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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이 씨를 기억하는가

[서평]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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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호 ⁄ 2007.07.03 10:30:44

윤정모의 장편 소설 <고삐>가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작가 자체의 변화 즉, 대중소설가에서 문제작가로의 변화가 가져다준 것이라기보다는 그 작품이 담아내고 있는 현실의 모습 때문이었다. 요정 접대부인 어머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기지촌 매춘부의 삶을 살았던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 현대사가 품고 있는 모순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고삐>가 제 아무리 현실의 모습을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상상력의 결과물이었다. 윤금이 씨 사건이나 지금도 우리의 망막 속에 깊이 새겨진 채 시시때때로 그 잔영이 떠도는 미선이·효순이 사건의 경우처럼, 그 어떠한 문장도 현실의 처절함을 ‘모두 다’ 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 그대 언 살이 터져 詩가 빛날 때 제 발로 기지촌에 들어갔다가 25년 동안 기지촌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동시에 최초로 기지촌의 현실과 자신의 삶을 한국사회에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람이다. 세상은 그녀의 이름을 ‘김연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흔히 ‘양공주’ 혹은 ‘양갈보’라고 불리며 이 세상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떠나고 싶고 지우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로 가득 차 있는 기지촌에서의 삶들을 그녀는 그러나, 한 권의 책 <아메리카 왕언니 죽기 오 분 전까지 악을 쓰다>에 새겨놓았다. 이 책에 담긴 그녀의 삶은 우리의 현대사가 남겨놓은 생채기 그 자체다. 가난한 모녀를 극한의 생존투쟁으로 몰고 가는 전쟁과, 그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절망의 못질을 해대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공돌이’ ‘공순이’라는 멸시적인 언어 위에 개발독재의 성과물을 독차지하는 독재 시대의 본질과, 공창 아닌 공창이 되어버린 기지촌이 있고, ‘유신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는 재판 없이 처벌한다’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유신시대가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이 책의 언어들에게 ‘고상’이나 ‘우아’ 따위의 ‘대한민국 1%’ 식의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김연자의 언어들은 다름 아닌 기지촌에서 쓰던 욕들과 기지촌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던 그들만의 일상(이라기보다는 ‘삶’이란 이름의 전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성폭행을 당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상처, 그리고 분노가 어떠했는지 우리들은 더구나 나 같은 남자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살갑고 담담하기까지 한 진술들을 통해 ‘기지촌’이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우리 자신의 치부와 세상으로부터의 멸시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들(기지촌 여성들)이 가꾸어내려 했던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공동체’가 어떠한 형상이었는가를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 돌아갈 수 없는, 그러나 회상해야 할 날들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에게 있어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작가의 인생이 그 명제를 증거하고 있다. 김연자는 극히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가 당대의 여성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졸업 후 서울신문 여수 지사에서 1년 정도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 정도다. 그런 그녀가, 왜 기지촌이라는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잔혹한’ 땅에 몸과 마음의 거처를 두었을까. 지난 1960~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전업주부를 제외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버스 안내양·구두닦이·식모·호스테스·양공주 정도였다. 더구나 그 직업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가부장제적 의식에 사로잡힌 남성들의 ‘일상적인’ 성폭력의 직접적인 위협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매매춘의 세계는 살인적인 저임금과 경제적인 고립 속에서 언제나 내몰릴 수 있었던 막다른 길이었다. 실제로 한국 문학에서는 ‘버스 안내양을 하다가 혹은 식모를 하다가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후, 종국에는 매매춘의 세계로 내몰린 여성’들의 수난사를 다룬 작품이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문학만의 모습이 아니다. 영화 역시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우리 시대의 거장 임권택 감독 역시 ‘노는 계집 娼’을 통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성적으로 학대받고 있으며, 아울러 남성에 의한 일방적인 성폭력 혹은 성매매의 그늘이 그네들에게 일상적으로 드리워져 있음을 말했다. 이 책의 작가 김연자 씨 또한 서울에 올라와 반창고 공장, 책 외판원, 버스 안내양, 구두닦이 등을 전전하다가 기술을 배우려고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그곳에는 성매매를 하다가 잡혀온 여성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김연자 씨는 이곳에서 매매춘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진즉에 떠났던 기지촌으로 그녀가 다시 돌아간 이유는 아마도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삶의 고통이 뿌리내린 자리를 더듬어 마침내 그 자리를 보듬어 안고 화해하기 위해서”라고 진술한다. 기지촌이라는 시대의 상처를 향해 날아드는 ‘도덕적 순결자’들의 돌멩이와 ‘지극히 정상적인 척 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을 향해 김연자는 말한다. 매매춘 여성의 죄라는 것은 실상 ‘그 잘난’ 남성 주류 세력들이 쌓아올린 원죄의 탑이라고.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의 형상은 가난하고 무기력하며, 마침내 차라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게 한다. 마치 어느 여성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70세 매춘부’ 이야기처럼, 그네들의 삶은 이리저리 찢기고 해체되어 왔다. 술과 약이 없이는 단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그들의 일상은 그러므로 일상이 아니라 ‘폭력’ 그 자체이다. 이 책의 작가인 김연자 씨는 1988년, 마흔여섯에 25년 동안의 클럽 생활을 정리한다. 그리고 기지촌의 동료들과 함께 천막신앙공동체와 쉼터를 만들며, 자신이 겪어온 상처와 분노의 깊이만큼 정열적으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는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었던 종교를 디딤돌 삼아 세상 밖으로 나와 신학대학에 들어가고, 자신의 삶과 경험, 기지촌의 현실을 사회에 알리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한 김연자 씨의 헌신적인 활동과 증언은 오늘의 시공간 속에서 기지촌이라는 공간을 되살려내면서, 기지촌에 대한 무지·편견·오해 들을 바로잡고 풀어나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날 선 잣대와 장삿속 이제 김연자 씨는 예순 하고도 중반이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한 둘 정도의 손주를 보는 재미로 살아갈 나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살아갈 기회를 잃었다. 세상의 편견이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김연자 씨와 같은 여성들에게 지독히도 날이 선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그네들의 삶을 끊임없이 조망한다. 왜냐고?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이 매매춘 여성들을 소재로 한 에로비디오들은 동네 비디오 숍에 널리고 널렸다.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그저 ‘섹스’라는 것 하나만을 강조한 그런 영상들은 허울 좋게도 하나 같이 ‘여성의 비극’을 운운하고 있다. 지나가는 동네 양아치가 웃을 지경이다. 이 책이 세상의 안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꼬박 10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어쩌면 그 세월은 김연자 씨 자신이 시대를 용서하고 자신을 비롯한 기지촌 여성들의 현실을 차분히 바라본 ‘시간의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 오랜 고통과 풀리지 않은 울분, 그리고 정당한 분노를 거쳐 김연자 씨가 깨달은 평화는 의외로 소박하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근원적인 이유인 ‘자신과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무차별한 헌신’이다. 이 책은 기지촌 여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불난 호떡집’마냥 호들갑을 떨어대는 이 사회의 목소리들이 꼭 한 번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책이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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