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갈수록 불을 뿜고 있다. 그 경쟁에 우리의 생존과 국익 또한 걸려 있다. 최근 한·미 FTA 타결은 중국을 다급하게 하였다.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기세등등한 중국이 원자바오 총리를 보내 한·중 FTA 체결을 서둘자며 직접 서울로 왔다. 만만디의 중국으로서는 놀라운 기동성이다. 모두 짐작하겠지만, 한·미 FTA는 우리에게 이익만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농업·서비스 분야 등의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연한 기준이긴 하지만 국익과 미래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우리에게 분명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한·미 FTA로 손해보는 부분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만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 세계 및 동북아 질서의 미·중 경쟁구도를 적극 활용하여 한·중 FTA 협상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 줄 아는 협상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긴요하다. 이는 국가對국가의 양자 틀을 넘어 다자 틀,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국익을 계산하고 획득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정치·안보·역사·문화 등 다양한 카드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출 때 가능하다. 이 점에서 중국이 지금 작심하고 도발한 역사전쟁은 우리의 생존과 국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사건이다. 앞으로 중국은 우리가 골치아파 할 역사도발을 강력한 수단으로 삼아 적게는 한·중 FTA의 체결, 크게는 코리아의 탈미결중(脫美結中)화를 압박하려고 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적어도 패배는 하지 않아야 대한민국과 통일코리아, 팬코리아의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의 역사전쟁은 우리 자신의 역사의식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유사 이래 우리의 주(主)무대가 한반도가 아니고 만주를 위시한 대륙이었다면 그리고 조선조 이래의 500년 쇄국정책이 아니고 청해진과 벽란도의 전설이 현실로 이어져왔다면, 오늘 팬코리아에게 이러한 역사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길게는 고려 중기, 짧게는 조선 중기 임진·병자 양 란 이래로 스스로 소중화(小中華)의 신복(臣僕)이 되고자 한반도로 숨어들고 얼토당토 않는 순혈주의에 빠져들지만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동북공정이 나오고 치우 천왕을 한족(漢族)의 조상이라 우기는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에서 베이징올림픽의 성화를 채화하겠다는 계획을 중국이 수립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코리아와의 연줄을 잃어버리고 제 스스로 외톨이 민족이 되어버린 일본과의 피곤한 역사전쟁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족과의 지난 수천년의 쟁투는 대략 3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문화전쟁이다. 김운회 교수의 <삼국지 바로읽기>에도 나와 있듯이, 삼국지 한권으로 중국은 동아시아 모두의 의식세계를 천년이 넘도록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정규전에서만 문화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다. 여불위의 자식이 저지른 분서갱유 이래 당장(唐將) 이적(李勣)이 지휘한 고구려의 분서갱유를 비롯한 직·간접의 비정규전으로 우리 역사가 입은 타격 또한 그에 못지않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류(韓流)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난 월드컵에서 차이나의 CCTV가 그리도 혐한(嫌韓) 정서를 내놓고 퍼뜨린 것도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그들은 유사 이래 늘 정공법보다 주변 민족들을 이간하고 그 틈을 벌려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하는 우회전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어쩌면 지금 또한 대한민국은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양문제가 나오면 베이징을 고마워하면서 워싱턴에 눈을 부릅뜨고, 역사왜곡이 거론되면 중국과 함께 일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일본의 못다 한 죄과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지금 눈앞에 닥친 동북공정에 비하면 만사를 제쳐둘 사유가 아닐 수도 있는데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패에 말려왔다. 세번째로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그들은 매우 끈질기고 집요하다. 농경민족의 전형으로서 유목민족처럼 서로 나누고 거래하는 것보다 성을 높이 쌓고 오로지 자기 땅과 착취의 대상으로서 그 백성들을 늘리는 일에만 관심이 큰지라 무엇 하나를 뺏기면 대를 이어 복수를 한다. 한족(漢族)은 지금도 치우와 연개소문을 증오하고 있다. 4,700년 前, 1,400년 前의 원한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공이산이 가능하다. 반면, 우리의 민족사를 보라. 복수의 개념이 아예 없고 심지어 자기 역사의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까먹는 것이 예사가 아닌가. 가랑잎에 불붙는 냄비근성을 우리가 전혀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근성은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큰 추진력이 될 수 있지만, 만약 내부가 취약하면 우공이산에 꼼짝없이 휘둘리는 ‘방향 잃은 멧돼지’가 될 것이다. 먼 옛날의 낭도들처럼 심신과 영혼을 동시에 다스리는 수련을 하는 집단이 코리아의 중심에 설 때 살벌한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 이러한 속성들을 고려한다면, 역사전쟁의 해법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우선 지금은 단군조선 이래 반만년 대륙의 역사를 공식화하는 일에 신명을 바쳐야 한다. 참여정부처럼 과거사 청산에 매달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승 이병도의 참회에도 아랑곳 않는 유별난 학계 인사들도 많은데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의 친북반미 광풍 속에 부쩍 커버린 신판 親中주의자들의 득세, 그리고 일부 종교적 광기까지 어우러진 3각 파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길이 이것 밖에 없다면 우리는 신명을 바쳐?이루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안이 계속 허물어져 내린다면,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끈질긴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모든 옷을 벗고 마침내는 뿌리를 알 수도 없이 생존을 위해 유랑을 거듭하는 ‘동아시아의 집시’로 전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소박한(?) 수준이나마 하나만 소개하고 오늘은 끝맺고자 한다. 요사(遼史), 금사(金史), 원사(元史) 등 우리와 대륙에서 함께 했던 옛 형제들의 기록 즉, 중국의 정식 25史로서도 인정받고 있는 기록들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나아가 거기서 찾은 진실과 우리가 소중화(小中華)의 광풍에서도 지켜온 사실(史實)을 한데 모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앵글로색슨의 권역에 널리 영역(英譯)하여 알린다. 이는, 먼저 우리 안에 잘못된 역사인식을 시급히 교정하고 그 기운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역사전쟁 도발을 막을 원군을 얻어내자는 것이다. 그 가닥을 잡게 된다면 우리 안의 3각 파도를 스스로 극복할 기운을 얻게 될 것이며, 일본문제 또한 쉽게 풀 실마리를 절로 찾게 될 것이다. -우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