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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의 ‘여우주연상’ 하지만 짚고 넘어갈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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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호 ⁄ 2007.07.02 14:10:23

가문의 영광이다. 나의 보잘 것 없는 글을 모 언론의 기자가 그대로 인용(정확히 말하면 복사)해 기사를 작성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일개 누리꾼으로서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영화 <밀양>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칸 영화제의 시상식을 몇 시간 앞두고 언론의 ‘호들갑’을 경계하는 기사를 쓰면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 언론은 분석적인 취지에서 칸 영화제와 출품작들을 소개하기보다 ‘금메달 레이스’에 바빠 요란을 떠는 데에 앞장섰다. 심지어는 “심사위원이 공정하다면 <밀양>이 황금종려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는데, 그 제목의 근거가 된 발언을 한 이는,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현지의 영화평론가였다고 한다. 한가지 희망스러운 것은, ‘낚시’에 바빴던 언론보다 좀 더 냉정하고 근본적인 취지에서 칸영화제를 지켜본 누리꾼이 더 돋보였다는 것이다.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을 ‘금메달 레이스’ 방식으로 보도하느라 바쁜 언론의 태도를 비판하며, 각성할 것을 촉구하는 누리꾼들도 많았던 것이다. ■ ‘전도연 항의전화’ 기사, 누리꾼이 바라보는 언론과 기자 <밀양>의 주연배우이자, 대한민국 젊은 여배우 중에서 가장 출중한 연기력을 가졌다고 할 만하던 전도연은, 그 개인에 있어서도 평생 잊지 못할 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시상식을 앞두고 가장 긴장했을 이, 시간이 도무지 가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을 이는 누구보다도 그였을 것이다. 그렇듯 시상식 결과를 기다리기에도 초조한 전도연이, 모 스포츠신문 기자를 상대로 ‘직접’ 항의전화를 걸었다는 기사가 작성돼 화제가 됐다. 기자 스스로는 전도연과의 인터뷰 후, “전도연은 폐막식 참석을 요청받았으며,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고 하는데, 전도연은 “그렇게 ‘추측’ 기사를 쓰면 내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항의를 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상하지 못했더라면 난감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말이다. 인터넷에 공개되는 전도연 관련 기사에는 평소에도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일부 누리꾼들이 다양한 패턴의 악플을 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뿐일까? “수상이 유력하다면서 왜 수상하지 못했느냐”는 취지의 신종 악플들도 등장했을 것이다. 전도연은 언론의 무자비한 ‘추측성 기사’와 ‘호들갑’이 본인과 <밀양>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기사 작성 후 댓글게시판에서 순간 욕이나 먹고 조회수나 확인하면 끝이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은 다르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영화배우인 만큼, 앞으로도 그와 관련된 기사에는 또 다른 ‘꼬투리’가 악플이 돼 그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그보다 황당한 것은, 그 기자가 전도연의 항의전화 자체까지 기사화했다는 것이다. 반성의 뉘앙스가 아닌 것은 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 누리꾼들은 그 기사에 대해, “역으로 전도연을 또 공격하는 기사”, 아니면 “전도연과 전화통화했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오간다. 기자의 작성 의도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추측이 대부분 기자를 유치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리꾼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언론과 기자에 대한 인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그저 ‘낚시꾼’으로 보는 것이다. ■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그 후 나는 평소부터, 예술이나 스포츠의 영역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시선만을 앞세우거나, 내셔널리즘이 극단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는 반영되는 것이 현실이라지만, 한국 사회는 유별난 면이 있다. 그들에게는 ‘한국’, ‘한국인’이라는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국적’이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나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심사의 기준이 되는 영화제,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수상결과에 늘 “국위선양에 기여한 자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뿌듯해한다. 전도연에게도 그런 수식어가 붙었지만, 좀 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칸 영화제는, 그녀가 한국의 위상을 높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밀양>에서의 훌륭한 연기를 이유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일부 기자들은, 그런 현상을 이용해 지금 인터넷에서 더욱 기가 막힌 ‘낚시’를 즐기고 있다. 모 스포츠신문의 기자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경력이 같다는 이유로, “‘칸의 여인’ 전도연, 메릴 스트립, 장만옥과 동급”이라고 주장하며, 전도연으로서는 억울해 할 악플을 유도하고 있다. 개중에는 “무조건 외국의 것을 한차원 높게 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의견을 전개하는 누리꾼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은 그 나이만큼이나 더 많은 경력과 연기 인생을 산 배우다. 전도연이 직접 봤다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사다. 이 뻔한 낚시질을 지켜보며, 어떤 누리꾼은 “앞으로 기사가 작성되면, 기자의 사진도 동시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전개해 일부의 호응을 얻고 있다. 기사를 전송하고 조회수를 확보하기에 바쁜 일부 인터넷 언론과, 원래부터 ‘낚시의 으뜸 원조’라는 평가를 받는 스포츠 신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각 없는 낚시질이 기자라는 직업군에 대한 극단적인 비호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사소한 낚시질 하나가, 당사자는 물론 그 스스로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 전도연의 수상,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 결과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대적인 개봉을 앞두고 많은 논란이 오가는 한국영화의 위축, 그리고 <밀양>의 흥행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충무로에서는 그녀의 수상 결과가 위축된 한국영화에 예상만큼의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냉정한 판단이다. 그에 대해 충무로의 모 관계자는 “영화 ‘밀양’의 선전과 호평 그리고 여우주연상 수상이 한국영화의 침체된 분위기를 단박에 살려낼 수는 없다. 해외 시장이 다시 한 번 한국영화에 주목했다는 사실, 그리고 영화의 만듦새가 어느 나라의 수준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충무로는 그 지점에서 한 차원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영화의 위축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개봉만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는 달리, 안이한 영화들이 지나치게 판친다는 누리꾼들의 지적은 몇 년째 일관적이다. 사실, 한국의 영화관객은 그 누구보다 자국의 영화를 사랑한다. 외국영화의 자막이 읽기 귀찮다는 이유도 반영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영화를 사랑한다. 그런 그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를 강도 높게 공격하고 있다. 일회성 깜짝 흥행용 영화, 생각 없이 만들어진 조폭 영화,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늘어지는 시나리오 등, 한국영화의 위기는 충무로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좀 더 냉정한 안목으로 현상을 바라볼 줄 아는 기자가 있다면, 그녀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 시점에서, 한국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적해야 옳다. 그리고 충무로도 호흡을 같이 하며 경청할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해결의 칼자루는 직접 돈을 내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있다. 그들에게 직접적이면서도 간절하게 호소하면, 관심이 높은 마니아들에게서 보다 다양한 지적이 나올 것이다.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가 저마다 매진하는 다양한 분야에는 ‘정치’가 스며들어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멱살이나 잡고, 서로의 비리나 터뜨리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다. 하나의 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근본적이고 큰 그림과 이득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다. 결국 충무로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일종의 ‘정치’인 셈이다. 충무로는, 전도연의 “최근 들어 시나리오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본질적인 해결책을 확실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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