화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의 인기,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인터넷에 대한 재빠른 적응, 그리고 새로운 변화 데즈카 오사무는 <신보물섬>이라는 작품을 계기로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규격화된 표준처럼 여겨지던 ‘칸’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원래 영화광이었던 그는, 만화의 ‘칸’을 영화의 ‘필름’처럼 묘사한다. 만화를 그리는데에도 영화광으로서의 시선과 문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이끌어낸 ‘칸’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 <신보물섬>에서의 ‘자동차 질주’ 장면이다. 강풀도 인터넷이라는 환경에 발맞추어, 기존의 만화 독자들로서는 신선한 느낌을 얻기 충분한 ‘칸’의 변화를 추구한다. 컴퓨터로 보는만큼, ‘옆으로’ 시선을 옮겨 보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의 시선 변화를 유도한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3월 30일자 기사 <‘인터넷만화 타짜’ 강풀 2억4천 클릭의 힘>에 따르면, 그가 추구한 변화에는 대학 시절 대자보만화를 그렸던 경험이 반영됐다고도 한다. 거기에, 필자 개인적인 추측을 보탠다면, <아파트>나 <타이밍>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강풀 역시 ‘칸’을 구분할 때, 다분히 영화의 필름을 의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풀은 당연히 만화광이기도 하지만 영화광으로도 알려졌다. 작품 속에서도 영화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아파트>와 <타이밍>은 우리 만화에서는 모처럼 본 묵직한 스릴러물이라 필름처럼 활용된 ‘칸’이 의미가 크다. 긴박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강풀이 추구한 그 기법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 만화는 이렇게 조화롭게 만나 새로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명시절에 모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다던 <영화야 놀자>도 그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강풀과 영화의 관계는, 그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강■ 풀의 그림 실력? 후쿠모토 노부유키도 있는데 뭘… 많은 독자, 그리고 언론, 심지어는 그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기존 유명작가들의 문하생 생활도 거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거친 것’이라고 한다. 지금에서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성장은 강풀에게는 맞지 않는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강풀이 내거는 승부, 그리고 독자들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다. 그는 작품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과 사연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강풀이 이야기꾼으로 거듭난 이유는, 그렇듯 생생하게 살아난 캐릭터들을 보기좋게 교차시키며 인연을 나누도록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오해도 있으며 뒤늦은 후회와 눈물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 그리고 그들이 서로 주고 받는 인연은 그런 것이다. 강풀은 일상 속에서, 그리고 <26년>처럼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수없이 나누는 인연의 의미를 찾는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캐릭터들이 아주 서서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금씩 발을 맞춰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이야기의 호흡을 조절할 줄 아는 진정한 이야기꾼의 자질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만화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장르인만큼, 그의 그림 실력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캐릭터를 정감있게 그릴 줄 안다는 장점이, 아쉬움을 최대한으로 가라앉힐 수 있도록 한다. 일본만화에 친숙한 만화독자라면, <도박 묵시록 카이지>로 유명한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한다. 그림 실력은 ‘발로 그린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그 역시, 강풀과 비슷한 이유에서 인기를 얻는다. 그는 그림에서의 단점을 만회하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 능력과 설득력 있는 심리 묘사 능력이 있다. 그림도 중요하지만, 만화도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장르라는 뜻이다. 영화도, 만화도,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후쿠모토 노부유키같은 작가도 꾸준히 만화를 그리고 있다. 강풀이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 ■ 성악설을 믿는 사람도 유혹하는 강풀의 ‘인간에의 믿음’ <바보>의 ‘승룡이’는, 타락한 인간세상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인간과 세상을 맑게 바라볼 줄 아는 눈물겨운 캐릭터였다. 그의 순수함 앞에 오해와 갈등도 풀린다.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베풀 줄 아는 미덕만을 보여준 채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순정만화>의 6명의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새로운 인연과 사랑을 만들어나간다. 개인적으로 히로카네 켄시의 <인간교차점>을 보면서 그를 부러워했던 감정, 강풀의 <순정만화>를 보면서 지울 수 있었다. <순정만화>도 <인간교차점> 못지 않게 세상 사랑과 인연, ‘교차’에 대해 성찰있게 다룬 작품이었다. 게다가 <26년>을 제외하고는 극악이 등장한 적도 없다. 오해받을 만한 짓,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도 분명한 사연과 이유가 있으며,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강풀은 기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고 믿는다.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위험에 처한 아기를 보면 구할 생각이 절로 들 것이라는, 맹자가 거론한 성선설의 대표적인 예도 이야기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성악설을 비중있게 받아들였기에, 강풀의 성선설에는 반드시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다만, 강풀의 작품을 보면 가끔씩 그 성악설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흠칫 놀라는 경우가 있다. 현실과 인간에 치여 피로한 현대인들, 강풀의 만화는 같은 소재를 활용했음에도 ‘치유’의 의미를 갖는, 재미있는 위력이 느껴진다. 인간을 믿든 안믿든, 그것은 독자 개개인의 판단이다. 다만, 강풀의 성선설은 그 어느 경우에도 분명한 의미를 가지며, 따뜻한 유혹이 된다. ■ 대중문화는 더 많은 ‘강풀’을 필요로 한다 대중문화 어느 장르를 살펴보더라도, 이야기꾼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같은 걸작이 있음에도 한국영화를 뒤흔드는 ‘조폭 바람’은 영화판 특유의 소재고갈, 이야기꾼 부족이라는 만성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뿐일까? <하얀 거탑>이나 <마왕> 등과 같이 새로운 시도는 이어지지만, 드라마 장르의 대세 역시 여전히 ‘불륜’, ‘불치병’, ‘삼각관계’, ‘시어머니의 구박’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안목과 뚝심을 가진 이야기꾼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드라마 장르를 장기적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책임자들의 어두운 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강풀은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작가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어떻게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걸작과 졸작의 갈림길이 나눠진다. 강풀은 걸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기에 의미 있는 작가다. 강풀의 의미 있는 걸작 행진, 더 많은 파동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박형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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