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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에 삼백 원

[서평]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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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호 ⁄ 2007.07.02 14:09:45

문학을 하는 벗들에게 ‘왜 하필 문학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 정도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다른 무엇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문학 중에서도 ‘리얼리즘’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실적 묘사일까, 아니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섬세한 붓터치일까. 나는 리얼리즘의 힘은 ‘타자에 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 긍정적인 밥 함민복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시들은 대체로 슬프다. 읽고 나면 눈물이 절로 흐르는 시들을 아주 잘 쓰는 몇 안되는 ‘시쟁이’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함민복의 시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의 미학’의 근저에는 바로 ‘긍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우리네 서민들의 팍팍한 삶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결코 어둡거나 절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함민복은 우리 삶의 눈물과 고통과 피와 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따뜻한 초월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의 시 ‘긍정적인 밥’을 차분히 들여다보자.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긍정적인 밥’, 전문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적어 내려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스스로에게 절망했었다. 가난한 작가들의 삶과 심경을 이토록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을 본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주 따뜻하다. 그러나 함민복의 ‘따뜻한 슬픔’은 정호승의 ‘슬픔의 힘’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호승의 슬픔이 도회지 인텔리겐차의 그것을 대변한다면, 그리고 그 슬픔을 진술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함민복의 슬픔은 긍정적 슬픔이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고등학교 무렵 문학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우리에겐 정호승·안도현·곽재구라는 스승들이 있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직접 시를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를 쓰는 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 정호승의 ‘슬픔’과 안도현의 ‘녹두장군 눈매’와 곽재구의 ‘우리말’은 문학이라는 것이, 아니 시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울림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그 후에 만난 이들이 함민복과 이원규, 그리고 이윤학이다. 함민복의 ‘긍정의 힘’과 이원규의 ‘빨치산의 눈’, 그리고 이윤학의 ‘물가 버드나무같은 튼실함’이 나에게 오늘을 버티게 하는 ‘지난날의 꿈’이다. 사실 서울에서 집 한 채 없이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늘 불빛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그 불빛들 중, 나의 불빛은 어디에서 빛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노래 중에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입술에 담고 세상을 바라보면 순간의 절망은 다시 희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전문. 이 작품은 분명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함민복이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시인인가를 알게 해준다. 함민복의 시편들이 지니고 있는 궁극의 힘은 바로 ‘극복’이다. 둘러보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만 눈에 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넓혀보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도 지하철역 입구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을 본다. 서울역 광장 앞의 거대한 대우빌딩에 주눅들었다가도 한 가치의 담배를 구하는 걸인들의 떨리는 손을 본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절망스러운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위쪽’만 쳐다본다. 그러니 습관적인 어깨통증에 시달린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다니면 그럴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언론에서도 부추긴다. 아내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송프로그램은 주말 저녁에 방영하는 ‘경제야 놀자’ 류의 프로그램이다. 방송사 노동조합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연예인들의 돈자랑과 사치를 광고하고 양극화를 극렬하게 부추기는 그 따위 프로그램을 왜 그냥 두냐는 말이다. 얘기가 딴 길로 샜다. 여하튼 함민복의 시편들은 읽는 이들에게 ‘따뜻한 슬픔’과 ‘긍정의 힘’을 얻게 해준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추운 겨울, 함민복의 시편들을 품고, 홍합국물에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행복하다. 그리고 아직 희망적이다. 저 어둡고 축축했던 1980년대 후반, 시인 기형도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절망의 골목이 아닌 희망과 긍정의 거리에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지난 2002년의 어느 겨울날, 광화문에 모였던 이들이 그러했듯이.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왜 짠가’, 전문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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