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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일반인’ 아니다? 공익광고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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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호 ⁄ 2007.07.03 10:16:27

“승리 따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진지한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차피 ‘장애인’ 스포츠에 지나지 않아.” 일본의 만화가 다케히코 이누우에라면, 사람들은 대개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를 기억한다. 물론 이 작품들은 많은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작품이며, 분명한 걸작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걸작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스포츠, 그중에서도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 <리얼>이다. <리얼>은 장애인이 바라보는 현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저지른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된 소녀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사람, 피아노를 강요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육상을 선택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사람,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돼 장애를 ‘굴욕’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리얼>은 장애에 대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과 희망을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현실을 바라보는 장애인들의 ‘리얼’한 마음이 숨어있다. 비장애인이 무심코 내던진 시선과 한마디가 상처가 될 수 있으며,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장애인을 억지 소재로 삼아버리는 비장애인의 처사가 또다른 좌절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 특히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정신적인 만족과 뿌듯함을 얻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의 잦은 대상이 되는 이들이 바로 장애인이라 할 수 있겠는데, 비장애인은 가끔씩 장애인 스스로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도 억지스럽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장애인 스스로의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대사는, 이따금씩 ‘장애인’을 매개체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우리에 대한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따끔한 한 마디로 느껴진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 대사를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나친 배려, 반대로 미담의 소재를 삼기 위한 ‘비장애인’의 뻔한 시선.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시각장애인, 그들은 ‘일반인’이 아닌가? 최근 들어 자주 보는 광고 중 하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스포츠토토와 OCN과 함께 한다는 공익광고다. ‘소리를 차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시각장애인 축구모임과 ‘일반인’이 친선축구시합을 벌이면서, ‘일반인’도 눈을 가리고 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축구시합을 한다는 것이다. 오픈 유어 마인드, 육신의 눈은 가렸지만 마음의 눈으로 축구를 하며 시각장애인들과 교감을 나눴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며,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이다.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그들에게 현실이 얼마나 고된 공간인지, 그리고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공을 차는 그들의 모습, 분명 순수하고 아름다운 땀 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 광고는, 그 아름다운 의도와는 달리, 사소한 언어 표현에서 장애인을 향한 극복해야 할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광고 화면의 우측 하단을 보면 “소리를 차는 사람들(시각장애인)과 일반인 친선 축구”라는 카피가 보일 것이다. 왜 ‘비장애인’이 아니라, ‘일반인’인 것일까? 장애인은 ‘일반인’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국어사전에 명시된 ‘일반인’의 의미는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의 사람”, “어떤 일에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다.

장애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무슨 특수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런 식으로 구분해, 미담의 소재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 개인적으로 이 광고를 볼 때마다 늘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한 마디를 떠올렸다.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친선 축구’가 옳지 않을까? <리얼>이 의미있는 이유는, 장애인도 우리와 다를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그들을 단지 미담의 소재 정도로만 인식하지는 몰라도, 그들 역시 의지를 갖고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서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몸이 불편한 이상, 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는 비장애인과 같은 조건에서 활약하기는 어렵다. 광고에 등장한 시각장애인 축구모임 ‘소리를 차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각장애인 축구선수를 대상으로 한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출전했다고 하며, 국제 시각장애인 축구 대회를 목표로 삼았다고도 한다. 그들 역시 ‘정상’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이기고 싶은 의지가 있다. 그들은 억지스러운 미담의 주인공보다, 의지를 갖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보통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광고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스포츠를 통해 모두가 하나 되어 화합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기획된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하나 되어 화합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소한 언어 선택 하나가 그 기획 의도를 묻어버릴 수도 있다. 장애인도 일반인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은 일반인이면서 비장애인이다. 특정한 사물이나 개념을 표현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어’다. 장애인은 차별받아서도 안되지만, 미담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특수인’이 될 필요도 없다. 오픈 유어 마인드, 마음의 눈을 열기 위해서는, 그들은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인 ‘일반인’으로 봐야 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면 세상은 하나가 된다”는 아주 중요하고 좋은 이야기, 결국 아직 멀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버리고 마는 광고였다. 장애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그들도 ‘일반인’임을 인정한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정서적 과시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광고는 그것부터 극복하고 ‘마음의 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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